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복날, 물에 빠진 닭 삼형제

농사를 위한 ‘잡절(雜節)’이었던 삼복(三伏)이 이제는 밸런타인데이처럼 특별한 음식을 먹는 날이 된 듯하다. 더위에 지친 기력을 보충하기 위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물에 빠진 닭 삼형제’를 찾는다. 백숙과 삼계탕 그리고 닭한마리다.
이들을 형제라 부른 이유는 뿌리가 같기 때문이다. 맏형은 백숙(白熟)이다. 마늘과 파, 생강을 넣어 닭을 푹 삶아 먹는 방식은 조선시대에 이미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음식디미방’, ‘주방문’, ‘규합총서’, ‘시의전서’ 등 조선시대 고(古)조리서에는 닭을 파·마늘·생강을 넣고 삶은 뒤 소금으로 간하는 조리법이 기록돼 있다. 지금의 백숙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닭을 삶아 먹는 음식은 세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일본의 미즈타키(水炊き), 프랑스의 풀오포(Poule au Pot)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백숙처럼 닭 그 자체의 맛과 국물에 집중한 요리는 흔치 않다. 미즈타키는 각종 채소와 버섯을 함께 끓여 폰즈에 찍어 먹는 전골에 가깝고, 풀오포는 오랜 시간 우려낸 채소와 허브의 풍미가 중심이 된다. 반면 백숙은 닭과 파, 마늘, 생강, 소금이라는 최소한의 재료만으로 닭의 맛을 끌어낸다.
이 단순함은 당시 닭의 품종과도 관련이 있다. 조선시대의 토종닭은 오늘날 대량 사육되는 육계보다 육향이 진하고 지방의 풍미도 훨씬 강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 닭을 뭉근하게 삶아낸 국물은 지금과 전혀 다른 깊은 맛을 냈을 것이다. 오늘날 백숙이 다소 밋밋하게 느껴지는 이유 역시 과거의 닭과 지금의 닭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당시 백숙은 매우 귀한 음식이었다. 닭 자체가 흔한 식재료가 아니었다. 닭을 잡는 일은 혼례나 잔칫날 같은 특별한 날에나 가능했다. 귀한 닭으로 끓인 백숙의 국물은 한 방울도 허투루 버리지 않았다. 남은 국물에는 죽을 쑤거나 국수를 말아 먹었던 것으로 보인다.
둘째는 삼계탕(蔘鷄湯)이다. 세 형제 가운데 가장 성공한 사업가라고 할 만하다. 삼계탕은 보양식 이미지를 등에 업고 한국을 대표하는 닭 요리로 성장했다. 삼계탕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근대 양계산업이 자리 잡으면서 등장한 음식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닭고기 생산량이 크게 늘면서 닭이 대중적인 식재료로 자리 잡았고 서울을 중심으로 백숙 전문점이 늘었다. 그 가운데 인삼과 약재를 넣어 차별화를 시도한 음식이 삼계탕으로 발전한 것으로 추정된다. 1939년 조선일보 연재소설에도 삼계탕이라는 표현이 등장, 당시에도 이 이름이 사용됐음을 보여준다.
1960년대에 이르러 삼계탕은 고급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계삼탕(鷄蔘湯)’이라는 이름도 함께 쓰였는데 인삼을 강조해 건강식 이미지를 부각했다. 경제성장이 본격화된 1970년대에는 삼계탕 전문점이 급격히 늘었고 영계에 찹쌀과 대추, 인삼을 넣어 뚝배기에 담아내는 지금의 형태도 이 시기에 정착했다. 1980년대 이후에는 청와대를 찾은 해외 귀빈들에게 제공될 만큼 한국을 대표하는 보양식이 됐다.
외식업 관점에서도 삼계탕은 성공적인 메뉴였다. 백숙은 한 마리를 여러 사람이 나눠 먹지만 삼계탕은 1인 1그릇 판매가 가능해 객단가와 회전율이 모두 높았다. 영계를 사용해 백숙용 큰 닭보다 원가 부담도 적었다. 1980년대 당시 백숙 한 냄비 가격은 7000~1만 원 수준이었지만 삼계탕은 한 그릇에 3500~4500원을 받았다. 네 사람이 식사하면 매출이 두 배 가까이 뛰었다. 이후 1990년대 들어 건강식 열풍이 더해지면서 삼계탕은 한 단계 더 고급화됐다.
막내인 닭한마리는 가장 서민적인 음식으로 시장 사람들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태어났다. 1970년대 후반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 일대에서 봉제공장 노동자와 시장 상인들이 빠르고 저렴하게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 먹기 시작한 음식이라는 설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닭칼국수에서 발전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닭한마리의 핵심은 속도였다. 손님이 주문하면 토막 낸 닭을 큰 냄비에 담고 미리 우려둔 육수를 부어 센불에 단숨에 끓여냈다. 익는 동안 감자와 떡을 넣고 식사의 마지막에는 칼국수를 끓여 먹었다. 백숙처럼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었고 삼계탕처럼 혼자 먹는 음식도 아니었다. 닭 한 마리만 있으면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배를 채울 수 있었다.
닭한마리는 이제 노동자를 넘어 해외에서도 사랑받는 음식이 됐다. 특히 일본인 관광객에게는 필수 메뉴다. 일본 방송과 여행 잡지, 유튜브를 통해 꾸준히 알려진 덕분이다. 실제로 서울 동대문 닭한마리 골목에는 일본어 메뉴판을 갖춘 식당이 많다.
같은 솥에서 태어난 세 형제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 백숙은 전통을 지켰고, 삼계탕은 한국을 대표하는 보양식이 됐으며, 닭한마리는 시장 골목에서 출발해 세계인의 식탁으로 향했다. 복날마다 우리가 찾는 세 그릇의 닭 요리에는 한국 음식 문화의 과거와 현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채상우
먹는 게 좋아 미식을 좇는 일간지 기자. ‘헤럴드경제’에 ‘맛있는 이야기 미담:味談’을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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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