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20년 만에 국내에서 열리는 2025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마지막 점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APEC 정상회의는 10월 31일부터 11월 1일까지 이틀간 개최된다. 정상회의 개막에 앞서 10월 27일부터는 ‘정상회의 주간’에 돌입해 이 기간 동안 최종고위관리회의(CSOM), 외교통상합동각료회의, APEC 최고경영자(CEO) 서밋 등이 잇따라 열린다.
21개 회원으로 구성된 APEC은 전 세계 인구의 37%, 국내총생산(GDP)의 61%를 차지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지역협력체다. 매년 21개 회원 중 한 곳이 의장을 맡아 APEC 회의를 주최한다. 의장은 APEC 정상회의를 비롯해 연중 개최되는 장관회의, 고위관리회의(SOM), APEC 기업인자문위원회(ABAC) 등에서 의장 역할을 수행한다.
외교부에 따르면 이번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사상 최대 규모인 14개 분야별 장관회의 및 고위급 대화가 이어지고 있다. 4월 30일 해양관계장관회의를 시작으로 고용, 교육, 통상, 여성, 경제, 디지털 인공지능(AI), 에너지, 문화 등 분야에서 장관회의 및 고위급대화가 열렸으며 재무장관회의와 구조개혁장관회의를 마지막으로 본격적인 APEC 정상회의 주간에 들어선다.

정상회의장·만찬장 등 인프라 준비 완료
2025년 APEC 정상회의 주제 및 중점과제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지속가능한 내일: 연결, 혁신, 번영’이다. 이는 2020년 APEC 정상회의에서 채택된 ‘푸트라자야 비전 2040’에 기반을 두고 있다. 푸트라자야 비전은 2040년까지 개방적이고 역동적이며 회복력 있고 평화로운 아시아·태평양 공동체를 실현해 모든 사람과 미래세대의 번영을 도모한다는 목표를 담고 있다. 연결, 혁신, 번영이라는 세 가지 중점과제를 통해 푸트라자야 비전 2040을 실현하겠다는 것이 의장인 대한민국의 뜻이다.
이러한 의지는 공식 엠블럼에도 담겼다. 2025년 APEC 정상회의 공식 엠블럼은 나비를 모티브로 삼았다. 꽃에서 꽃으로 이동하며 생태계 번영에 기여하는 나비를 통해 APEC 회원들이 서로를 ‘연결’하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번영’에 기여하는 모습을 상징한다. 나비의 날갯짓은 ‘혁신’과 변화를 의미하며 더 큰 번영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여기에 신라 유물인 ‘얼굴무늬 수막새’를 본떠 APEC 회원들의 한국 방문을 환영하는 의미도 담았다.
APEC 정상회의 회의장은 경주화백컨벤션센터(HICO)다. 2015년 개관한 경주화백컨벤션센터는 4층 규모의 건물로 APEC을 앞두고 개·보수 작업을 거쳤다. 3층에 정상회의장을 설치하고 2·3층에 걸쳐 VIP라운지, 회담장 등을 조성했다. 경주화백컨벤션센터 옆에는 국제미디어센터가 자리 잡았다. 약 4000명의 내·외신 기자를 수용할 수 있는 공간에는 메인 브리핑룸과 기자실, 인터뷰룸 등이 있다.
경주화백컨벤션센터 인근 경주엑스포대공원에는 경제전시장과 파빌리온돔이 들어섰다. 파빌리온 돔에는 모빌리티·로보틱스, AI·스마트홈, 메타버스·확장현실(XR), 바이오·헬스테크 등 4개 분야에 걸친 전시장을 운영한다. 경제전시장에서는 역대 최대 규모의 세일즈장이 펼쳐진다. CEO 서밋이 열리는 경주예술의전당에는 1700여 명의 경제인이 모일 전망이다.
