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문화/생활

한계는 어디? K-팝·발레·록… 거문고를 뒤집다

박다울은 첼로 활로 거문고 현을 뜯거나 루프스테이션을 연결해 소리를 쌓는 등 국악의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하고 있다. 사진 C영상미디어


마크롱 대통령도 반한 거문고 연주자 박다울
하얀 두루마기를 입은 청년이 오른손에 술대(대나무채)를 쥐고 거문고 현을 뜯는다. 왼손으로는 현을 짚어 음을 맞춘다. 이내 오른손에 들린 것은 술대가 아닌 첼로의 활이다. 첼로를 연주하듯 활이 거문고 현 위를 미끄러지듯 오간다.
지난 4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방한을 계기로 열린 이재명 대통령 부부와의 친교 만찬에서 거문고 연주자 박다울이 선보인 무대다. 연주가 끝나자 마크롱 대통령은 박다울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마크롱 대통령은 “현대와 전통이 어우러진 연주가 좋았다. 한국의 창조적인 정신을 나타내는 것 같다. 정말 멋지다”며 어떻게 활을 사용할 생각을 했는지, 거문고는 어떤 악기인지, 어떻게 소리를 내는지 등 질문을 쏟아냈다. ‘박다울의 거문고’는 마크롱 대통령에게만 신기한 장면이 아니다. 한국인에게도 낯선 풍경이다. 일반적인 거문고 연주와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박다울에게 거문고는 악기이면서 하나의 도구다. 술대로 현을 휘갈기고 팔을 크게 휘두르며 연주하다가 때로는 거문고를 내리친다. 거문고와 루프스테이션(일정 구간을 반복 재생하는 장치)을 연결해 소리를 차곡차곡 쌓기도 한다.
K-팝 가수 화사의 히트곡 ‘멍청이’를 거문고로 연주한 영상으로 화제를 모았다. 익숙한 K-팝 선율 위에 거문고 특유의 묵직하고 또렷한 소리를 얹었다. 술대가 현을 쓸고 내리칠 때마다 리듬이 살아났고 노래에 맞춰 움직이는 몸짓까지 더해지면서 원곡과는 전혀 다른 에너지를 만들어냈다.
지난 5월 서울시발레단의 ‘인 더 뱀부 포레스트(In the Bamboo Forest)’ 무대에는 북과 장구, 징소리가 울렸다. 거문고의 선율과 팽팽한 거문고 줄처럼 역동적인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겹쳐지며 푸르른 대나무 숲의 생명력을 표현했다. 60분 무대를 채운 박다울의 음악은 발레와 국악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K-팝에서 발레까지,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거문고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박다울. 그는 2021년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밴드2’를 통해 대중에 이름을 알렸다. 전통적인 소리를 바탕으로 거문고의 문법을 끊임없이 비틀어온 그는 ‘거문고로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의 답을 무대 위에서 보여주고 있다.

2025년 카디 단독 콘서트 현장. 사진 표혜지 작가

2025년 카디 단독 콘서트 현장. 사진 표혜지 작가

“거문고 6줄, 가야금은 12줄”
박다울이 처음 거문고를 잡은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다. 아파트 단지 내 국악학원에서 자연스럽게 국악기를 접했고 선생님의 권유로 국립국악중학교에 진학했다. 이후 국립국악고등학교, 서울대학교 국악과에서 다양한 전통악기를 다뤘다. 그 가운데서 박다울은 유독 거문고에 끌렸다.
“학교에서는 전통곡을 중심으로 배웠어요. 비슷한 형식의 공연을 많이 했는데 어느 순간 조금 다른 걸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원래 악기를 가지고 이것저것 해보는 걸 좋아하기도 했고요.”
졸업 후 서울문화재단 지원사업에 선정돼 공연을 준비하면서 본격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시작했다. 거문고가 가진 타악기적 요소를 극대화해 보자는 생각이었다.
거문고는 술대로 현을 치거나 뜯어 소리를 낸다. 거문고 현은 명주실로 만들어져 소리가 길게 이어지지 않는다. 술대가 현과 악기 몸체에 닿으면서 나는 소리도 크다. 서양 현악기처럼 길게 음을 끌어가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는 오히려 그 한계에서 가능성을 찾았다.
“거문고는 서스테인(sustain·지속하는 힘)이 굉장히 짧고 멜로디로 연주하기 어려워 독주 악기로 활용하는 데 제약이 있어요. 어떻게 하면 독주 악기로 가져갈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 고민에서 나온 곡이 2024년 한 자동차 광고 음악으로도 쓰인 ‘거문장난감’이다. 연주할 때 보여주는 역동적인 몸짓에는 고등학교 시절 배운 탈춤이 배어 있다. 그는 이런 경험들이 몸을 쓰는 감각의 토대가 됐다고 했다. 자체 유튜브 채널 ‘거문고의 대중화’를 운영하며 거문고와 대중의 거리를 좁히려는 노력도 계속하고 있다.
“제가 목표하는 대중화는 가야금과 거문고를 구별할 수 있는 정도예요. 두 악기 모두 이름은 익숙하지만 실제 모습을 구별하거나 소리를 알아듣기는 어렵거든요. 쉽게 말해 거문고는 6줄, 가야금은 12줄이라는 것만 알아도 대중화라고 생각해요.”

