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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김구 ‘뭉우리돌’ 정신으로 전 세계 돌며 10년… “잊지 않기 위해 찍는다”

서울 서대문독립공원 3·1독립선언기념탑 앞에 선 김동우 작가. 2017년부터 11개국을 다니며 국외 독립운동 사적지와 독립운동가 후손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다. 6 사진 C영상미디어

독립운동 흔적 카메라에 담는 김동우 작가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2018년 카자흐스탄 우슈토베의 한 작은 집. 고려인 지순옥 할머니가 동요 ‘반달’을 또렷한 우리말로 불렀다. 1922년 러시아 연해주에서 태어난 할머니는 열다섯 살에 강제이주 열차에 올라 중앙아시아로 떠나왔다. 머나먼 타국에서 살아온 할머니의 노래에는 세월에도 지워지지 않는 고향의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 노래를 듣다 끝내 밖으로 나와 눈물을 훔친 사람이 있었다. 한국에서 찾아온 사진작가 김동우(48)였다.
김 작가는 2017년부터 지금까지 11개국을 다니며 국외 독립운동 사적지와 독립운동가 후손을 찾아 카메라에 담고 있다. 그렇게 모은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은 작업이 ‘뭉우리돌을 찾아서’ 프로젝트다. ‘뭉우리돌의 바다’(2021), ‘뭉우리돌의 들녘’(2024)에 이어 최근 세 번째 책 ‘뭉우리돌의 광야’를 펴냈다. 모두 여섯 권으로 기획한 여정의 반환점을 돈 셈이다.
‘뭉우리돌’은 둥글둥글하게 생긴 큰 돌을 뜻하는 우리말로 김구의 ‘백범일지’에서 가져왔다.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된 김구에게 일본 순사가 “지주가 전답의 뭉우리돌을 골라내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냐!”며 고문하자 김구는 “오냐, 나는 죽어도 뭉우리돌 정신을 품고 죽겠고 살아도 뭉우리돌의 책무를 다하리라”며 맞섰다. 김 작가는 뭉우리돌에 대해 “변치 않는 마음, 초심을 잃지 않고 끝까지 이 프로젝트를 해내자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프로젝트의 시작은 2017년 인도 델리였다. 두 번째 세계일주 중 붉은 벽으로 둘러싸인 성채 ‘레드포트(Red Fort)’를 찾았다가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됐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한국광복군 인면전구공작대가 이곳에서 영국군의 훈련을 받았다는 것이다. 수업시간에 들어본 적 없는 역사였다. 놀라움은 곧 의문으로 바뀌었다. 왜 우리는 이런 역사를 모르고 있을까, 이 흔적들은 어떻게 기록돼 있을까.
자료를 파고들수록 미처 몰랐던 독립운동 사적지가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이를 제대로 보여주는 사진은 찾기 어려웠다. 결국 그는 직접 카메라를 들었다. 아무도 찾지 않는 묘소, 옛 모습을 잃어버린 사적지, 기억에서 멀어져가는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을 찾아 세계 곳곳을 누볐다. 광복 81주년을 맞아 10년 넘게 길 위의 작업을 이어온 김 작가를 만났다.

김진 선생의 묘소 바닥에 새겨진 ‘춘향전’의 한 소절

2017년 인도 레드포트에서 무엇을 보았기에 카메라를 들게 됐나요.
사진 작업의 주제를 찾으려고 세계여행을 하던 중이었어요. 인도에 우리 독립운동 사적지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이었죠. 자료를 찾아봤는데 대부분 연구나 조사를 위해 간단하게 남겨둔 사진 정도였어요. 역사는 중요하다고 배웠는데 정작 그 역사를 보여주는 사진은 너무 무성의하게 남아 있다는 생각에 화가 났어요. ‘내가 한번 제대로 보여주자’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원래 역사와 여행을 좋아했고 사진 공부도 계속 해왔던 터라 그 세 가지가 잘 버무려져 지금의 작업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국외 독립운동 사적지는 어떻게 찾았나요.
독립기념관 누리집에 국외 독립운동 사적지가 정리돼 있어요. 그걸 기본으로 삼지만 거기에 없는 곳도 많습니다. 논문이나 먼저 현장을 다녀온 분들의 책, 언론 인터뷰 등 여러 자료를 찾아봐요. 그렇게 장소를 추려 목록을 만들고 동선을 짜죠. 그런데 직접 가보면 새로운 장소를 발견하기도 해요. 현지 주민들이 알려주는 곳도 있고요. 그렇게 얻은 정보를 다시 더해가며 하나씩 찾아다니는 거예요.

