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문화/생활

다정함은 국경도 넘는다 K-힐링 세계인의 마음에 닿다

김호연 작가의 ‘불편한 편의점’은 50여 개국에 30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돼 출간됐다. 신간 ‘서울의 선인’은 국내 출간 전 일본 출판사와 판권 계약을 맺었다. 사진 C영상미디어

50여 개국 수출 ‘불편한 편의점’ 김호연 작가
“한국 편의점에 가면 ‘산해진미’ 도시락을 먹을 수 있나요? ‘참참참’은요?”
지난 6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한국 문학 소개 현장, 한 외국인 독자가 김호연 작가에게 물었다. ‘산해진미’는 서울역 노숙자 출신의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생 ‘독고’가 가장 좋아하는 도시락이다. ‘참참참’은 고단한 하루를 마친 영업사원 ‘경만’이 참깨라면과 참치김밥을 안주 삼아 참이슬 소주를 마시는 조합이다. 모두 김 작가의 장편소설 ‘불편한 편의점’(2021) 속에 등장한다.
‘불편한 편의점’은 코로나19가 일상을 뒤흔든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서울 청파동의 작은 편의점을 배경으로 무명 시나리오 작가, 공시생, 중년 가장 등의 사연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이어진다. 출간된 해 전국 각지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고 현재까지 50여 개국에 출판권이 수출돼 30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됐다. “위태롭고 불편한 시대에 따뜻한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고자 했다”는 김 작가의 바람이 국경 너머까지 닿은 것이다.
한국과 유사한 상점 문화나 24시간 편의점이 없는 스페인에서는 ‘염 여사의 경이로운 상점’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됐다. 현지 언론은 이 책을 두고 “인류를 살리고자 하는 열망을 담은 한국 문학”이라고 평했다. 낯선 공간보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목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김 작가는 올해에만 홍콩, 아르헨티나, 폴란드, 프랑스, 덴마크, 일본 등을 오가며 현지 독자들을 만났다. 나라마다 문화와 언어는 달랐지만 독자들이 공감하는 지점은 놀랄 만큼 닮아 있었다. 힘겨운 가장의 모습, 자식과 소통하지 못하는 부모의 마음, 낯선 이에게 건네는 다정함과 위로에 저마다 자신의 삶을 겹쳐 읽었다.
“북유럽이나 프랑스, 브라질, 아르헨티나 모두 비슷했어요. 한국 문화에 대한 궁금증을 제외하면 감정과 정서에 관한 질문은 거의 같았어요. 결국 보편적인 정서를 담고 있기 때문에 세계 독자들에게도 사랑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때마침 ‘힐링픽션’이라는 흐름도 생겼고요. 코로나19를 지나고 전쟁과 기후재난까지 이어지면서 사람들이 많이 지쳐 있었던 것 같아요. 팍팍한 현실 속에서 위로를 받고 싶은 마음이 ‘불편한 편의점’과 만난 게 아닐까 생각해요.”

2025년 6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북토크. 무대 위 출연자들 앞으로 관객들이 가득 자리를 채우고 있다. 사진 김호연

K-힐링 신작 출간 전부터 해외로
소소한 이야기를 다룬 작품들은 코로나19 전후 해외 출판시장에서 ‘아시안 힐링픽션’으로 묶이기 시작했다. 일본 소설 ‘모리사키 서점의 나날들’, ‘커피가 식기 전에’가 인기를 끈 데 이어 황보름 작가의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이미예 작가의 ‘달러구트 꿈 백화점’, 윤정은 작가의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 유영광 작가의 ‘비가 오면 열리는 상점’ 등 한국 작품들도 해외 독자들의 선택을 받았다. 흥행에 힘입어 ‘K-힐링픽션’이라는 장르까지 등장했다. 최근에는 국내 작가들의 신작이 출간 전부터 해외에 선판매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김 작가의 신작 ‘서울의 선인’도 국내 출간 전 일본 대표 출판사 소학관과 판권 계약을 맺었다.
김 작가는 7월 초 일본에서 열린 ‘제1회 K-BOOK in Tokyo’에 참석했다. 일본에 번역 출간된 한국 문학과 작가를 소개하는 자리였다. 2024년 일본 서점대상 번역소설 부문 3위에 오른 그를 향한 관심은 뜨거웠다. 일본 다이칸야마 쓰타야서점에서 열린 50명 정원 북토크에는 80여 명이 몰려 일부 참석자는 선 채로 지켜봤다. 이튿날 주일 한국문화원 강당에서 열린 300석 규모 토크쇼에도 정원을 웃도는 인파가 일찍부터 줄을 섰다.
“일본 독자들은 한국말을 정말 많이 알아들어요. 3분의 1 정도는 제 말이 통역되기도 전에 웃으면서 반응해요. 이번에는 통역사님이 ‘이제 통역 필요 없을 것 같다’고 하셨을 정도니까요. 사인회에 한국어판 책을 들고 오는 분들도 많아요. 한국말로 ‘교보문고에서 샀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인상적이었던 해외 북토크 풍경으로는 지난해 다녀온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도서전을 꼽았다. 독자들이 춤을 추며 행사장에 들어왔고, 브라질 편의점에서 파는 빵을 건네며 작품 속 메뉴와 비교해달라고 했다. 김 작가의 얼굴을 프린트한 에코백을 맞춰 들고 온 가족도 있었다.
“그야말로 ‘삼바’예요. 다들 텐션이 하늘을 찔러요. 북토크 자체가 축제 같더라고요. 저한테 계속 음식을 먹이면서 한국 음식과 비슷한지, 참참참에 견줄 만한 메뉴인지 물어보고요.(웃음) 반면 같은 남미라도 아르헨티나 독자들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어요. 한국 소설이 이렇게 인기 있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처럼 좀 더 디테일한 질문이 많았어요. 나라마다 책을 받아들이고 즐기는 방식이 다르다는 게 재밌었어요.”

