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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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에키벤’은 지역 특산물을 상품화한 대표적인 사례다. 에키벤은 ‘에키벤토’의 줄임말로 기차역이나 차내에서 판매하는 도시락을 말한다. 에키벤은 한국에서 기차여행을 하면서 먹는 ‘도시락’과는 차원이 다르다. 예컨대 홋카이도의 모리역에서 파는 ‘모리노이카메시’는 이 지역에서만 재배하는 특산물인 쌀을, 도야마 지역의 ‘마쓰노스시’는 연어의 한 종류인 ‘마쓰’를 도시락에 담아내는 식이다.
각 지방의 특산물이나 신선한 재료를 사용해 맛을 내기 때문에 에키벤을 맛보는 일은 그 지역의 명물, 문화를 직접 체험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에키벤을 먹어 보지 않고는 그 지방의 전통과 문화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는 말도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일본 전국에는 3천 종류가 넘는 에키벤이 있다. 같은 지역 에키벤이라도 철마다 메뉴가 달라져 실제 가짓수는 이보다 훨씬 많다. 일본인들에게 에키벤은 단순한 먹을거리가 아닌 하나의 관광자원으로 자리를 굳혔다. 네다섯 시간이나 걸리는 지역을 일부러 찾아가 에키벤을 맛보고 돌아오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인터넷에는 각 지역 에키벤에 대한 정보를 담은 사이트도 즐비하다. 일본 사람들의 에키벤 사랑도 유난스럽다. 매년 각 지방자치단체와 여행사 주최로 에키벤 콘테스트가 열리는가 하면,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에 역 매점으로 와 에키벤을 사가는 것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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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남부지역에 속한 미야자키현은 본래 닭고기 가공육으로 유명한 지역이지만 최근에는 망고의 고장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미야자키 망고는 그곳의 풍부한 일조량과 전통 특산물인 닭의 의미를 절반씩 따와 ‘태양의 달걀’로도 불린다. 2007년 초 일본의 인기 코미디언인 히가시고쿠바루 히데오(東國原英夫)가 미야자키현 지사로 선출된 후 직접 홍보에 나서면서 태양의 달걀은 그야말로 ‘날개’를 달았다.
주문이 폭주하면서 개당 수천∼1만엔대이던 가격은 1만5천엔(약 12만원)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태양의 달걀은 당도 15도 이상, 무게 3백50그램 이상의 까다로운 기준을 충족토록 하는 등 엄선된 품질관리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고가 과일이라면 ‘두바이의 태양’이라는 별명을 지닌 돗토리현의 특산물 돗토리스이카(수박)도 빠지지 않는다. 돗토리수박은 직경 30센티미터로 무게 15킬로미터에 이르는 우량 수박이다. 일반적으로 수박은 성분의 95퍼센트가 수분이고 이 가운데 4~6퍼센트가 당분이지만 돗토리수박은 당분이 이보다 월등히 높은 게 특징이다.
수박의 당분은 에너지로 빠르게 전환돼 여름 폭염에 지친 몸을 달래는 데 제격이다. 돗토리중앙농협은 이를 마케팅 포인트로 삼았다. 더위에 지친 두바이 시민들을 당도 높은 돗토리수박으로 달래준다는 마케팅 전략을 펼친 것. 덕분에 일본 시중에서 3천엔에 팔리는 돗토리스이카는 아랍에미리트 수도 두바이에서 3만엔에 이르는 고가에 팔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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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키운 특산품 하나가 쓰러져가던 지역을 일으켜 세우는 효자 노릇도 한다. 일본 홋카이도 유바리시(市)는 1960년대만 해도 석탄산업이 주류를 이룬 광업도시였다. 석탄산업이 사양길을 걸으면서 폐허로 변해가던 유바리시는 ‘유바리 킹’이라는 멜론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지금 일본에서 유바리시를 광산촌으로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정도다.
일찌감치 석탄의 대안으로 멜론 신품종 육성에 힘쓴 결과다. 유바리농협은 지금까지 멜론 관련 상표권만 1백44개를 등록했을 정도로 멜론 특산지로 유명해졌다. 판매가격도 1킬로그램에 8백엔으로 다른 지역의 멜론보다 두 배 가까이 높다. 유바리시의 성공 요인은 유바리멜론을 고유 브랜드로 키우기 위해 지자체와 농협이 손을 맞잡았기 때문이다. 특히 공동집하·출하제를 실시하면서 자체 품질검사를 통과한 멜론만 ‘유바리 킹’이라는 브랜드를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일본 동북부에 자리 잡은 야마가타현의 사쿠란보(체리)는 단지 먹는 과일에 머무르지 않고 체험하는 과일로 부가가치를 높인 사례다. 야마가타현은 해마다 6월 중순에서 7월 초순이면 나뭇가지가 휠 만큼 체리가 열려 곳곳이 붉은색으로 물든다. 이즈음이면 이 지역은 ‘사쿠란보 체험’을 하기 위해 찾은 관광객들로 덩달아 들뜬다. 체리는 재배가 까다로워 수확하기가 쉽지 않은데 야마가타현은 일본 체리 생산량의 70퍼센트 이상을 차지할 만큼 수확량도 많고 맛도 좋다.
야마가타현은 장마철에도 강수량이 적고 일교차가 커 과일을 재배하기에 최고 환경을 갖춘 곳이다. 과일왕국이라고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야마가타현은 생산되는 과일을 내다파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열매를 따서 먹거나 가져갈 수 있는 농장체험시설을 곳곳에 갖추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사쿠란보를 맛보기 위해 주말마다 도쿄를 비롯한 일본 각지에서 관광객들이 찾아오는데 지난 한 해만도 54만2천2백여 명이 다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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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일반 채소보다 10~20퍼센트 가격이 비싼데도 소비자들로부터 호평받고 있는 농산물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주로 교토(京都)에서 생산되는 채소인 ‘교야사이(京野菜)’이다. 가지 품목 중에서도 동그랗고 굵은 ‘가모나수’, 당도가 높고 부드러운 파 품종 ‘구조네기’ 등 인기 품목만도 21개에 이른다. 한국판 신토불이인 ‘지산지소(地産地消)’ 운동에 힘입어 교야사이는 최근 일본을 대표하는 채소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글·김창원(동아일보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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