옛 기록 속 지명과 현재의 지명이 다른 경우도 많겠어요.
처음 독립운동사를 공부할 때 그 점이 정말 어려웠어요. 예를 들어 연해주 자료를 보면 ‘수청’, ‘수찬’, ‘파르티잔스크’, ‘빨치산스크’처럼 제각각 적혀 있어요. 처음에는 서로 다른 곳인 줄 알았는데 모두 같은 지역을 가리키는 거였어요. 자료마다 이름과 표기가 다르다 보니 하나하나 대조하는 데 애를 많이 먹었어요. 이제는 경험도 쌓고 지식도 늘어서 나름의 노하우가 생겼어요.

현장에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있겠습니다.
기록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것들이 분명히 있어요. 자료에는 한 독립운동가가 1949년에 돌아가셨다고 돼 있는데 직접 찾아가 비석을 확인해 보니 1950년으로 적혀 있기도 해요. 저는 가족들이 세운 비석의 기록에 더 무게를 두는 편이에요. 현장에 서면 그곳이 얼마나 오랫동안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져 있었는지도 알게 돼요. 황야에 묘소 하나가 덩그러니 남아 있는데 아무도 찾질 않아요. 후손들을 만날 때면 가슴이 엄청 아파요. ‘그동안 우리는 이분들에게 무엇을 했나’ 싶은 생각에 답답하고 화가 날 때가 많아요.

유독 마음에 남는 곳이 있다면요.
이 질문은 너무 어려워요. 매번 바뀌거든요. 지금 떠오르는 곳은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있는 김진 선생의 묘소예요. 고려극장 최초의 인민배우로 30여 년간 100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하셨어요. ‘춘향전’에서 이몽룡 역을 맡은 최초의 배우로도 알려져 있고요.
묘소에 갔더니 따님인 김라다 여사가 무척 반가워했어요. 한국에서 찾아온 사람이 처음이라면서 무덤 옆 바닥에 놓인 돌을 한번 봐달라고 했어요. 열여섯 개의 보도블록 같은 돌이었는데, 낙엽과 흙을 걷어내니 돌마다 한 글자씩 한글이 새겨져 있었어요. ‘내, 가, 간, 들, 아, 주, 가, 며, 아, 주, 간, 들, 잊, 을, 소, 냐’. 그 순간 눈물이 핑 돌았어요. 강제이주를 당한 고려인들이 ‘우리를 잊을 거냐’고 묻는 것 같았어요.

세계 곳곳을 다니다 보면 위험한 순간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경찰에 붙잡혀 조사를 받거나 사진을 삭제당한 적도 많아요. 그런 건 크게 겁내지 않는데 외진 산속에 들어갈 때는 이야기가 달라요. 한번은 중국 간도 봉오동전투 현장에 출입 허가를 받아 대여섯 명이 함께 들어갔어요. 산 능선을 따라 독립군이 파놓은 참호가 남아 있었어요. 당시 사용한 탄피가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 서너 곳을 팠어요. 예전에는 마을 사람들이 나물을 캐러 다니다 탄피를 주워 엿과 바꿔 먹었다는 이야기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첫날 아무것도 찾지 못한 겁니다. 아예 혼자 밤을 보내고 다음 날까지 찾아볼 심산이었어요. 별이 뜬 봉오동도 사진에 담고 싶었고요. 버려진 막사에서 잠깐 자면 되겠거니 했는데 ‘호랑이 출몰’이라고 적힌 경고문이 보였어요. 그건 감당이 안 되겠더라고요.(웃음) 결국 탄피는 찾지 못하고 돌아왔지만 늘 그런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서 찍고 싶어요.

