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책 안 읽어도 됩니다 졸다 가도 됩니다 망하기 전에 놀러오세요!

서울 중구 신당동 ‘소수책방’
‘소수책방’ 김문 대표는 책방 한편에 잠든 이들을 볼 때 가장 뿌듯하다. 괜히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손님이 얄미울 법도 하건만 ‘우리 책방을 그만큼 편하게 여기는구나’ 싶단다. 책을 사지 않고 가지고 온 책을 읽는 손님에겐 서비스로 차 한잔을 내어주고 글만 쓰다 가는 손님에겐 재미있는 책이 있으니 빌려 가 읽으라고 권하기도 한다. 그런 그에게 ‘집이 여유로워 책방은 취미로 하는 거 아니냐’는 소리는 익숙한 오해다.
“누구나 편하게 와서 언제든 쉬다 갈 수 있는 책방을 만들고 싶었어요. 책을 사면 좋지만 안 사도 좋은. 책을 안 읽으면 어때요. 책보다 중요한 건 공간이라고 생각했어요. 누구에게나 그런 공간 하나쯤 필요하잖아요?” 김 대표는 소수책방의 존재 이유를 이같이 설명했다.

소수책방
주소 서울 중구 다산로20길 26 2층(약수역 3번 출구)
운영시간 매주 수~일요일 12~18시(월·화요일 휴무)
※ 자세한 운영시간은 인스타그램(@sosooboo)에서 확인(매주 변동)
추천 책 ‘재미없으면 환불’·헌책 ‘무료 대여’
서울 중구 신당동 지하철 3호선 약수역에서 도보로 6분 거리에 자리한 소수책방은 책 좋아하는 이들에겐 ‘나만 알고 싶은 아지트’ 같은 곳이다. 푸른빛의 네온사인을 밝힌 간판을 따라 건물 2층으로 들어서면 약 56㎡(17평)의 소담한 공간에 책 1000여 권이 빼곡하다. 대형서점의 베스트셀러와는 무관하게 김 대표가 직접 읽고 엄선한 문학, 철학, 예술 분야의 도서들이다. 이 중 소수책방 스티커가 붙은 추천도서는 ‘재미없으면 전액 환불’을 보장한다. 손해를 보더라도 좋은 책을 알리기 위한 책방의 노력이다. 그간 ‘신들의 주사위’(황순원), ‘철학자의 거짓말’(프랑수아 누델만), ‘이십억 광년의 고독’(다니카와 슌타로) 등이 책방의 ‘인증’을 받았다.
1981년 발표된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 등 지금은 구하기 힘든 절판 책들을 살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책방지기가 개인적으로 소장한 책들은 무료로 빌려볼 수도 있다. 즉 이곳에선 책을 사도, 사지 않아도 괜찮다는 얘기. 요즘 동네책방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공간이용료’조차 없다. 술과 음료, 간식도 팔지만 주문이 필수는 아니다. 방문객의 주머니 사정에 따라 얼마든지 자유롭게 머물다 가도 좋다는 뜻이다.
이처럼 오랫동안 편하게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구상하면서 김 대표가 가장 마음을 많이 쓴 건 인테리어다. 한낮에도 어둑한 실내에 전체적으로 파란색 조명을 덧입혔다. 덕분에 책방을 거닐다 보면 마치 심해를 헤엄치거나 우주를 유영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마르크 샤갈의 작품 ‘아메리카 윈도우’를 보고 그가 일일이 수작업을 했다는 창문의 스테인드글라스와 곳곳에 장식된 액자, 양초, 타자기 등 독특한 소품들은 어느 예술가의 작업실을 엿보는 기분마저 들게 한다. 한쪽엔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거나 LP 음반을 들을 수 있는 공간도 있다. 그 덕에 소파에 기대어 반쯤 누워 있다 보면 ‘집에 가기 싫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방문객들이 이곳을 책을 파는 상점이라기보다 나만의 아지트로 느끼는 이유다.


알바 뛰며 폐업 막은 이유? ‘손님과의 추억’
이곳은 소설책을 낸 작가이기도 한 김 대표가 작업실로 쓰던 공간이었다. 한 달에 20여 권의 책을 읽을 만큼 ‘독서광’인 그는 어느 날 작업실을 책방으로 바꿨다. ‘도매가로 들여와 책이나 실컷 보자’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책방이 문을 연 시기는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인 2021년. 자영업자를 위한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이 많을 때라 위기가 곧 기회라 여겼지만 ‘초보 사장’에게 위기는 그저 위기일 뿐이었다. ‘이제 문을 닫을 때가 된 건가’ 고민하길 수차례. 건물 임대료를 낼 돈이 없어 2년간은 백화점, 편집숍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버텼다. 배달 일까지 했던 때는 저녁 8시가 돼서야 책방 문을 열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이 공간을 지키고 싶었던 이유는 소수일지언정 애써 찾아와준 손님들이 ‘여전히’ 있었기 때문이다.
“책방은 구경만 하고 나가는 손님이 절반 이상이에요. 그런데 그렇게 한 번이라도 온 분들이 두 번째엔 책을 사고 세 번째엔 책을 읽으며 오래 머물다 가더라고요. 그럼 저도 커피 한잔 드리며 좋아하는 책에 대해 같이 이야기도 나누고. 그런 좋은 기억들이 쌓이면서 이곳이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은 공간이 돼버렸어요. 어떻게 하면 손님들도 행복한 기억을 안고 돌아가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보니 책을 파는 것보다 편하게 머물다 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데 공을 들이게 됐죠. 동네책방이 이렇게 재밌는 곳이구나 알면 다른 동네책방들도 좋은 영향을 받지 않겠어요?”

