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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영화 ‘아무르’ 스틸컷.

아무르 Amour
프랑스 파리의 낡은 공동주택에 소방관과 경찰이 들어선다. 실내는 창문을 죄다 막아놓아 어둡고 습하다. 사람의 온기 대신 고약한 악취가 풍긴다. 침실 문도 굳게 닫혀 있다. 자물쇠를 채운 데다 사방 문틈을 테이프로 봉해 놓았다. 겨우 부수고 들어간 방. 침대 위에 늙은 여인이 정자세로 누워 있다. 숨을 거둔 지 며칠 지난 듯하다. 꽃 장례를 치른 듯 머리와 어깨 주변에 꽃잎이 깔려 있다. 비로소 창문 커튼이 하늘하늘 날고, 그녀의 코에도 바람이 새어 드는 듯하지만, 늦었다. 그녀의 영혼, 누군가와 함께 현관문을 나선 지 오래다.
되감기로 장면이 바뀌고, 꽉 들어찬 대형 연주홀 객석이다. 저절로 눈에 들어오는 두 사람이 있다. 조르주(장 루이 트랭티냥 분)와 안느(엠마누엘 리바 분) 부부다. 슈베르트의 ‘4개의 즉흥곡 op.90’는 부부에게 다가올 가혹한 운명을 예고한다. 안느는 피아니스트이자 많은 제자를 길러낸 선생님이다. 그날은 어릴 때부터 키운 제자의 연주회에 다녀온 날이다. 부부는 집으로 돌아온 뒤 내일이면 제자가 CD를 들고 집으로 찾아올 거라 기대해본다. 이들은 예술을 사랑하는 품위 있고 교양 있는 80대 부부다. 아침 식탁에서 차와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번갈아 읽어줄 만큼 다정하다. 아내의 코트를 받아 걸며 그가 말한다. “당신, 오늘 유난히 예쁘다고 내가 말했던가?” 그녀가 속사포처럼 대꾸한다. “뭐 잘못 먹었어?” 보이진 않지만 행복한 미소를 머금었을 터. 하지만 노년에 비켜가지 못할 사건이 벌어진다. 아침 식탁에서 이유 없이 정신을 잃는 안느. 마비 상태가 짧게 스쳐간다. 초조한 기색이 역력한 조르주. 한사코 거부하는 안느와 병원을 찾는다. 진단명은 경동맥 이상. 예후가 괜찮고 수술 실패율도 낮다 했던 희망은 무너진다. 반신불수가 된 안느. 절망은 이르다고들 하지만 이미 절망이다.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온 안느는 단호하게 말한다. “다시는 절대로 입원시키지 말아요.” 집을 떠나지 않으려는 아내를 위해 조르주는 다짐한다. “그래요.”
조르주의 길고 긴 병 시중이 시작됐다. 상황은 계속 악화일로다. 안느는 이제 치매환자다. 조르주는 헛소리를 하는 아내에게 말을 가르치고 노래를 따라 부르게 한다. 미음을 먹여주고 용변을 돕고 목욕을 시키고 옷을 갈아입힌다. 끝이 보이지 않는 돌봄.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돼간다. 혼자 힘으로 버거워지자 간병인을 두는 조르주. 그러나 아내를 함부로 대하는 간병인은 두고 볼 수 없다. 간병인을 하루 만에 잘라낸다. “이제 어떻게 할 거냐?”고 다그치듯 묻는 딸도 사위도 귀찮다. “너희들 걱정까지 받아줄 여유가 없다. 우린 내버려둬라. 훈계하지 말고.”
아내의 가는 숨을 붙들고 있는 남편의 절망과 엄마의 죽음을 예견하는 딸의 슬픔, 어느 쪽이 더 무거운가.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요양병원을 끝내 마다하는 아버지와 가정간병을 고집하며 엄마가 죽을 날만 기다리는 듯한 아버지가 답답한 딸…. 당신은 어느 쪽 손을 들어줄 것인가.
소변까지 지린 날 안느는 투신자살을 시도하지만 실패한다.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 남편을 괴롭게 하는 것도 싫다. 사는 것 같지 않지만 죽지도 못하는 안느는 또 저항한다. 그토록 사랑하는 아내의 따귀를 때린 날이 있다. 입을 꼭 다물고 물조차 넘기길 거부하더니 겨우 머금은 물을 면전에다 뿜은 것. 지쳐 있던 그의 격정이 처음 드러난 순간이다. 죽음을 앞에 둔 이의 두려움만큼이나 혼자 남을 이의 고립감과 공포도 만만치 않음을 눈치챘다. 회복 불가한 삶이 암담하기는 누워 있는 자나 간병하는 자나 매한가지. 오롯이 둘만 남은 이들의 사투는 가련할 지경이다.
영화는 시종 어둡고 침침하다. 대사와 행동, 소리, 공기까지 그늘이 드리워 있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디테일이 일품이다. ‘극세사 현실’을 담아낸 연출과 연기에서 눈을 떼기 힘들다. 내내 숨죽이다가 무거운 절망이 화면 밖으로 새어 나오면 소리 내어 함께 탄식했다. 감독 미카엘 하네케는 ‘하얀 리본’, ‘피아니스트’ 등을 만든 명장이다. ‘아무르’는 제 65회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등 수상 이력이 화려하다. 그 많은 상은 사랑에 대한 찬사, 죽음에 대한 헌사다. 2012년에 개봉한 영화인데 두 배우는 이제 세상에 없다. 엠마누엘은 2017년, 장 루이는 2022년에 별세했다. ‘인생작’이란 바로 이런 것 아닐까.
삶은 행복이지만 고되기도 하여 무겁고 죽음은 두려워서 무겁다. 대립의 언어인데 동의어 같기도 하다. 삶과 죽음에 관한 화두는 하루가 멀다 하고 꼬리에 꼬리를 물며 난전을 펼친다. ‘아무르’는 삶과 죽음 사이 쓸쓸한 여백을 세밀하게 통찰한 영화다. 하지만 질척한 진흙탕에서도 빛을 잃지 않은 부부의 순애보가 위로를 전한다. 응석에 지나지 않는 자식의 사랑보다 안느에 대한 조르주의 사랑은 훨씬 존귀하다.
설거지를 마친 안느는 남편의 신발을 챙긴다. 조르주는 안느에게 외투를 걸쳐주고 안느를 앞세운다. 부부가 함께 현관을 나서는 마지막 장면. 쓰리고 아프지만 아름답다. 읽고 있던 책과 주제가 겹쳐 생각이 많아졌다. 돌봄의 끝은 어디까지인가. 남는 자의 운명은 어떨 것인가. 죽음으로 이어질 삶, 어떻게 디자인해야 하나. 더 나은 죽음이란 무엇인가.

글 이상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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