국악기 쓰는 록밴드
다만 자신의 모든 작업을 ‘국악의 대중화’라는 목표로 설명하지는 않는다. 박다울은 록밴드 ‘카디’(보컬 김예지, 기타 황린, 베이스 황인규, 거문고 박다울)의 멤버로도 활동 중이다. 박다울은 “국악이라기보다 국악기를 쓰는 록밴드에 가깝다”고 표현한다.
“어디까지 창작한 것을 국악이라고 볼 것인가에 대한 논쟁은 여전해요. 민요나 판소리 같은 바탕이 있어야 국악이지 않을까요. 카디는 보컬 창법도 그렇고, 음악을 쓰는 어법도 국악에서 조금 벗어났다고 보는 분들도 있어요. 그럼에도 카디만의 역할은 있어요. 우리 무대를 보다가 연주하는 악기가 거문고인지 가야금인지 찾아보기만 해도 저의 성공이자 카디의 성공이에요.”
실제로 한 초등학생은 그의 무대를 보고 거문고를 배우기 시작했다며 사진과 편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누군가가 그의 연주를 통해 국악기의 이름을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그가 말하는 ‘대중화’에 한 걸음 가까워진 셈이다.
박다울은 K-팝과 드라마를 중심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K-콘텐츠의 흐름이 국악으로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한국적인 소재를 활용하거나 이름 앞에 ‘K’를 붙인다고 해서 세계에서 통하는 콘텐츠가 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국악이 대중적이지 않은데 어떻게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을 수 있겠어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죠. 해외 무대에 서면 한국 전통악기가 있으니 신기하게 보는 건 맞아요. 하지만 결국 관객들이 보는 건 보컬의 목소리와 그 팀의 음악 스타일이에요.”
카디도 그런 방식으로 해외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내년에는 북미 투어도 계획하고 있다. 한국적인 것을 보여주는 데 머무르기보다 좋은 음악을 통해 한국 악기의 존재감을 드러내겠다는 것이다.

K-팝·발레·게임까지
최근 박다울은 무대에서 거문고를 연주하는 것보다 음악을 만드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 지난해 말 국립부여박물관에 문을 연 ‘백제대향로관’(국보 백제금동대향로 전용 전시관)에 흐르는 음악 작업에도 참여했다. 향로에 조각된 다섯 악기를 바탕으로 박백수팀(박다울·백하형기·한지수)이 음악을 만들었다.
“현장을 먼저 찾았어요. 공간을 둘러보며 ‘이곳에는 어떤 음악이 흘러야 할까’, ‘그 시대에는 어떤 음악을 들었을까’를 상상했죠. 관람객이 오가는 동안 계속 들어도 피로하지 않을 음악을 고민했고요.”
게임 음악에도 도전했다. 카디는 온라인게임 ‘프리스타일 풋볼2’의 메인 테마곡 제작을 마쳤고, 9월 18일 개막하는 ‘2026 국가유산 미디어아트 통영 삼도수군통제영’의 음악연출을 맡았다.
다양한 장르로 보폭을 넓히고 있는 그가 전통과 창작 사이에서 끝까지 지키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의외로 답은 간단했다.
“변하지 않는 것이 본질 아닐까요? 제가 하는 작업이 본질을 해친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한때는 거문고 연주자로 세계 최고가 되고 싶었다는 그는 지금은 ‘거문고로 어떤 음악까지 할 수 있을지’를 더 고민한다고 말했다. 거문고와의 관계를 묻자 웃으며 말했다.
“애증의 관계? 처음 거문고를 탔을 때의 느낌이나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돌이킬 수 없는 관계죠.”
그의 유튜브 채널에는 이런 댓글이 달려 있다. ‘제발 외국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 우리만 보기 아깝다.’
어쩌면 박다울이 가고 있는 길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그가 만드는 것은 단지 새로운 거문고 음악이 아니다. 전통에 뿌리를 둔 여섯 줄의 소리를 세계인의 귀에 닿게 하는 일이다.

이근하 기자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