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종기부푸드트럭협동조합’ 만든 박종기·이주현 부부
커피 한 잔, 4000원이 누군가의 하루를 버티게 하고 세상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면? ‘시그너스커피 푸드트럭’ 박종기 대표는 이 마음으로 커피 푸드트럭을 끌고 전국을 누빈다. 지역 축제와 행사장, 기업 케이터링까지 커피 푸드트럭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간다. 그 수익금 중 커피 한 잔 값인 4000원에 한 달 31일을 곱한 12만 4000원을 매달 사회복지공동모금회(사랑의열매)에 기부하고 있다. 그의 작은 발걸음이 나비의 날갯짓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더 큰 사랑으로 확산되고 있다. 기부를 하기 위해 푸드트럭을 시작한 박 대표는 “수익이 많지 않더라도 조금씩, 꾸준히 나누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 대표의 푸드트럭은 2024년 5월 세종시 800호 착한가게로 이름을 올렸다. 푸드트럭으로는 1호였다. 착한가게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매월 최소 3만 원 이상, 매출의 일정액을 정기적으로 어려운 이웃들에게 기부하는 가게를 말한다.
박 대표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올해 9월 세종시에서 전국 최초로 기부를 함께하는 ‘세종기부푸드트럭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스테이크·닭강정·와플·커피 등 메뉴는 달라도 수익의 일부를 나누자는 뜻을 같이하는 착한 푸드트럭 8대가 모였다.
박 대표가 기부에 이렇게 열심인 데엔 이유가 있다. 박 대표는 여덟 살 때 부모를 여의고 세 살 터울의 남동생과 세종 영평사에서 자랐다. 이곳 주지 환성 스님은 기꺼이 형제의 아버지가 돼줬다. 환성 스님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세종 22호)이다. 지역사회를 위해 연간 5000만 원 이상 기부하고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는 등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며 나눔을 실천해왔다.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자라며 박 대표는 자연스레 나눔의 가치를 깨달았다. “아버지는 아무리 힘들어도 남부터 도우셨어요. 살다 보니 그게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알겠더라고요. 아버지처럼 나누면서 살아가는 게 가장 큰 효도이자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박 대표가 뿌린 나눔의 씨앗은 홀씨처럼 널리 퍼져나가고 있다. 박 대표의 아내 이주현 부대표는 물론 장모님과 그의 남동생도 푸드트럭을 운영하며 매달 기부를 이어가고 있다. 박 대표의 기부담을 듣고 선뜻 기부에 참여하는 거래처도 생겼다. 커피를 사러 왔다가 기부에 동참하는 손님도 많다. “이게 바로 선한 영향력 아닐까요?” 마주보며 웃는 부부의 얼굴에서 따뜻한 연대감이 묻어났다.

커피 푸드트럭을 운영한 지 얼마나 됐나?
박종기 대표(이하 박): 2024년 2월 커피 푸드트럭을 창업했다. 그전까지는 지중송전(지하에 포설한 전력 케이블을 사용해 전력을 수송하는 일) 엔지니어로 일했다.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지역 소외 계층이나 청소년이 사는 집에 전기 공사를 꾸준히 해줬다. 봉사 과정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서 이들을 좀 더 돕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지중송전 엔지니어는 국내는 물론 해외 출장이 많아서 시간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에 한계가 많았다. 어려운 사람을 돕고 나누는 일을 하루 빨리 하고 싶었다. 푸드트럭을 오랫동안 운영한 아내를 만난 게 큰 도움이 됐다. 함께 푸드트럭을 하면서 많은 곳을 다니며 봉사도 하고 기부도 하기로 했다. 푸드트럭은 기동성이 뛰어나다는 장점이 있다. 커피 푸드트럭 창업과 동시에 사랑의열매에 정기 기부를 약속했다. 창업한 바로 다음 달인 3월, 사랑의열매에 5만 원 기부한 것을 시작으로 기부금을 늘려갔고 2024년 5월부터는 매달 12만 4000원을 기부하고 있다.
남편이 일을 그만두고 푸드트럭을 한다고 했을 때 반대하진 않았나?
이주현 부대표(이하 이): 남편이 예전부터 봉사활동을 해왔고 나눔에 진심이라는 걸 아니까 반대하기보단 지지해줬다. 그냥 푸드트럭이 아니라 기부하는 푸드트럭이라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커피 푸드트럭을 하기 위해 커피와 음료 제조법을 배우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남편이나 나나 열심히 노력했다. 커피 푸드트럭으로 처음 돈을 벌고 기부를 했을 때 기분을 잊지 못한다. 비록 수익은 많지 않았지만 그걸 나누는 것만으로도 부자가 된 느낌이었다. 기부를 하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매달 12만 4000원을 기부하기로 한 이유는?
박: 창업 초기에는 푸드트럭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일정치 않았다. 수입이 많이 생기면 기부할까도 생각했다. 그렇게 미루다 보면 끝이 없을 것 같았다. 적은 금액이라도 내가 꾸준히 할 수 있는 금액으로 기부를 시작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적어도 하루에 커피 한 잔 값은 기부할 수 있지 않을까? 커피 한 잔이 4000원이니 한 달 31일을 곱한 금액인 12만 4000원을 매달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기부금은 어떻게 쓰이나?
