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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선진국 노사관계, 사회협약 적극 도입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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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 선진국들의 노동조합 운동은 대체로 퇴조하고 있다. 노동조합 조직률은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고, 노조보다는 정부나 사용자의 주도권이 강화됐다. 경제위기를 겪으며 노사관계에서 전투성이 많이 약화됐고, 비정규직을 비롯해 취약 노동자층이 많은 나라의 경우 기존 노사관계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선진국들의 노사관계에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변화다. 지난해 11월 노동부에 제출된 한국노동연구원의 <선진국의 노사관계 제도·관행 등 변화 연구> 보고서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 보고서는 영국, 미국, 호주, 네덜란드, 스페인, 이탈리아, 일본 등 선진 7개국을 중심으로 30년간의 노사관계 변화를 추적하고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

이 연구에는 권위 있는 국내외 노사관계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한국노동연구원 이장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이 책임 연구를 맡고, <유럽의 노동과 고용>이라는 책을 펴내는 등 노사관계 연구 권위자인 피터 크레시 영국 배스대학 교수, 스페인의 홈-뎃레브 쾰러 오비도대학 교수, 이탈리아의 볼커 텔요한 경제사회연구소(IRES) 연구위원 등이 참여해 균형 잡힌 시각을 보여준다. 이 보고서는 앞서 언급한 노동조합 운동 퇴조현상 외에 산별노조 및 산별교섭의 약화, 정부·노동조합·사용자단체(노사정)가 참여하는 사회협약 강화, 비정규직 등 다양한 근로자층의 등장에 따른 노조 대표성의 위기 등을 거론했다.

우선 산별노조와 산별협약의 전통이 명맥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상대적으로 기업별 교섭이 더 중요해지는 등 단체교섭의 분권화가 일반적이다. 노사 자치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법제도가 강화되는 동시에 사회협약도 강화되고 있다. 영국과 미국처럼 대립적 노사관계의 전통이 강한 경우 노사분규의 중재와 조정을 위한 국가 개입이 강화됐고,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는 노사정이 참여하는 사회협약이 다양하게 도입됐다. 최근에는 노사정 외의 사회단체들도 사회협약에 합류하는 추세다.

노사관계에서 대표성의 위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노조 가입률이 낮아지면서 노조 조직이 약화되고 고용 형태나 국적, 노동운동 노선이 다른 근로자 계층이 등장하면서 대표성이 의심받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자본주의 발전 속도에 따라 나라별로 세부 특성이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이 보고서는 노조관계의 유형을 대립과 협력 구도에 따라 영미형(영국과 미국), 혼합형(호주와 네덜란드), 라틴형(스페인과 이탈리아) 모델로 분류했다.

자본주의 선발주자인 영미형에선 지난 30년간 제조업 경쟁력의 약화와 서비스 산업의 강화로 기존 제조업 중심의 노사관계 제도가 크게 변화하고 있다. 그래서 노조의 자치에 맡기기보다는 법치와 정부의 개입이 강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영국에서는 18~35세 세대가 과거 전후 세대보다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비율이 낮아 노동조합의 영향력이 점점 약화되고 있다. 특히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세계화에 따라 국가 차원이 아닌 전 세계적 노사관계 기준을 수립해야 할지 논의 중이다.

일찌감치 1970년대부터 제조업의 생산성 저하와 공장 해외 이전으로 대량해고와 구조조정을 겪은 미국은 노조가 임금인하에 합의하는 등 양보교섭이 정착되고 있다. 노사협의 때는 임금, 근로시간과 근로조건의 개선에 초점을 두되 경영에 대한 노동조합의 제한적 참여 등 실리주의에 의거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같이 권위주의 통치를 경험하고 민주화 과정에서 뒤늦게 노사관계가 형성된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등 라틴형의 경우는 노사관계에 갈등 요소가 많았다. 그러다가 유럽연합(EU) 통합을 기점으로 유럽 차원의 노사관계 규칙을 찾아가기 위해 노사정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호주와 네덜란드 등 혼합형 모델은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협력적인 노사관계를 합의하고 실천해왔다. 정부의 조정과 개입을 허용하면서 노조 자치와 법치가 다양하게 공존하는 양상을 보였다. 호주에서는 고용안정을 확보하면서도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대안이 모색되고 있다.
 

네덜란드 정부는 노동참여위원회라는 기구를 설립해 정책적 대안을 찾는 모범 사례다. 2008년 이 위원회에서 내놓은 대안은 더 많은 사람들이 일하고, 더 오랫동안 고용안정을 누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를 위해 취업기술 지원, 실업 시 보조받을 수 있는 노동기금 적립 외에도 연금 수급 연령을 65세에서 67세로 높이는 등 고령화에도 대비해왔다.

최근 일본의 노사관계는 이들 모델과는 또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의 급격한 경제위기, 완전고용 신화의 붕괴, 보수 자민당 장기 집권의 종식으로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 시점이다. 매년 임금교섭의 분수령이던 춘투(春鬪)는 크게 약화됐고, 노동조합 가입률이 떨어지면서 교섭력도 미약해졌다. 일본 민주당 정부는 파견법 강화, 최저임금 상승, 고용보험 확대 등을 추진하며 사회협약을 독려하고 있지만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90년대 후반 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 35시간 노동법 등 법정근로시간 단축을 도입한 프랑스는 90퍼센트 이상의 기업이 임금인하 없이 단순히 근로시간을 줄여 오히려 노동비용이 상승하는 역효과를 낳았다. 특히 고령 근로자의 근무시간을 줄여 청년 실업자 고용이 확대될 것을 기대했으나 이 역시 예상을 빗나가면서 기업과 정부 부담만 늘고 있다는 평가다.

한국노동연구원 이장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은 “선진국 노사관계의 변화 양상은 한국도 참고할 만하다”고 말한다. 그는 “세계화 과정에서 경제위기에 봉착한 이들 선진국은 기존 노사관계 의사결정 방식 외에도 사회협약을 적극 도입하는 추세다. 우리나라에도 노조 자치, 법치, 노사정 협약 등을 다양하고 실용적으로 적용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글·최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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