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서울 목동의 한 아파트 단지. 지나는 주민들에게 ‘채움반찬’이 어딘지 물었더니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동네 유일한 반찬가게에서 동네 맛집이 됐고, 이제는 전국적으로 소문난 대박집이 됐다.
ⓒC영상미디어
한낱 희망사항인 줄로만 알았다. 폐장시간이 저녁 8시인데, 6시에 문 닫고 ‘품절’ 팻말을 걸어놓는 것 말이다. 창업을 결심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그런 가게로 만들고 싶다”고 했더니 코웃음이 돌아왔다.
“처음에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어요. 경기도 안 좋은데 가게를 한다고 하니까 ‘안 망하면 다행’이라는 눈초리였죠. 이런 일도 있었어요. 상호 등록을 하러 갔는데, 그곳 직원에게 제가 조심스럽게 물어봤습니다. 이 상표를 혹시 특허 신청하려면 어떡해야 하느냐고요. 그랬더니 담당직원이 ‘왜요, 누가 따라서 할까 봐요?’라고 말하더라고요.(웃음) 한쪽 입꼬리가 올라간 채로요.”
불과 2년 전 일이다. 주변의 무관심 속에서도 이지선 대표는 꿋꿋이 간판을 걸었다. 목동의 한 아파트 단지 안. 3평이 채 안 되는 자그마한 상가 점포에. 그렇게 몇 달이 흘렀을까. 예상 밖의 일이 벌어졌다. 반찬이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한 것. ‘없어서 못 파는’ 일까지 생겼다. 빠르게 입소문이 퍼졌고, 각종 매스컴에서 앞다퉈 찾아왔다. 지금은 주변 사람들이 이렇게 묻는다. 이 정도면 빌딩 한 채 살 수 있지 않느냐고.
그는 한때 평범한 ‘목동댁’이었다. 무려 세 아이의 엄마.
“아이가 셋이나 되다 보니까 집에서 음식을 하는 게 만만치 않더라고요. 그래서 종종 시장에 가서 반찬을 사오곤 했는데, 입맛에 안 맞았어요. 시금치를 먹어도, 콩나물을 먹어도 맛이 똑같은 거예요. 조미료 맛인 거죠. 집에서 먹는 반찬처럼 만드는 곳은 왜 없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마침 보니까 우리 아파트 단지에는 반찬가게가 없더라고요.”
그게 시작이었다.
“집밥처럼 안 질리는 반찬가게, 내가 하면 되지 싶었죠. 집 앞에서 가게를 하면 한창 크고 있는 아이들이 엄마의 부재를 느끼지 않을 수도 있고요.”
영양사 이력, 대박에 한몫
큰 욕심은 없었다. 그저 아이들이 여차하면 뛰어올 수 있는 거리에서 반찬가게를 하고 싶었을 뿐. 그는 “워킹맘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은 게 욕심이었다면 욕심”이라고 말했다.
“저도 워킹맘을 해봐서 잘 알아요. 엄마들 퇴근하면 저녁 7~8시. 그때 장 보고, 재료 다듬고 들어가서 언제 요리해서 먹어요. 그렇게 열심히 만들어놓아도 가족 수가 적다 보니까 다 먹지도 못하고 버리는 일이 생기죠. 특히 보름, 동짓날과 같은 날에 절기음식 먹자고 일일이 장 봐서 만들어 먹기 힘들잖아요. 엄마들은 절기음식을 꼭 먹어줘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데, 그거 한번 해 먹자고 나물을 종류별로 사놓고 무치기가 굉장히 번거롭습니다. 그런데 반찬가게에 가면 네 가지 반찬을 1만 원 정도에 살 수 있으니까 효율적이죠.”
그는 식품영양학을 전공하고 산업체에서 단체급식 영양사로 근무했었다. 그리고 이러한 이력이 대박에 한몫했다. 영양소 파괴를 최소화하면서도 맛을 내는 비법을 잘 알기 때문.
실제로 이곳 반찬들은 모두 이 대표가 세 아이에게 해 먹이는 것 그대로다. 조미료는 일체 안 쓴다. 그는 “조미료에 길들여진 사람이라면 다소 싱겁게 느낄 수 있다”면서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계속 먹을 수 있는 집반찬 같다”고 자랑했다.
“저염식으로 만들기 위해 염도측정계를 사용합니다. 저희 반찬의 특징 중 하나가 메뉴 대부분에 당근이 들어가는 건데요, 주로 기름을 넣고 볶거나 무치는 메뉴이기 때문에 지용성비타민이 들어 있는 당근을 활용해 영양소를 보다 풍부하게 섭취할 수 있도록 합니다.”
집에서는 반찬을 만들 때 일부러 당근을 사서 넣진 않기 때문에 이런 부분까지 신경을 쓴 것.