‘질문지’ 작성하며 ‘인생의 해답’ 찾아
이곳을 찾는 이들이 꼭 해봐야 할 것 중 하나는 ‘질문지’를 작성하는 일이다. 규칙은 하나. 김 대표가 매달 선정한 15개의 질문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적으면 된다. ‘당신은 인간인가요? 사람인가요?’와 같은 존재의 근원적 질문부터 ‘삶의 반복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와 같이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는 다양한 물음표가 노란 종이에 정연하게 쓰여 있다. ‘<사랑에 반대한다>를 해석해주세요’와 같이 의도를 알기 어려운 질문 앞에선 잠시 멍해지기도 하지만 연필로 꾹꾹 눌러 글씨를 쓰다 보면 자신만의 답을 찾을지도 모를 일이다. 김 대표는 가장 잘 쓴 답변 20여 편을 모아 매달 책으로 엮어 공개하는데 유머와 철학이 담긴 타인의 생각을 엿보는 재미가 있다. ‘사랑에 반대한다’를 해석해달라는 질문에 대해 김 대표가 꼽은 최고의 답변은 ‘나는 연약하다’였다.
소수책방에서는 매달 20여 가지의 모임도 열린다. 시합평, 글쓰기, 교환독서 등 책과 관련한 모임도 있지만 ‘찍먹모임’, ‘상상하기모임’, ‘몰아(몰라 알아서 되겠지)모임’ 등 친목 도모와 수다떨기가 목적인 모임도 다수다. ‘질문지’가 혼자 하는 사유라면 책방에서의 모임은 함께하는 사유인 셈. 모든 모임은 김 대표가 진행하는데 누리소통망(SNS)에 공지하기가 무섭게 마감될 정도로 인기가 좋다. 김 대표는 “모임을 통해 만나는 사람만 매달 200명이 넘는다”고 했다.
매달 20여 개 모임… ‘재밌는 공간’이 목표
그중에서도 최고의 인기는 ‘사랑모임’이다. ‘사랑에 대해 탐구해본다’는 취지로 마련한 이 모임에선 이름, 직업, 나이를 밝혀선 안 된다. 예술 취향이나 MBTI는 물론이고 누리소통망 ‘맞팔’도 금지다. 완전한 익명성 안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도록 하기 위한 장치다. 한 사람이 평생 한 번만 참여할 수 있게 한 것도 같은 이유다. 실제로 참가자들은 가족과 친구 사이에서도 하기 힘든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다른 모임이 평균 4시간 정도 진행되는 데 반해 사랑모임은 8~9시간 이상 이어진다.
“방문객들에게 책방의 문턱을 낮추고 이 공간에 대한 기억을 더 진하게 남기고 싶었어요. 이후로 직접 모임을 기획해 진행하게 됐죠. 사랑모임은 다른 사람 연애 얘기 들으려고 만든 것도 있어요. 재밌잖아요. 우리는 다른 사람의 사랑에 대해선 이상하게도 전문가가 돼요. 모임에 오면 각계각층 사랑 전문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죠.”
동네책방은 ‘2년만 버텨도 성공’이라는데 소수책방은 올해 5년 차에 접어들었다. 여전히 매달 나가는 임대료를 빼고 나면 손에 남는 것은 별로 없지만 김 대표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우선 지난 한 해 동안 펴낸 ‘질문지’ 책 열두 달치를 또 다른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딱 100권만 팔 생각이다. ‘거짓말’을 주제로 한 영화도 한 편 찍으려 한다. 이를 위해 얼마 전 신청자 10명을 대상으로 거짓말과 관련한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간절한 바람은 소수책방을 계속 지켜내는 것이다. 책방이 앞으로 어떤 곳이 되길 원하느냐는 질문에 김 대표는 “재밌는 공간, 그리고 여전히 언제든 와 잠들 수 있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소수책방의 누리소통망엔 이러한 문구가 있다. ‘망하기 전에 놀러 오세요.’ 오늘도 소수책방은 푸른 조명을 밝힌 채 발걸음을 기다린다.
조윤 기자
책방지기가 꼽은
지금 읽기 좋은 책


에코의 뼈들 그리고 다른 침전물들 /
호로스코프 외 / 시들, 풀피리 노래들
사뮈엘 베케트(워크룸프레스)
‘고도를 기다리며’로 유명한 작가 사뮈엘 베케트가 작가로 데뷔하면서부터 생을 마감할 때까지 영어와 프랑스어로 쓰고 옮긴 시들을 엮은 책. 베케트 특유의 간결하고 상징적인 언어로 인간 존재와 삶의 무게를 탐구하는 시 세계를 보여준다.

이십억 광년의 고독
다니카와 슌타로(문학과지성사)
일본의 대표적인 현대시인 슌타로의 시 선집으로 시 117편과 산문 3편이 수록됐다. 일본 교과서에 실린 ‘아침 릴레이’,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주제가 ‘세계의 약속’의 가사 등을 만날 수 있다.

사랑
마르그리트 뒤라스(난다)
일평생 사랑을 탐구한 프랑스의 작가 뒤라스의 소설. 이름 없는 남자와 여자, 제3의 인물이 바닷가와 호텔, 텅 빈 공간을 배경으로 완성되지 못한 사랑을 이야기한다. 뚜렷한 사건 전개 대신 인물들의 기억과 침묵이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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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