만찬장은 경주화백컨벤션센터에서 차로 4분 거리인 라한셀렉트 경주에 마련됐다. 1000~2000명이 동시에 식사할 수 있는 이곳의 만찬을 이끄는 인물은 세계적인 스타 셰프 에드워드 리다. 당초 만찬장으로 쓰일 예정이던 국립경주박물관 내 신축 건물은 글로벌 기업인과 정상들의 네트워킹 장소로 활용될 예정이다. 라한셀렉트 호텔이 위치한 보문호수 주변의 호텔과 리조트들도 새 단장을 마쳤다. 총 12개 호텔을 개·보수해 35개의 정상급 숙소(PRS)를 마련했다. 정상회의 기간 중 하루 최대 숙박객은 약 7700명으로 예상된다. 외교부와 경상북도는 경주의 모든 숙박시설 1만 6838실을 전수 조사해 숙소 환경을 점검했다.

14개 장관회의 및 고위급대화 순조롭게 개최
정부는 이번 정상회의의 핵심 성과로 ‘AI 전환’과 ‘인구구조 변화 대응’ 의제에 대한 정상 간 합의 문서 도출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14번에 걸친 장관회의 및 고위급대화에서 21개 회원 간 컨센서스(만장일치)를 바탕으로 공동 문서를 도출하고 있다.
이 중 신규 이니셔티브가 채택된 회의도 있다. 9월 1일부터 5일까지 제주에서 열린 APEC 중소기업 장관회의에서는 한국 주도로 APEC 스타트업 얼라이언스를 출범하는 내용을 담은 ‘제주 이니셔티브’가 채택됐다. 이는 연중 개최된 여러 분야의 APEC 장관회의 가운데 신규 이니셔티브가 채택된 첫 사례로 스타트업 분야에서 한국의 리더십을 입증한 의미 있는 성과다. 제주 이니셔티브를 통해 APEC 회원들은 각 스타트업 생태계를 연결하는 APEC 스타트업 얼라이언스를 출범하기로 합의했다.
공동선언문도 채택됐다. 여기에는 혁신을 촉진하고 스마트 정책으로 지속가능 성장을 뒷받침하며 연결성을 강화해 성장 기반을 넓혀가자는 회원들의 공통된 의지가 담겼다. 이는 불확실한 글로벌 경제 환경 속에서도 중소기업이 성장과 번영의 핵심 동력임을 재확인하고 APEC 차원에서 실천적 협력 방향을 구체화한 성과로 평가된다.
이처럼 대한민국은 2025년 APEC 의장으로서 리더십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8월 4일 개최된 APEC 디지털·AI 장관회의는 역내 AI·디지털 분야 장관급이 모인 첫 회의로 미국·중국·일본 등 APEC 21개 회원이 모두 참석해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장관회의의 주제는 2025년 APEC 정상회의의 주제와 연계해 ‘모두의 번영과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디지털·AI 전환’으로 설정됐으며 혁신·연결·안전 등 세 가지 세션으로 나뉘어 논의가 진행됐다.
각각의 세션에서는 AI 등 첨단기술을 통해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고 사회적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혁신 방안, 역내 모든 시민이 디지털 전환의 혜택을 체감할 수 있는 연결성 증진 방안이 논의됐다. 또 딥페이크와 허위정보 등 AI 기반 디지털 위협에 대응할 필요성에 대해 다뤄졌다.
이 같은 논의 끝에 장관회의의 성과로 AI·디지털 협력에 대한 APEC의 공동 비전을 담은 장관선언문이 채택됐다. 글로벌 AI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미국·중국 등 AI 선도 회원들이 AI 정책방향에 합의했다는 점은 큰 의미를 지닌다. 이 선언은 향후 APEC 차원의 AI·디지털 협력을 구체화하기 위한 이정표로 활용될 전망이다.