독립운동가 한성걸의 손자 한블라디슬라브. 김동우 작가는 사라져가는 역사와 기억을 표현하기 위해 후손의 모습을 희미하게 담는다. 사진 김동우 작가

김 작가는 독립운동가 후손을 희미한 형상으로 촬영한다. 사라져가는 역사와 기억을 상징하는 동시에, 잊지 말자는 의미를 담는다. 시간도 사진의 일부다. 윤봉길 의사가 순국한 일본 가나자와에서는 순국일인 12월 19일 오전 7시 30분에 맞춰 셔터를 눌렀다. 그가 마지막으로 바라봤을 빛과 하늘을 조금이라도 담아내고 싶어서였다.
일본 브랜드의 카메라도 사용하지 않는다. 독립운동가와 후손에 대한 예우다. 묘소를 촬영할 때는 “처음 뵙겠습니다,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한 뒤 묵념에 충분히 시간을 들인다. 그는 “공동묘지에 혼자 있어도 별로 무섭지 않다. 그분들이 나를 보호해주실 거라는 믿음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 하와이 사탕수수밭에서는 이민 노동자의 휴식시간에 맞춰 하늘을 찍었다고요.
당시 이민 노동자들이 어떻게 일했는지 자료부터 찾아봤어요. 새벽 4~5시에 일어나 오전 6시부터 일하고 점심시간은 30분 정도였다고 해요. 그렇게 사탕수수밭에서 번 돈을 아껴 독립운동 자금으로 보탰고요.
그들이 잠깐 눈을 붙였다가 바라봤을 하늘을 찍어보고 싶었어요. 단잠은 얼마나 달콤했을까, 눈을 떴을 땐 하늘이 노랗게 보일 정도로 피곤하지 않았을까. 단순히 제가 원하는 시간에 가서 한 장 찍는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해요. 왜 그 시간에 그 사진을 찍었는지 서사가 더해져야 사람들이 한 번 더 들여다보고 역사를 느낄 수 있으니까요. 방대한 역사를 한 장의 사진에 어떻게 녹여낼지는 늘 숙제예요.

타국에서 만난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무엇을 가장 바라던가요.
자신들을 찾아와주고 조상을 기억해준다는 것 자체로 정말 기뻐하세요. 제가 대한민국 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느냐고 물어도 대부분 없다고 해요. 그저 우리 역사를 널리 알려달라는 정도예요. 오히려 “여기까지 먼걸음 해줘서 고맙다. 밥 먹고 가라”고 하시죠.
또 하나 신기했던 건 여러 세대가 지나도 입맛은 변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언어도 모습도 변하는데 입맛은 끝까지 남아 있더라고요. 한번은 “김치 먹고 싶지 않냐”며 제 입에 넣어주셨는데 한국에서 먹는 것과 거의 비슷한 맛이었어요. 맛은 언어보다 질기고 기억보다 또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독립운동사를 공부하면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느낀 가치는 뭔가요.
나라에 힘이 없으면 국민이 불행해진다는 건 너무 자명한 결과예요. 그래서 대한민국이 더 잘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만 잘되면 된다는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아요. 내 주변이 함께 잘되고, 그게 사회로 넓어져야 결국 나라도 잘되는 거잖아요. 선조들이 중요하게 여겨온 ‘우리’, ‘더불어 사는 가치’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계속 길을 나서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요.
‘나 아니면 누가 여기까지 와서 기록할까’ 하는 마음 때문이에요. 이분들의 흔적과 순간을 정성스럽게 남겨드리고 싶어요. 마음을 다해 기록하는 거죠. 앞으로 일본을 다룬 ‘뭉우리돌의 별’을 비롯해 중국편 ‘뭉우리돌의 길’, 하와이편 ‘뭉우리돌의 낙원’을 계획하고 있어요. 하와이는 한 번 더 가서 작업하고 싶은데 비용이 만만치 않아 고민이에요. 그래도 어떻게든 길이 생기더라고요. 강연에 불러주시고 도움을 주시는 분들도 생기고요. 모든 시리즈를 마친 뒤에는 남태평양에 있는 강제징용 현장까지 집대성하는 게 꿈입니다.

이근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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