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청룡사 대웅전 기둥이 삐뚤빼뚤한 이유


경기도 안성 청룡사에 가면 한국미의 결정체라고 할 만한 것을 만날 수 있다. 바로 대웅전의 옆면 기둥이다.
대웅전을 앞에서 바라보면 기둥이 반듯반듯하고 잘생겼다. 그런데 오른쪽으로 발길을 돌리는 순간 눈을 의심하게 된다. 기둥들이 하나같이 삐뚤빼뚤하다. 휘어지고 옹이가 진 목재를 손질하지 않고 그대로 기둥으로 사용했다. 절에서 가장 대장 격의 건물인 대웅전에 어울리지 않은 목재를 쓴 것처럼 보인다. 중요한 건물을 너무 소홀하게 지은 것은 아닐까 의구심마저 든다.
하지만 반듯하지 않다고 쓸모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붕의 하중을 견디고 건물을 지탱하는 데는 반듯한 목재와 휘어진 목재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 오히려 나무를 인위적으로 잘라내지 않고 통목재를 썼기 때문에 나무 본연의 힘을 그대로 살릴 수 있다.
청룡사 대웅전의 기둥은 나무가 자란 방향과 세월을 지나며 만들어진 굴곡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완벽하게 다듬어진 것보다 자연스러운 것을 아름답게 여기는 미의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것이야말로 한국미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다.
서양 건축과 한국 건축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도 자연을 대하는 태도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 건축은 자연을 해치지 않고 그 건축물 또한 자연의 일부가 되도록 짓는다. 용마루와 처마, 지붕, 기단으로 이어지는 한옥의 선은 주변 산과 능선, 자연의 흐름과 어우러지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한옥의 내부도 마찬가지다. 천장을 가리지 않고 서까래를 그대로 드러낸다. 한옥 마루에 누워 울퉁불퉁한 서까래를 보고 있으면 규격화된 공간 속에서 시계 부품처럼 움직여야 했던 일상의 압박감이 어느새 사라진다.
‘자연의 경치를 빌리다’는 뜻을 가진 차경(借景) 역시 한국 건축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멋진 풍경을 바라볼 수 있도록 창을 내고 그 창을 하나의 액자처럼 활용한다. 시간에 따라 변하는 창밖 사계절의 풍경을 고스란히 누릴 수 있다.
자연을 해치지 않으려는 태도는 강원 삼척 죽서루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죽서루는 바위 위에 지은 누각이다. 바위 앞으로 큰 하천인 오십천이 흐르는 명승지 중의 명승지다. 이 건물을 지을 때도 바위를 깎아 바닥을 평평하게 만들진 않았다. 대신 바위 높낮이에 맞춰 기둥 길이를 하나하나 달리했다.
바닥을 일정한 높이로 깎아내면 기둥을 세우는 일이 훨씬 수월했을 테지만 선조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한번 깎아낸 바위는 다시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멋진 건물을 짓더라도 자연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것, 그것이 한국 건축에 담긴 지혜였다.
청룡사와 죽서루에서 느낀 미감은 충남 서산 개심사에서도 만날 수 있다. 개심사는 종루에서 해탈문, 심검당에 이르기까지 건물 전체가 제멋대로다. 그런데 제각각인 모습 속에 오히려 묘한 생명감이 흐른다. 불균형 속에서 자연스러움이 살아나고 그 안에서 인간적인 따뜻함마저 느껴진다.
이런 미감은 건축에만 머물지 않는다. 한국 미술에는 비뚤어진 달항아리도 있고, 새기다 만 것 같은 불완전한 돌부처도 있다. 일부러 빈틈을 남기고 조금 모자란 듯한 모습 그대로를 아름답게 여긴다. 완벽하게 다듬어진 아름다움보다 자연스럽고 편안한 아름다움을 추구한 것이다.
물론 한국 건축의 모든 기둥이 휘어지고 비뚤어진 것은 아니다. 궁궐이나 종묘처럼 권위와 위엄이 필요한 건축물에서는 모든 기둥이 반듯반듯하다.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정렬된 경복궁 회랑을 걷고 있노라면 왠지 모를 질서와 권위, 웅장함이 느껴진다. 특히 육중한 종묘 건물 앞에 서면 저절로 옷깃을 여미고 고개를 숙이게 된다. 이렇게 한국 건축의 기둥은 쓰임에 따라 다르게 치목된다.
휘어진 기둥 하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순간, 한국 건축도 새롭게 보인다. 반듯함보다 자연스러움을, 완벽함보다 조화를 선택했던 선조들의 미의식이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룡사의 기둥은 단순한 건축 재료가 아니다. 한국인이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방식을 말없이 보여주는 하나의 문화유산이다.
조정육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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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