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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천천히 걸어야 보인다… 북한산의 또 다른 얼굴

천천히 걸어야 보인다… 북한산의 또 다른 얼굴

‘K-마운틴’ 열풍의 선두에는 북한산이 있다. 외국인을 홀리는 마성의 산이다. 인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대도시 인근의 바위산이란 매력이 압도적이다. 지난해 북한산을 찾은 탐방객은 753만 명. 2012년 774만 명 이후 가장 많았다.
북한산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은 단연 정상인 백운대다. 하지만 지역주민들이 사랑하는 길은 조금 더 낮은 곳에 있다. 북한산과 그 옆에 마주 솟은 도봉산 자락을 크게 한 바퀴 도는 ‘북한산 둘레길’이다. 복잡한 도심에서 조금만 걸으면 깊고 청정한 국립공원 숲을 만날 수 있다는 게 이 길의 매력이다.
북한산 둘레길은 2010년 국립공원공단이 조성했다. 국립공원이 직접 만든 최초의 둘레길이다. 산악 문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오랫동안 우리 산행은 정상 정복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자연히 특정 탐방로에 사람이 몰렸고 환경 훼손도 뒤따랐다. 탐방객의 발걸음을 분산할 필요가 있었다.
그때 국립공원공단의 눈에 들어온 것은 북한산 자락 곳곳에 흩어져 있던 샛길이었다. 정상으로 곧장 오르지 않고 산허리를 따라 돌아가는 길이어서 이용객이 많지 않았다. 이 길들을 하나로 잇자 새로운 걷기의 가치가 만들어졌다. 여유와 느림의 미학이다. 느긋하게 걷고, 주변을 둘러보고, 자연과 마주하는 길이다.
전체 거리는 71.5㎞. 누구나 부담 없이 걸을 수 있으면서도 완주에 대한 도전 욕구를 자극할 만큼 길다.
북한산 둘레길은 모두 21구간으로 나뉜다. 1~20구간은 북한산과 도봉산 자락을 따라 이어지고, 21구간은 북한산과 도봉산 사이를 가로지른다. 한 구간은 평균 3㎞ 안팎. 도보여행객들은 보통 한 번에 3~4개 구간을 이어 걷는다.

2구간 순례길은 국립 4·19민주묘지를 휘돌아 지난다. 전경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도 있다. 사진 조선일보DB

3구간에서 만날 수 있는 화계사. 해외포교에 앞장선 사찰로 알려졌다.

3구간에 있는 빨래골지킴터. 조선시대 무수리들이 빨래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사진 C영상미디어

서울의 역사·생태·조망 들여다보기
첫 도전이라면 가장 인기가 높은 1~3구간이 좋다. 역사와 자연, 서울의 풍경이 한꺼번에 들어온다. 북한산은 오랜 세월 서울의 뒤뜰이었다. 때문에 다양한 역사와 문화의 흔적이 남아 있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뒤에는 생태도 잘 보전돼왔다. 숲 사이로 조망이 열리는 곳에서는 멋진 산그리메와 더불어 서울 도심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모든 매력이 압축된 길이 1~3구간이다.
1구간 이름은 ‘소나무숲길’이다. 북한산은 참나무가 많은 산이지만 이 구간에서는 유난히 소나무가 눈에 띈다. 웅장하면서도 곧게 뻗은 소나무가 약 1000그루에 이른다. 부드럽고 편안한 흙길을 따라 걷다 보면 솔밭근린공원으로 이어진다.
2구간부터는 발걸음이 한층 차분해진다. 이름부터 ‘순례길’이다.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네덜란드 헤이그로 향했던 구한말 최초의 검사 이준 열사와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 이시영 선생의 묘소를 지난다. 광복군 합동 묘소와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이들이 잠들어 있는 국립4·19민주묘지도 만난다. 걷는 길마다 역사의 시간이 겹쳐진다.
3구간 ‘흰구름길’은 북한산 둘레길의 하이라이트로 꼽힌다. 특히 12m 높이의 구름전망대에 오르면 걷던 방향을 잠시 잊게 된다. 원형계단을 따라 전망대 꼭대기에 이르면 북한산의 주요 봉우리인 인수봉, 백운대, 만경대, 영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시선을 조금 멀리 돌리면 도봉산에서 수락산, 불암산, 아차산으로 이어지는 서울 근교 산줄기가 펼쳐진다. 산 아래로는 서울 도심이 이어지면서 산과 도시가 한 장면에 포개진다.
길 한가운데서 만나는 화계사도 빼놓을 수 없다. 해외포교에 앞장선 사찰로 알려진 곳이다. 해외 각국에서 온 외국인 스님들이 수행하는 국제선원도 자리하고 있어 산길에서 뜻밖의 풍경을 만나게 된다.
세 구간을 이으면 총 9.5㎞. 넉넉하게 4시간 30분 정도 잡으면 된다. 경사가 완만하고 나무데크가 잘 깔려 있어 난이도는 높지 않다. 다만 이 길에서는 서두르지 않는 편이 좋다. 완주에 급급하기보다 길가에 핀 꽃 한 송이에 눈길을 주고, 숲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을 느끼고, 순국선열의 흔적 앞에서 잠시 걸음을 늦춰보자. 그래야 이 길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서현우 월간<산> 기자

북한산 둘레길 구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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