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농정 전반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강화하는 ‘농정 대전환’ 작업에 나섰다. 이재명정부는 임기 동안 추진할 국정과제에 농업·농촌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정책을 포함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을 보장해 농사를 포기하지 않도록 돕고 태풍, 폭우 등 자연재해로 인한 농민의 피해를 적극 보상하는 방안 등이 주요 내용이다. 여기에는 농업을 ‘대한민국의 균형발전과 식량안보를 책임지는 국가적 전략사업’으로 보고 농정 대전환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바꾸겠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됐다.
인구감소, 고령화, 경영비 상승, 기후위기 등 개별 농가 차원에선 대응이 어려운 난제들을 동시에 안은 농촌의 과제를 해결하려는 정부의 방안은 무엇인지 살펴봤다.



농가소득안전망 내실화
통계청의 2024년도 농가소득 자료에 따르면 전국 농가의 평균 소득은 5059만 7000원이었다. 농가소득은 농가에서 1년간의 경제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재화를 의미한다. 농업소득, 농업외소득, 이전소득 등으로 구성된다.
반면 같은 해 2인 이상 거주하는 도시 근로자 가구의 월평균 가계소득은 720만 5311원으로 연 8646만 3732원이다. 가구원 수나 도시·농촌 간 물가 차이를 고려하지 않았지만 도시 근로자의 소득이 농가소득보다 많다는 것을 파악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
농가소득 중에서도 농업소득은 농산물의 판매 수입에서 생산 활동에 들어간 비용 일체를 차감한 일종의 농사 손익계산서다. 이 수치로 살펴보면 농가의 소득 수준은 더욱 내려간다.
이에 정부는 70세 미만 농가의 소득을 도시 근로자 가구의 평균 소득 수준까지 높이는 것을 목표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한다. 우선 농가소득안전망의 기초가 되는 공익직불금 규모를 확대한다. 공익직불금은 농업 활동을 통해 식품안전, 환경보전, 농촌유지 등 공익을 창출하고 농가소득을 안정화하기 위해 정부가 농업인에게 지원하는 보조금이다. 정부는 기존 직불금의 단가를 높이는 한편 기본형이 아닌 선택형 직불제에 기후변화적응, 동물복지축산 등의 프로그램을 새로 도입한다.
농산물 가격안정제도도 신설한다. 농산물 가격안정제도는 농산물의 시장가격이 기준가격 미만으로 하락하는 경우 정부가 생산자에게 그 차액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지급하는 정책이다. 최근 이상기후에 따른 농가의 경영위험을 완화하고 국민에게는 안정적인 가격으로 농산물을 공급할 것으로 기대된다.

걱정은 덜고 혁신은 더하고
이와 함께 각종 재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강화한다. 농업수입안정보험과 농작물재해보험의 보장 범위를 확대하고 재해대책비 규모를 늘린다. 농업수입안정보험은 자연재해에 따른 수확량 감소나 시장가격 하락에 따른 손실을 보상하는 보험이다. 수확량과 가격 변동을 동시에 반영하므로 농가의 실질적인 수입 변동 완화에 기여할 수 있다. 현재 고구마, 마늘, 보리, 양배추 등 15개 품목을 대상으로 지원이 이뤄지고 있지만 내년에는 20개 품목으로 보장 범위가 확대된다. 농작물재배보험, 재해대책비 등도 보장을 강화한다.
또 재해 피해를 입은 농민의 재기를 돕기 위한 지원체계가 견고해진다. 재해보상비 책정 시 재해 이전까지 투입된 생산 비용 전부 또는 일부를 지원한다. 다만 보험 가입 여부 등을 고려해 지원 수준에는 차등을 둔다. 자연재해 등으로 인한 피해가 일정 범위를 초과하는 경우 해당 피해로 인한 손해는 재해보험료 할증 시 제외한다. 비보험작물도 보험 방식으로 개별 농가의 피해를 측정해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한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재해위험지도를 구축하고 재해 조기경보 시스템을 전국으로 확대하는 등 재해 대응체계도 강화한다.