2026년 4월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부에노스아이레스 국제도서전 현장. 사진 김호연

K-팝·K-드라마·K-푸드 다음은 K-문학
그는 세계 독자들과 마주하며 한국 문화의 달라진 위상을 실감했다. K-팝과 K-드라마, K-푸드 등으로 한국을 익숙하게 접한 외국인들의 시선이 K-문학으로 옮겨오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덴마크에서 열린 300석 규모의 유료 북토크도 순식간에 가득 찼다. 현지 독자들은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고 사인을 받으면서도 한국에 관한 대화를 한마디라도 더 나누려 했다.
이탈리아 출판사 편집자의 일화도 전했다. 김 작가에 따르면 ‘불편한 편의점’을 출간한 현지 출판사는 이전까지 한국 책을 한 번도 펴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판권을 사들인 데는 높아진 한국의 인지도가 문학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편집자의 판단이 있었다. 김 작가는 “한류가 고속도로를 깔아줬다”며 “음악과 드라마, 음식처럼 직관적으로 한국을 즐기던 사람들이 이제 조금 더 깊이 한국을 알고 싶어 책을 찾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K-문학의 확산을 한류의 후광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고 했다. 기획 단계부터 글로벌 시장을 염두에 두기도 하는 콘텐츠와 달리 소설은 해외시장을 겨냥해 만들어지는 경우가 드물다. 김 작가 역시 국내 독자들에게 좋은 작품으로 평가받는 일이 먼저였다고 했다. ‘불편한 편의점’은 그의 다섯 번째 장편소설이다. 데뷔작 ‘망원동 브라더스’(2013) 이후 이렇다 할 흥행작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한국 독자들에게 인정받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요. 저도 조금이라도 더 좋은 소설을 쓰려고 애쓰다가 다섯 번 만에 성공한 거예요. 한류가 물꼬를 터준 것은 맞지만 한국 문학은 이미 준비돼 있었다고 생각해요. 힐링픽션뿐 아니라 SF와 호러 등 다양한 장르의 한국 작품이 해외에서 읽히고 상도 받고 있으니까요.”
김 작가는 6월 말 신작 ‘서울의 선인’을 출간했다. 의인상 수상자 출신인 철물점 주인 앞에 자신을 천사라고 소개하는 재미교포가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번에도 그 중심에는 보통의 사람들이 있다.
“10년 전부터 고민해온 이야기예요. 우리 사회가 갈수록 각박해지고 범죄가 끊이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악인이 득세하는 사회가 돼가는 건 아닌가 하는 우울한 생각이 저를 지배했어요. 우리 사회의 선과 악에 대한 논의를 풀어보고 싶었어요. 2024년 12월 비상계엄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어요. 계엄과 같은 인위적인 재난이든 자연재해든 큰 혼란이 닥친다면 선인과 악인은 어떻게 행동할까 궁금했어요. 저와 같은 나이대의 평범한 중년 남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죠.”
그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조금 특별한 설정을 더한다. ‘망원동 브라더스’에서는 평범한 네 남자를 8평 옥탑방에 모았고, ‘불편한 편의점’에서는 노숙자 출신 아르바이트생을 등장시켜 변화를 만들어냈다. 그는 “일상은 쉽게 지나치기 마련이지만 들여다보면 공감할 수 있는 소재가 끊임없이 나온다”며 “결국 소설은 인간과 인간성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계속 쓸 수 있는 힘은 독자”
그는 초고를 수없이 고쳐 문장을 다듬고 읽고 또 읽으며 리듬을 다진다. 페이지를 넘기는 찰나에도 이야기가 끊기지 않도록 문장 배치까지 조정한다.
“잘 읽힌다고 해서 쉽게 썼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그렇게 읽히도록 쓰기 위해 수없이 고쳐요. 독자들이 책을 읽는 동안 제가 만든 세계에 온전히 빠져들었으면 좋겠어요. 푹 빠졌다가 ‘나는 어떻게 살고 있지?’라는 질문을 가져갈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요.”
그가 독자들에게 자주 받는 질문이 있다. 오랜 무명 시절에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쓸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의 답은 ‘독자’였다. 얼마 전 찾은 중학교에서는 주인공에게 편지를 쓴 학생부터 다음 이야기를 상상해 써온 학생, 등장인물의 MBTI를 분석해 캐릭터 소개를 만들어온 학생을 만났다. 한 사인회에서는 주저앉아 펑펑 우는 독자도 있었고, 태어나 처음으로 책 한 권을 끝까지 읽었다며 수줍게 사인을 받는 독자도 있었다.
“‘고맙다’, ‘잘 읽겠다’는 말에 힘을 얻어요. 저뿐만 아니라 모든 작가가 그런 반응에 기운을 내서 쓰고 있을 거예요. 저는 많은 독자가 제 이야기를 읽어주는 경험을 해봤잖아요. 공동체가 선택해준 소설을 쓴 만큼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써야겠다는 책임감이 생겼어요. 비판적인 리뷰도 좋아해요. 대중작가인데 독자들의 의견을 보지 않는다면 오만한 것 아닐까요.”
하반기에는 비우는 시간을 가질 계획이다. 신작 구상도 잠시 멈춘다. 그는 “몸과 마음을 다시 채워야 쓸 힘이 생긴다”고 말했다. 다음 이야기를 위해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이다. 비워낸 자리에는 다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채워질 것이다.

이근하 기자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