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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그녀들은 왜 ‘뒷바라지 지옥’에 빠졌을까

‘더 와이프’ 스틸컷. 사진 팝엔터테인먼트

‘더 와이프’ The Wife
제목만으론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바치는 헌사일지, 떠나보낸 아내를 향한 그리움 또는 추앙일지, 혹은 달콤살벌한 악처 이야기일지 예단할 수 없다. 주연 배우의 얼굴을 보고 나서야 뭔가 느낌이 왔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겁이 났다. 글렌 클로스 때문이다. 화려한 미모의 배우라기보다 강렬한 악역으로 기억된 얼굴 아닌가. ‘아카데미 무관의 여왕’이라는 별명 탓인지 늘 화가 나 있을 것 같은 인상도 겹친다. 나는 그녀의 깊게 파인 눈매와 짙은 화장이 무섭다.
그런데 영화 속 노부부의 어두운 침실에서 만난 그녀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 진한 눈 화장은 볼 수가 없다. 거추장스럽게 긴 머리도 아주 짧게 잘랐다. 늙은 남편의 약을 챙기고 잠자리를 정돈하는 조용하고 헌신적인 아내의 모습이다. 그러나 침실의 공기는 묘하게 긴장돼 있다. 남편은 뭔가를 기다리는 듯 초조하다. 아내에게 결과가 어떻든 실망하지 말라고, 공연한 위로의 말은 필요 없다고 주절대지만 정작 떨고 있는 쪽은 남편 조 캐슬먼이다. 불면의 밤을 아내와의 잠자리로 버텨내겠다는 듯이 아내 조안 캐슬먼에게 달려드는 가련한 노인. 그는 교수이자 작가다.
마침내 전화벨이 울린다. 노벨문학상 수상을 알리는 노벨위원회의 전화다. 조 캐슬먼이 세계 최고 권위의 문학상을 받은 작가가 된 것이다. 부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한동안 서로를 바라본다. 이내 부부는 손을 맞잡은 채 침대 위에서 폴짝폴짝 뛰기 시작한다.
“내가 노벨상을 탔다네, 내가 노벨상을 탔다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점프하는 모습이 어린아이들 같다. 조안이 먼저 침대에서 내려와 남편에게 이제 그만 자라고 다독인다. 아마도 노벨재단 관계자와 통화하며 자신이 했던 말을 속으로 곱씹었을 게다.
“네, 제가 뒷바라지 잘할게요.”
이제 조안은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아내가 됐다. 며칠 후 미국 코네티컷에서 스웨덴 스톡홀름으로 날아가야 한다. 시상식이 끝날 때까지 남편을 곁에서 보필해야 할 직분(?)을 스스로 에둘러 말한 것이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비밀이 숨어있지만 나는 글렌의 눈빛 연기로 조안의 복잡한 속내가 읽혔다.
사실상 수상 작품을 써낸 이는 ‘와이프’ 조안이었다. 스스로 방 안에 갇혀 하루 여덟 시간 이상 꼬박 원고를 완성한 사람이 그녀라는 사실을 남편 조 캐슬먼도 알지만 애써 아내와 자신의 ‘협업’이었다고 둘러댄다. 그것도 둘이 있을 때만 하는 말일 뿐, 밖에서는 자신만이 온전히 작가다.
두 사람은 교수와 제자로 만났다. 교수의 실력과 스타일을 흠모한 조안은 그를 사랑하기로 한다. 조 역시 그녀의 차분한 용모와 아름다움에 반했다. 결혼 후 조는 조안의 천재적 재능을 일찍부터 알아차렸다. 그러나 그는 조안의 재능이 세상으로 드러나는 것은 바라지 않았다. 자신의 소설을 모니터링하고 고쳐주는 조력자로서의 아내를 더 원했다. 조는 점차 자신이 재능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그와 동시에 조안의 천재성은 더 빛을 발했다. 결국 그녀는 남편의 이름 뒤에 숨어 작품을 써내는 고스트라이터가 됐고 세상은 그녀를 ‘뒷바라지하는 와이프’로만 기억했다.
영화는 재능을 지니고도 남편 ‘뒷바라지 지옥’에 숨어 살아온 한 ‘와이프’의 이야기다. 굳이 ‘지옥’이라고까지 표현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키이라 나이틀리 주연의 영화 ‘콜레트(Colette·2018)’가 그랬던 것처럼 외부의 강제와 압박이 있었다면 고통스러운 지옥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자신이 자신을 스스로 옭아맬 때다. 존재의 이유를 찾지 못한 채 알고도 부정하고, 꿈틀거리는 자아를 애써 참고 누르는 마음이 더 지옥일 터. ‘남편의 영광이 곧 내 것’이라고 말하는 아내는 과연 누구인가. 그렇게 믿는 아내가 얼마나 될까. 그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남편은 또 얼마나 될까.
서사는 단순하고 간결하다. ‘콜레트’를 떠올리게 하지만 무게감은 한층 묵직하다. ‘사건’의 전개보다 인물의 ‘심리’에 집중한 시도가 인상적이다. 글렌 클로스의 압도적인 연기가 일등공신인 건 두말할 필요 없다.
세상이 변했다지만 여전히 비슷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삶이 적잖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묻고 또 물어야 한다. 조안과 콜레트, 그녀들은 왜 그토록 ‘뒷바라지 삶’에 머물러 있었을까. 사랑? 글쎄다. 그보다 더 복잡하고 오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글 이상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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