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빛의 혁명이 최악의 순간을
최고의 순간으로 바꿨다
2025년 12월 3일, ‘12·3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꼭 1년이 되는 날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비상계엄 1년을 맞아 가장 먼저 한 것은 국민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일이었다. 이 대통령은 ‘빛의 혁명 1주년, 대통령 대국민 특별성명’을 발표하며 민주주의를 지켜낸 국민의 노고를 기렸고 외신 기자회견을 열어 ‘K-민주주의’의 회복 과정을 국제사회와 공유했다. 이 대통령은 “빛의 혁명으로 탄생한 국민주권정부는 우리 국민의 위대한 용기와 행동을 기리기 위해 12월 3일을 ‘국민주권의 날’로 지정할 것”이라며 진정한 국민주권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 담대하게 나아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날 특별성명에서 빛의 혁명이란 표현은 총 7차례 등장했다. 이 대통령은 “후손을 도울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야말로 국민주권정부가 해야 할 엄중한 시대적 책무”라며 헌정질서를 무너뜨린 행위에는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피력했다.
“노벨평화상 받아도 부족함 없는 대한국민”
당초 이 대통령은 ‘특별담화’를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2024년 12월 3일 특별담화 직후 계엄이 선포된 점을 고려해 표현을 ‘특별성명’으로 변경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통령은 대국민 특별성명에서 1년 전 계엄에 맞섰던 시민들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국회로 향하는 장갑차를 맨몸으로 막아선 시민, 의회 봉쇄에 항의하며 국회의원들이 헌법상 의무를 이행할 수 있도록 국회 담장을 넘게 도운 시민, 한겨울 눈 속에서 은박담요 한 장에 의지하며 아스팔트를 지킨 시민, 집회 현장에 나오지 못해 미안하다며 선결제를 남긴 시민까지 장면 하나하나를 떠올렸다. 그러면서 “우리 국민은 더없이 정의로웠다. 폭력이 아니라 춤과 노래로 불법 친위 쿠데타가 촉발한 최악의 순간을 최고의 순간으로 바꿨다”며 “암흑시대로 돌아갈 뻔했던 대한민국에 다시 빛을 되찾아주셨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 불법 계엄을 물리치고 불의한 권력을 몰아낸 점은 세계 민주주의 역사에 길이 남을 일대 사건”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민주주의의 위기를 평화적인 방식으로 극복해낸 우리 대한국민들이야말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할 충분한 자격이 있다”며 대한민국이 노벨평화상을 받는다면 갈등과 분열로 흔들리는 모든 국가에 크나큰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12월 3일을 국민주권의 날로 기념하고 법정공휴일로 지정하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역사적 경험을 후대도 영원히 기억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12월 3일을 빛의 혁명이 시작된 날로, 국민주권이 진정으로 실현된 날로 정해 최소한 1년에 한 번은 생활 속에서 이날을 회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국회 입법 절차를 거쳐야 하고 논쟁이 벌어질 수 있지만 최종적인 결정은 국민 의사에 따라 내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은 취임 이후 외교무대에서 국제사회의 높은 관심과 기대를 체감해왔다고 했다. 빛의 혁명을 통해 드러난 한국 민주주의의 회복력이 세계 민주주의의 새로운 기준을 세우고 있다는 평가도 내놓았다. 그러나 빛의 혁명이 끝난 것은 아니라며 “다시는 쿠데타를 꿈꿀 수 없는 나라, 누구도 국민주권의 빛을 위협할 수 없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의로운 통합’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봉합 아닌 통합… 미래 중심 국정”
이 대통령은 정의로운 통합을 “봉합이 아닌 통합”이라고 규정했다. 국민이 동의할 수 있는 공통의 지향점을 마련하고 수용 가능한 범위에서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취지다. 이 과정이 길어지고 있다는 일부 우려에 대해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시는 이런 위험을 겪게 해서는 안된다”며 “감기처럼 사소한 질병을 1년씩 치료한다면 무능이겠지만 몸속 깊숙이 박힌 치명적인 암을 제거하는 일이라면 쉽게 끝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나라의 근본에 관한 문제는 철저하게 진상규명하고 이에 상응하는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반드시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성명 이후 진행된 질의응답에서는 물가안정 대책과 향후 국정 방향을 묻는 질문이 나왔다. 예정된 질문을 모두 소화한 뒤에도 이 대통령이 “더 하시라”고 즉석에서 말해 추가 질의가 이어졌다. 비상계엄 후유증으로 물가 불안이 지속된다는 지적에 대해 이 대통령은 “전체적으로는 고물가로 볼 수 없지만 상황이 급변하다 보니 체감물가는 높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 대통령은 “물가와 경제성장의 관계를 따져봐야 한다. 1분기에 -0.2%의 이른바 역성장을 겪었지만 물가는 올랐다”면서 “최종 예측 성장률이 1%라고 하니 후반기만 보더라도 급격한 회복세가 나타나고 있다. 환율과 주가 등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어 면밀히 상황을 주시하며 가능한 대책은 수립 중이고 일부는 집행 중”이라고 말했다.