식재료 고르는 것도 깐깐하다. 매일 새벽 직접 농수산물 시장에서 장을 본다. 때문에 시장이 쉬는 날은, 가게도 쉰다. 그 밖에 간장과 된장 등은 친정에서 직접 만든 것을 사용하며, 달걀은 농장과의 직거래를 통해 무항생제만을 고집한다.
이곳의 기본 반찬은 17개다. 그리고 요일마다 달라지는 메인요리가 네 가지 있다. 국 또는 찌개 두 가지도 매일 준비한다. 기본 반찬 중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진미채. 딱딱하지 않고 부드럽게 무쳐내는 게 비법이란다.
“마른반찬이라고 해서 대량으로 만들어놓고 파는 게 아닌지라, 회전율이 이틀밖에 안 됩니다. 동네 애기 엄마들은 제가 음식 가지고 장난치지 않는 걸 잘 알아요. ‘내 아이 친구 엄마가 하는 거니까’라는 신뢰가 바탕이 됐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지인들부터 시작해서 소문이 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소자본 반찬가게, 아직 블루오션
물론 아이 셋을 키우면서 창업하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그는 “몰라서 용감했다”고 했다.
“만만하게 봤던 거죠.(웃음) 새벽 5시부터 저녁 7시까지 화장실 갈 시간이 없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가족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마 힘들었을 거예요.”
그는 “정작 반찬가게 주인이 반찬 집어 먹을 시간이 없어서 밥을 못 먹을 만큼 바빴다”고 했다. 초기 1년. 주변에서 ‘나도 반찬가게 한번 해볼까’ 하고 물으면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말리겠다’고 한 것도 그래서다.
“정말 힘들었어요. 가게에 오는 손님들이 너무 부러울 정도로요. 아, 나도 여기 와서 반찬 사 먹고 싶다. 이런 생각을 했었죠.”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어느 정도 적응기간을 거치고 난 지금은 오히려 주변 사람들에게 권유할 정도라고.
“가까운 지인이 제 조언을 받고 최근에 반찬가게를 창업했어요. 아직까지 틈새시장이라고 봅니다. 물론 모든 일이 그렇듯이 초기에 힘들 각오는 하셔야 하지만요.”
우선 소자본이라 진입장벽이 높지 않다. 이 대표는 초기 비용으로 약 4000만~5000만 원 정도를 투자했단다. 임대료 및 장비설치 비용이다. 크게 경기를 타지 않는 것도 이점.
“식당은 워낙 경기를 많이 타잖아요. 그런데 2년 영업해보니까 반찬가게는 아주 추울 때와 더울 때 잠깐 주춤하고, 야외활동이 늘어나는 5월 즈음에 잠깐 주춤하고 크게 기복이 없더라고요. 대신 명절이나 동짓날, 보름 같은 때 수요는 어마어마하고요.”
이 대표는 “1인 가구, 맞벌이 부부 증가 등으로 앞으로 반찬가게 수요는 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채움반찬’이라면 믿고 먹을 수 있지, 라는 반응이 에너지가 돼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과는 마음가짐이 조금 달라진 게요, 초기에는 사실 조그만 반찬가게니까 ‘하다가 너무 힘들면 닫아도 되지’라는 생각을 했는데, 이제는 일종의 책임감 같은 게 생겼습니다. 경영의 책임이라고 할까요. 이곳이 ‘이지선의 가게’가 아니라, 목동 사람들의 반찬가게가 됐기 때문입니다.”
창업 tip
나도 반찬가게 해볼까? ‘정부지원도 활발’
● 상권은 어디로?
반찬가게의 핵심고객층은 맞벌이 부부나 1인 가구. 이들 동선과 겹치는 곳으로 위치를 잡는 게 좋다. 특히 장을 보러 가거나 쇼핑하러 가는 동선에 입점하는 게 좋다. 반찬가게를 내기에 가장 좋은 자리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 있는 상가. 하지만 평수가 넓은 단지는 40대 후반 이후의 전업주부들이 살림을 하기 때문에 수요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젊은 주부나 맞벌이 부부가 많은 25~35평대 단지가 훨씬 유리하다.
● 매장은? 7~15평 정도로 작게
반찬가게는 매장이 넓지 않아도 된다. 소규모로 시작해도 괜찮다. 반찬 진열대와 간단한 주방시설, 냉장고만 갖추면 된다. 이때 반찬을 만드는 공간은 전체에서 반 이상을 차지해야 능률적으로 일할 수 있다. 매장이 작을 때는 바깥으로 살짝 돌출되도록 반찬 진열장을 내놓아도 좋다.
● 벤치마킹은 꼭 해야 한다
잘되는 반찬가게를 찾아다니며 메뉴와 맛을 체크해본다. 적어도 10군데 정도는 돌아다녀보는 것이 좋다. 이때 잘 안 되는 반찬가게도 같은 횟수만큼 다녀본다. 발품을 팔아야 어떻게 창업에 성공하는지 알 수 있다. 반찬가게뿐만 아니라 유명 음식점을 돌아다니며 밑반찬을 벤치마킹하는 것도 좋다.