APEC 핵심 성과 도출 기대감 고조
8월 26일부터 3일간 개최된 APEC 문화산업고위급대화 역시 APEC 창설 이후 최초로 문화산업을 의제로 열린 회의다. 첫 회의임에도 고위급 정책 담당자들이 대거 참석한 이번 회의는 APEC의 중점과제인 연결, 혁신, 번영을 주제로 진행됐다. ‘연결 : APEC 경제협력의 새로운 촉매제로서의 문화창조산업’ 세션에서는 문화산업이 APEC의 핵심 성장동력임을 재확인하고 이를 통한 지역 성장 기회를 논의했다. ‘혁신 : 디지털·AI 혁신이 주도하는 문화창조산업 발전’ 세션을 통해서는 디지털 기술과 AI가 문화산업 전 단계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며 문화창조산업을 통해 경제발전의 해법을 찾고자 하는 회원들의 노력을 조명했다. 마지막 세션인 ‘번영 : 문화창조산업을 통한 APEC 공동체의 번영 실현’에서는 문화산업 분야의 실질적 협력 방안이 논의됐다.
이 같은 논의 끝에 회원들은 공동 성명을 채택했다. 문화창조산업의 경제적 중요성에 대한 공동 인식, 디지털·AI 기술을 활용한 창작과 유통의 혁신 촉진 등의 내용이 담긴 성명이다.
이외에도 고용노동장관회의, 교육장관회의, 통상장관회의, 식량안보장관회의, 여성경제회의, 에너지장관회의, 보건·경제고위급회의 등에서도 공동선언문이 채택됐다. APEC은 만장일치 방식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지기 때문에 공동선언문 채택은 의장인 대한민국의 리더십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5월 15~16일 양일간 열린 통상장관회의에서는 진통 끝에 극적 합의가 이뤄져 공동선언문이 채택됐다. 불확실한 글로벌 통상 환경으로 회원 간 의견 차가 컸지만 결국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APEC 정상회의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2025년 APEC 정상회의 준비기획단에 따르면 두 차례에 걸친 사전답사도 순조롭게 마무리됐다. 9월 30일부터 10월 1일까지 진행된 APEC 정상회의 제2차 사전답사에는 21개 회원 답사단을 비롯해 국내 유관기관 등 180여 명이 참석해 전반적인 사항을 점검했다. 정부도 마지막까지 총력을 다하고 있다. 준비기획단 관계자는 “남은 기간 동안 정부 부처, 경상북도 및 경주시, 참여 기업 모두 함께 힘을 모아 ‘초격차 K-APEC’으로 치러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김효정 기자

K-APEC은 문화 APEC!
APEC 기간 동안 경주 곳곳서 다양한 문화행사
2025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전후해 다양한 문화행사가 개최돼 축제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10월 24일부터 11월 16일까지 매일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국가유산인 경주 대릉원 일대에서 열리는 ‘2025 국가유산 미디어아트 경주 대릉원’ 행사는 경주의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을 전망이다. ‘대릉원 몽화, 천년의 문이 열리다’를 주제로 열리는 이번 행사는 경주대릉원에 첨단 미디어 기술을 접목해 시민과 관광객에게 색다른 예술적 감동을 선사한다.
경주 우양미술관에서는 11월 30일까지 한국을 대표하는 미디어아티스트 백남준의 전시 ‘백남준 : Humanity in the Circuit’가 열린다. 백남준의 1990년대 주요 작품을 중심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APEC의 주제인 ‘연결, 혁신, 번영’을 예술 언어로 풀어냈다.
국립경주박물관에서는 특별전 ‘신라 금관, 권력과 위신’이 10월 28일부터 12월 14일까지 진행된다. 신라 황금문화를 대변하는 금관 6점이 104년 만에 한자리에 모이는 전시다. 솔거미술관에서는 ‘신라한향 新羅韓香’ 특별전이 10월 22일부터 2026년 4월 26일까지 열린다. 경주 출신 수묵화 대가 박대성 화백, 불교미술 전문가 송천 스님 등이 참여해 전통과 현대, 예술과 생태의 접점을 탐구한다.
APEC 정상회의 기념공연 ‘서라벌 풍류’는 10월 22일부터 29일까지 매일 저녁 7시 첨성대 야외무대에서 진행된다. 국립정동극장 예술단은 10월 31일부터 11월 4일까지 경주엑스포대공원 문화센터 문무홀에서 공연 ‘단심(單沈)’을 통해 감각적인 무대를 선보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