이날은 취임 6개월 시점이기도 하다. 이 대통령은 “국민들이 인내해준 덕분에 지난 6개월 동안 예상 밖의 성과를 낼 수 있었다”며 “그동안은 회복에 중점을 뒀고 동시에 미래성장을 위한 준비도 병행해왔다. 앞으로는 미래 중심, 성장 중심으로 바뀌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세계가 대한민국 같은 나라에서 친위쿠데타가 가능한가 의문을 가졌다가 결국 ‘역시 대한민국’으로 바뀌었다”며 “이미 두 번 놀란 전 세계에 세 번째 놀라움을 보여줘야 한다. 위대한 대한민국, 위대한 국민들과 함께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평화적이고 아름다운 K-민주주의”
이어진 기자회견 ‘새롭게 선 민주주의, 그 1년’은 외신 기자 80여 명을 상대로 진행됐다. 청와대 영빈관에서 외신만을 대상으로 한 회견은 이례적인 풍경으로 한국 민주주의가 어떤 과정을 거쳐 정상화됐는지 국제사회에 직접 설명하려는 의지가 읽힌다.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K-민주주의의 차별점을 중심으로 설명을 이어갔다.
먼저 이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12·3 비상계엄 선포 장면을 시청하고 국회로 달려왔던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이 대통령은 “국회로 달려오면서 ‘광주 계엄군들이 전남도청으로 쳐들어온다. 광주시민 여러분 전남도청으로 모여주십시오’라고 방송했던 한 여성의 목소리가 가장 먼저 생각났다”면서 “똑같은 심정으로 방송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국회가 형식적 권한을 행사했습니다만 실질적 힘은 국민 속에서 나왔다”며 진정한 국민주권정부의 의미를 되새겼다.
외신의 관심은 이 대통령이 명명한 K-민주주의에 쏠렸다. 이 대통령은 “집단지성에 의해 평화적이고 아름답게 직접 행동하는 점,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점이 특징”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실의 권력을 민중이 무혈 평화 행동으로 끌어내린 사례가 10년도 안된 시기에 두 번이나 벌어졌다. 대한민국의 힘은 민주주의에서 왔다. 주권의식이 충만한 국민들이 비효율적이고 비민주적인 시스템을 용납하지 않는 점이 국가·경제·사회·문화 발전에 큰 힘이 됐다고 본다”고 부연했다.
“핵잠 확보 가장 큰 성과, 중·일 갈등 중재 역할”
외교 현안 관련 질의응답도 오갔다. 이 대통령은 올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두 차례 정상회담을 가진 것과 관련해 “핵추진잠수함을 확보하게 됐다는 점이 가장 큰 성과”라고 꼽았고 “전략적 유연성과 자율성 측면에서 우리에게 매우 유용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한국의 핵잠 건조가 핵확산금지조약(NPT)체제를 약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는 “기폭장치나 핵폭탄이 내장된 게 아니다.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문제는 핵확산 금지와 직접적 관계가 없다”고 일축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 과정에서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관련 합작 사업을 제안한 내용도 공개했다. 이 대통령은 “우리가 농축 우라늄을 러시아에서 30% 정도 수입한다고 했더니 트럼프 대통령이 ‘자체 생산하면 많이 남겠다. 동업하자’고 했고 5대 5로 동업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주변국 관계 설정에 대한 견해도 내놨다. 최근 불거진 중·일 간 갈등과 관련해 이 대통령은 “한쪽 편을 든다면 갈등이 더 격화될 것이다.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고 가능한 영역에서는 갈등을 최소화하며 중재·조정 역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또한 11월 1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을 언급하며 “올해 안에 방중하면 좋겠다고 했더니 ‘가능하면 그렇게 해보자’고 답했다”고 전했다. 다만 “그렇게 하기에는 어려운 것 같고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일 협력에 대해서도 지속 의지를 보였다. 이 대통령은 “계속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를 만나 이번에는 제가 일본에 방문할 차례이고 총리의 고향에도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한일관계가 미래 지향적으로 잘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이 대통령은 이날 저녁 국회 앞에서 열린 ‘12·3 내란외환 청산과 종식, 사회대개혁 시민대행진’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경호 등의 이유로 최종 불참을 결정했다. 이 대통령은 특별성명 발표 자리에서 “그날 밤 끔찍한 기억이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스스로를 다잡기 위해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조용히 참석해보려고 한다. 경호 문제 때문에 안된다고 말려서 몰래 갈 생각”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근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