부족한 농업 인력 지원에도 나선다. 공공형 계절근로자 운영기관을 200곳까지 확대한다. 당장 내년에도 정부는 공공형 계절근로센터 20곳, 근로자 기숙사 5곳을 399억 원을 들여 추가 선정한다. 올해 계절근로자 배정 인원은 8만 6633명이며 7월 말 기준 5만 4986명이 현장에 투입됐다. 기존 외국인근로자 3만 4321명까지 합하면 전체 규모는 8만 9307명이다. 이는 전년 동기의 6만 9464명과 비교해 28.5% 증가한 수치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수확기에 일손 부족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법무부와 협조해 내·외국 인력을 충분히 공급하고 지원 대상에 농협 및 체험마을 유휴시설 리모델링을 포함, 공공 기숙사를 신속히 확대·보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농업 세대전환 가능한 토대 마련
국내 농가는 지속적인 인구감소와 고령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통계청의 ‘2024년 농림어업조사 결과’ 자료에 따르면 전국 농가 인구는 2021년 221만 5000명에서 2024년 200만 4000명으로 10% 가까이 감소했다. 여기서 농가는 논이나 밭을 1000㎡(10아르) 이상 직접 경작, 지난 1년간 직접 생산한 농축산물 판매금액이 120만 원 이상, 사육하는 가축의 평가액이 120만 원 이상인 가구를 의미한다.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질 경우 2025년도 조사에선 농가 인구가 200만 명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통계청은 고령에 따른 농업 포기, 전업 등으로 농가 인구가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고령인구 비율은 2021년 46.8%에서 2024년 55.8%로 10%포인트(P)가량 높아졌다. 농가 고령인구 비율은 2023년 조사에서 52.6%를 기록, 처음으로 절반을 넘어섰다.
정부는 고령 농부들의 은퇴를 돕고 청년농의 시작을 지원하는 등 농업 분야의 세대전환을 위한 정책을 추진한다. 농업 분야에 활력을 불어넣음으로써 미래에 닥칠 수 있는 식량안보 위기를 예방하고 농산업의 부가가치를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한 조치다.
예비농업인 제도 도입 등 청년 농업인재 1만 명 양성에도 힘쓴다. 예비농업인 제도는 청년에게 멘토링과 농업법인 등지에서 영농 경험을 쌓는 등 실습 기회를 제공해 성공적인 창업을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다.
청년농의 안정적 농지 확보 등을 위해 공공임대용 농지를 두 배 확대해 청년에게 우선 임대하고 청년농이 창업 초기에 농지를 빌려 쓰고 향후 매입까지 할 수 있는 선임대·후매도 방식의 농지 공급도 확대한다. 자본력이 부족한 청년농의 산업 유입을 촉진하고 이들이 농업에 지속적으로 종사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기 위한 정책이다.
정부는 2030년까지 공동영농법인 100곳을 육성한다. 공동영농법인은 농가로부터 땅을 빌려 소득이 높은 작목을 선정해 이모작 등을 실시, 효율을 극대화하는 경영 방식을 추구한다. 농가에는 배당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보상한다.
한 예가 청년들이 주축이 돼 경북 문경시 영순면 공동영농단지에 조성한 혁신농업타운이다. 이곳 주민 80명은 법인에 땅을 빌려주고 2024년 총 9억 8000만 원의 배당금을 받았다. 인당 1247만 5000원꼴이자 1헥타르(약 300평)당 900만 원 수준이다. 벼농사를 지은 이전의 농업 생산액은 7억 7900만 원이었지만 법인이 사업을 실시한 후에는 24억 7900만 원의 가치를 생산, 세 배 이상 효율을 높였다. 고령의 농민은 고된 농사일을 하지 않으면서도 소득을 얻고 법인도 수익을 올렸으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정부는 공동영농법인의 생산과 경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시설·장비, 마케팅·판로 등을 종합적으로 지원할 예정이다.
퇴직연금형 저축을 도입하고 농지이양 은퇴 직불금의 단가를 인상하는 등 충분한 노후소득 보장체계도 구축한다. 농민은 정년이 따로 있진 않지만 퇴직연금 가입 대상자가 아니라 노후 대비에 상대적으로 취약했다. 농지이양 은퇴 직불금은 고령의 농업인이 청년농업인에게 농지를 이양하고 은퇴할 경우 매월 일정 금액의 직불금을 최대 10년간 지급하는 제도다.
고유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