박: 정기 기부를 약속할 때 기부금이 쓰이는 분야를 정할 수 있다. 우리는 사각지대에 있는, 어려운 환경에 놓인 어린이를 위해 기부금이 쓰이길 바랐다. 내가 겪어보니 그 시기가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시기더라.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이 정말 필요하고 또 도움이 된다.
매달 빠지지 않고 일정액을 기부하는 게 부담이 되진 않나?
박: 부담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처음 하는 일이고 사업이 잘될지 안될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이미 약속을 했으니 일정액을 기부하기 위해서라도 내가 더 열심히 노력해야 했다. 게으름을 피울 수가 없었다. 다행히 이제는 사업이 안정되고 수익도 늘어서 부담감이 많이 사라졌다. 오히려 기부금을 더 늘리거나 다른 기부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
기부하는 푸드트럭을 접하는 손님들의 반응은 어떤가?
박: 신기해하기도 하고 취지에 공감해 커피를 몇 잔씩 구매하거나 손님을 데려오는 분도 있다. 기부 방법도 많이 물어본다. 사랑의열매나 기부처를 알려주고 어떻게 가입하고 기부할 수 있는지 안내하기도 한다. 기부 푸드트럭을 통해 이렇게 기부에 관심을 갖고 기부에 동참하는 분들이 늘어난다는 게 기쁘고 뿌듯하다.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다면?
박: 내게 큰 동기부여가 된 부부가 있다. 남편이 소방관인데 어린 시절 사랑의열매의 도움을 받았다고 이야기를 꺼내더라. 생필품 외에도 직원들의 따뜻한 관심이 정말 큰 힘이 돼줬다며 소방관이라는 직업을 갖게 된 것도 그 영향이 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기가 받은 걸 돌려주고 싶다며 커피 31잔을 구매했다. 이번 달 12만 4000원은 자신들이 기부하고 싶다면서. 이미 소방관으로서 자신이 받은 걸 돌려주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 마음을 함께하고 싶어 공주소방서에 커피를 기부하는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올해만 1000잔이 넘는 커피를 기부했다.
기부는 ‘집안 내력’이라고 들었다.
박: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어려운 분들을 돕는 걸 보고 자랐다. 절도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는데 쌀이며 설탕, 식용유를 나눠주고 학생들에게 장학금도 주셨다. 지역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누구보다 먼저 팔을 걷고 나섰다. 어릴 땐 이해가 안됐다. 아버지가 너무 고생하시니까. 말썽도 많이 피우고 반항도 많이 했다. 그런데 내가 아버지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자랄 수 있었을까. 아버지의 도움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알게 되니까 아버지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푸드트럭을 시작한 후 하루에 커피 한 잔 값만 기부해도 괜찮겠냐고 여쭤보니 ‘기부액이 적다고 네 마음이 대기업 회장보다 작다고 보지는 않는다. 마인드로 승부해라’라고 하셨다. 내가 받은 걸 사회에 돌려주는 게 아버지에게 가장 큰 효도라고 생각한다. 기부를 열심히 해서 언젠가 아버지처럼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 되는 게 목표다.
가족들도 기부에 동참하고 있다.
이: 남편에 이어 나와 어머니, 그리고 남편 동생 부부까지 푸드트럭을 운영하며 정기 기부를 하고 있다. 나는 어떻게 기부를 하는 게 좋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다 세종시에서 푸드트럭을 운영하는 만큼 세종시에 맞는 의미를 담기로 했다. 세종대왕과 한글도시 세종시의 특성을 살리고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을 널리 알리고 싶어 푸드트럭 이름을 ‘세종이도’라고 정하고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한 1446년을 기념해 매일 1446원, 매달 4만 4826원을 기부하고 있다. 2024년 10월 착한가게 824호이자 세종 푸드트럭 2호로 이름을 올리고 나눔 문화를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박: 두 딸도 기부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커피 푸드트럭에서 스스로 일하며 번 돈을 이제는 자기 이름으로 기부하고 싶다고 한다. 우리 아이들까지 3대가 함께하는 기부 패밀리가 된다면 정말 기쁠 것 같다.
전국 최초로 기부하는 트럭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박: 사랑의열매에 정기 기부를 하는 착한가게 8곳이 모였다. 뜻을 함께하는 푸드트럭이 모여서 서로 응원도 하고 기부문화를 더욱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각자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 되는 것, 나아가 기부 페스티벌을 여는 것이 목표다. 기부를 함께하는 푸드트럭이 모여 축제를 열고 그날 나온 수익을 모두 기부하는 것이다. 그런 축제를 꼭 열고 싶다.
기부란 어떤 의미인가?
박: 살다 보면 힘들 때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곤 한다. 기부라는 건 그렇게 내가 받은 걸 돌려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한 일이고 도리다. 누군가에게는 그런 따뜻한 손길이 인생을 바꾸는 터닝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나도 그렇게 바뀌었다. 지금 기부를 망설이고 있다면 한 번이라도 해보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꼭 돈이 아니더라도 시간을 나누고 일을 돕는 것도 방법이다. 해보면 그 행복감을 체감할 것이다. 자신이 행복해지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다.
이: 기부를 시작하고 무슨 일을 하든 먼저 나눠야겠다는 생각부터 든다. 그만큼 나누는 게 행복하다. 나눌수록 마음에 자산이 쌓이는 기분이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부를 계속 실천해나가고 싶다.
강정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