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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타인의 슬픔을 대할 때 우리가 버려야 할 것들

영화 ‘레인 오버 미’ 스틸컷.

레인 오버 미
Reign over me
한글 제목만으로는 비(Rain)를 연상하기 쉬운데 거리가 먼 착각은 아니다. 감독은 어떤 이의 고통과 슬픔을 가리거나 씻어내기 위한 기제로 비를 필요로 했을지 모른다. ‘Reign’은 사실 ‘지배’ 또는 ‘통치’를 뜻하는 말. 그러니 ‘Reign over me’는 ‘나를 다스려주소서’ 정도의 뜻이다. 동시에 동음어인 ‘Rain’을 연상케 한다. 감당하기 힘든 상처와 트라우마를 비로 다스려 씻어내주길 바라는 것. 꽤 의도적이다.
감히 상상하기 힘든 슬픔과 트라우마에 갇힌 이, 바로 ‘찰리 파인먼’(애덤 샌들러 분)이다. 잘나가는 치과의사였는데 항공기 테러로 아내와 세 딸을 동시에 잃었다. 누구나 기억하는 그 사건 미국 ‘9·11 테러’. LA에서 만나자던 약속은 비극으로 끝나고, 찰리는 그날로부터 세상을 향한 문을 굳게 닫는다. 더벅머리에 까칠한 수염, 후줄근한 옷차림으로 PM(개인형이동장치)을 타고 목적 없이 거리를 헤매는 게 그의 루틴. 귀에서 거의 떼는 일 없는 헤드폰은 세상과의 단절을 보여준다. ‘날 건드리지 마’, ‘그냥 내버려둬’라고 말하는 듯하다. 집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오직 ‘완다와 거상’이라는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그리고 주기적인 주방 색칠하기가 전부다.
어느 날 찰리는 대학원 동기이자 기숙사 룸메이트였던 앨런 존슨(돈 치들 분)을 길에서 만난다. 대화를 피하고 도망가려는 찰리에게 끈질기게 다가서는 앨런. 성공한 치과의사로 살고 있지만 그의 일상도 녹록지 않다. 일터와 집 어느 쪽도 마음 편하지 않아 답답함을 느끼던 터. 사고로 가족을 잃었다는 소문만 듣던 옛 절친을 만난 건, 이름 짓긴 뭣하지만 터닝포인트다.
앨런은 사고 이야기, 가족 이야기가 나오면 공격적으로 변하는 찰리 때문에 몇 차례 봉변을 당한다. 잘 달래가며 친구가 돼주다가도 찰리의 ‘폭발’이 심할 땐 자신도 화가 치민다. 틀어졌다 화해하길 반복한다. 하지만 찰리를 억누르던 엄청난 슬픔을 점차 이해하는 앨런. 친구를 동굴에서 억지로 끌어내려는 시도를 멈추고 열심히 놀아주기로 한다. 밴드음악을 좋아하는 찰리를 따라 클럽에 가 드럼을 치고 춤을 춘다. 1인승 PM에 한 몸 되어 올라타 거리를 휘젓고 다니고 ‘완다와 거상’을 배워 함께 낄낄거린다. 모여 살며 함께 치유하자고 종용하는 장인과 장모가 있지만 찰리는 늘 외면해왔다. 이제 그의 유일한 친구는 앨런뿐이다. 앨런은 정신건강의학과 주치의 엔젤라(리브 타일러 분)와 함께 조금씩 찰리의 동굴 안으로 들어간다. 처갓집은 끌어내려고만 했지만 앨런과 엔젤라는 그에게 퍽 다르다.
마침내 하늘나라에 간 아내와 세 딸 이야기를 꺼내는 찰리. 이제 앨런은 안전한 존재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슬픔이 분노로 터지기는 매한가지. 폭력을 동반한 위험한 상황이 재차 벌어진다. 스스로 말하지 않으면 누구의 간섭과 치료도 완전한 방법이 될 수 없는 것. 영화는 결국 찰리가 완전히 치유됐다고 말하지 않는다. 가족의 흔적이 남아 있는 옛집을 떠나 새집에서 새출발하는 것으로 결말을 열어놓을 뿐. 누군가의 위로나 병상치료만으론 지울 수 없는 어떤 슬픔이 있다. 앨런과 엔젤라가 계속 곁에 남을 것이지만 어차피 그는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야 한다.
어떤 이는 찰리가 병원 앞 거리에서 가족사진을 품에 안고 ‘그날’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압권이라 말한다. 수년 동안 입 밖으로 내지 않았던 아내와 세 딸의 이름을 꺼내는 순간은 감동이다. 하지만 내게 더 진하게 남은 장면은 다르다. 그가 시종일관 ‘합가’와 ‘입원치료’를 권하는 장인과 장모에게 일갈하는 모습.
“거리를 걸어갈 때면 다른 사람이 도린(아내)처럼 보여요. 두 분이 가진 어떤 사진보다 더 선명하게 보여요. 마음이 아프시겠지만 두 분은 서로 의지할 수 있잖아요. 서로에게요. 전 혼자서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을 봐야 해요. 어딜 가든지요. 그래서 이 지경이 된 거예요. 셰퍼드를 봐도 그 망할 푸들(반려견)이 보인다고요.”
그가 했던 말 중 가장 길기도 한 이 차분한 절규를, 나는 몇 번이나 반복해 들어야 했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남은 자의 슬픔은 영화나 드라마로 수없이 만들어졌다. 많지만 아직 적은 이야기, 흔하지만 아직도 다하지 못한 끊임없는 이야기들이 저절로 생각난다. 세월호 유가족의 아픔을 다룬 우리 영화 ‘생일(Birthday)’과 ‘맨체스터 바이 더 씨(Manchester by the sea)’, 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가 소환될 만하다. 모두 상처와 슬픔과 극복을 다루는데 ‘레인 오버 미’가 조금 다른 것은 치유의 방법, 억지로 슬픔을 털어내게 하는 치료보다 있는 그대로 곁을 지키는 ‘조력자’의 존재에 힘을 주었다. 슬픔에 갇힌 자는 보통 사람과 다를 터. 섣부르게 ‘다름’을 교정하려는 시도가 무익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영화는 말하려 한다. 스스로 말하고 혼자 털어내기를 기다리는 것이 애도와 위로의 방법이라고도 전하는 것 같다.
물론 안다. 남이 꺼내주든 스스로 꺼내든 아프긴 매한가지 아니겠나. 억눌렸던 통증이 밖으로 나온다 한들 사라질 수야 있겠나. 슬픔조차 아름답다 여기는 수밖에.

글 이상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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