● 3개월간의 운영자금을 남겨둔다
만약 자금이 1000만 원 있다면, 가게를 얻고 인테리어와 주방설비를 하고 식재료를 구입하는 데 드는 비용을 700만~800만 원 이내로 써야 한다. 그래야 가게가 자리 잡을 때까지 최소 3개월 이상을 버틸 수 있다. 생계형 반찬가게일수록 필요한 부분에만 비용을 쓰고 가능하면 지출을 줄이는 게 좋다. 예를 들어 주방 개수대는 새것을 써야 하지만 화구나 냉장고 등은 중고를 써도 무방하다.
● 반찬가게에도 경력자가 필요하다
반찬가게를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 인원은 2명이다. 아무리 작은 가게라도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 매장과 주방을 오가면서 일하는 사람이 각각 있어야 한다.
● 정부 지원도 활발하다
상시근로자 5명 미만의 반찬가게 사업자는 ‘소상공인’으로 친다. 소상공인은 중소기업청과 소상공인지원센터를 통해 창업·경영개선 상담 및 자금·인력·기술·판매·수출 등의 지원 등을 받을 수 있다. 여성창업자만을 위한 지원책도 있다. 중소기업청에서는 여성창업 지원의 일환으로 맞춤형 창업교육프로그램인 실전창업스쿨을 운영한다. 실무 위주 교육과 분야별 전문가 무료 컨설팅을 제공하며 교육비도 지원한다. 전국 15개 광역시도에 운영 중인 여성창업보육센터에서는 창업 2년 이내의 여성창업자 또는 예비창업자에 한해 전용 면적 33m 규모의 보육공간을 겸한 사업장을 저렴하게 제공하기도 한다. 그밖의 창업 정보와 지원사업은 여성기업종합정보포털(WBiz)을 이용하면 확인할 수 있다.
참고자료 | <10년 인기 밥반찬>
우리 동네 입소문 난 반찬가게
판교 소중한 식사
판교맘들 사이에서는 일찍이 유명해진 웰빙 반찬가게로, 2013년 8월 오픈했다. 과거 대기업 F&B 계열사에서 식재료 수입 파트를 담당했던 소정윤 대표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운영하며 서초, 잠실, 용인 등에서 찾아올 정도로 인기다. 직접 최상의 식재료를 고르고 관리해 저염식으로 조리하며, 젊은 엄마들이 원하는 트렌디한 레시피를 개발한다. 판교맘들의 니즈를 제대로 저격한 반찬을 매일 90여 가지 조리해 판매한다. 전문 셰프들을 따로 두고 있어 집들이, 와인파티, 백일잔치, 아이 생일 등 집에서는 할 수 없는 요리들을 만들고 있다.
잠실 데일리반찬가게
반찬의 달인 이금자 대표가 운영하는 반찬 전문점이다. 이미 방송 출연으로 그녀의 부지런함은 소문이 난 상태. 그 전부터 잠실에서는 워낙 유명했다. 매일 새벽같이 가락시장에서 식재료를 공수해 200가지가 넘는 반찬을 직접 만든다. 그야말로 반찬의 장인이다. 반찬과 함께 갓 지은 밥도 판매한다. 대표 메뉴는 양념게장. 소고기 장조림도 인기다.
분당 리쿡54
KBS ‘VJ특공대’와 ‘생생정보통’, SBS ‘모닝와이드’ 등 TV에 출연한 반찬의 달인 이영순 대표가 운영하는 반찬가게. 엄마가 먹기 시작해서 아이도 먹을 수 있는, 그리고 그 아이가 다시 엄마가 돼 대를 이어 먹을 수 있는 먹거리가 리쿡54의 시작과 끝이다. 수익의 50%를 식재료에 쓰고 90% 국산제품으로 오로지 재래방식으로 만들어내는 진정한 수제 먹거리다. 특히 직접 담근 수제 고추장으로 만든 매콤한 메뉴들이 인기. 매장에 가면 언제든 무료 시식이 가능하다.
옥수동 셰프찬
‘셰프들이 만드는 반찬과 요리’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서울에서 가장 핫한 동네로 급부상 중인 옥수동 대표 반찬가게. 좋은 식재료와 주방장들의 솜씨를 모두 갖췄다. 25년 넘게 기업투자 전문가로 활약한 김석헌 대표가 오픈한 곳으로, 압구정동이나 청담동은 물론 한남동, 금호동 일대의 젊은 엄마들이 찾을 정도로 각광받고 있다. 15년 경력의 한식 셰프가 한식, 일식, 양식, 중식을 아우르는 퓨전 메뉴를 선보인다. ‘짜지 않고, 달지 않고, 맵지 않은’ 건강한 반찬을 만든다. 반찬은 무려 230가지.
박지현 | 위클리 공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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