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덕유산 향적봉
덕유산 향적봉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산이다. 설악산이 산꾼들을 시험하는 ‘콧대 높은 도도한 산’이라면, 덕유산 향적봉은 노인과 어린이도 품어 안는 ‘어머니 품’ 같은 산이다.
전북 무주군과 장수군, 경남 거창군의 경계에 솟았고 최고봉 향적봉(1614m)은 온전히 무주에 속해 있어 ‘무주 덕유산’ 이미지가 강하다. 한라산(1947m), 지리산(1915m), 설악산(1708m)에 이어 국내에서 네 번째로 높은 산이지만 정상 가까이까지 곤돌라를 타고 오를 수 있으니 누구에게나 허락된 명산, 높으면서도 낮은 산이다.
덕유산을 두고 ‘어머니 품’을 떠올리는 건 산세와 역사 덕분이다. 덕유산은 부드러운 산세를 가진 육산으로 손꼽힌다. 등산 마니아들은 바위산을 골산(骨山), 살이 오른 듯 흙이 많은 산을 육산(肉山)이라 부른다. 덕유산은 둥글둥글한 능선이 길게 숨을 고르듯 이어진다. 그 능선이 빚어내는 장면이 ‘산그리메’다. 순우리말로 겹겹이 겹친 산들이 하나의 검은 선으로 펼쳐진 풍경을 뜻한다. 높은 산 정상에 오르면 겹겹이 쌓인 첩첩산중이 검은 실루엣으로 펼쳐진다. 향적봉과 중봉에서 본 산그리메는 압권이다. 특히 향적봉에서 1㎞ 떨어진 중봉에 서면 멀리 지리산 능선이 미인의 눈썹처럼 가늘게 누워있다. 그 한 줄 선에 산줄기의 시간이 응축돼 있다.
향적봉에서 산그리메를 한 번이라도 본 이들은 종종 그 순간을 소환해 ‘덕유’를 ‘치유의 마법 같은 주문’으로 쓰기도 한다. 시야는 한없이 깊어지고 생각은 바람처럼 가벼워지던 순간, 겹겹의 산이 소란하던 마음을 가라앉히던 순간의 기억이 두 글자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자연이 선물한 경이로운 장면은 힘든 일상 속에서 마음을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기도 한다.

1520m 높이를 단 20분 만에
덕유산의 가장 큰 미덕은 접근성이다. 무주덕유산리조트에서 관광 곤돌라를 타면 단 20분 만에 해발 1520m의 설천봉에 닿는다. 여기서 정상인 향적봉까지는 600m 남짓. 완만한 계단을 따라 걸어서 20분이면 충분하다. 몇 시간을 헐떡이며 올라야 할 높이를, 운동화 차림으로 올라 눈앞에 펼쳐지는 가야산, 지리산의 파노라마를 음미할 수 있다. 그야말로 ‘황제 산행’이라고 할 수 있다.
덕유산(德裕山)이라는 이름에도 사연이 숨어 있다. 임진왜란 당시 수많은 사람이 전쟁을 피해 덕유산에 몸을 숨겼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왜군이 이곳을 지나갈 때마다 안개가 자욱히 끼어 사람들을 감싼 덕분에 그냥 지나쳤다고 한다. 산이 덕을 베풀어 목숨을 구했다고 여긴 이들이 ‘덕이 많은 산’이라 하여 ‘덕 덕(德)’ 자에 ‘넉넉할 유(裕)’ 자를 붙여 덕유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3~4월은 건조한 시기다. 국립공원을 비롯한 대부분의 산이 ‘산불방지 입산금지’ 적용으로 산행이 제한된다. 덕유산도 예외는 아니다. 다만 곤돌라를 타고 설천봉에 오른 뒤 향적봉을 오르는 코스와 향적봉에서 백련사를 거쳐 구천동으로 내려오는 코스는 개방된다. 3~4월에도 향적봉은 얼마든지 오를 수 있다. 특히 3월은 겨울의 끝자락에 걸린 상고대와 봄의 전령사가 교차하는 신비로운 시기다. 잔설과 앙상한 숲이 뒤섞인 산은 계절을 건너가는 순간을 꾸밈없이 보여준다.
계곡 따라 치유의 길을 걷다
향적봉에서 내려서면 향적봉대피소가 있고, 여기서 구천동으로 하산하거나 중봉으로 갈 수 있다.
1㎞ 거리에 중봉이 있지만 5월부터 산행이 가능하다. 중봉 경치를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덕유평전’이라 부르는 드넓은 철쭉 초원이 펼쳐져서다. 향적봉이 압도적인 높이로 단순명료한 산그리메의 미학을 보여준다면, 중봉은 꽃과 초원, 산그리메가 섞인 다채로운 풍경이다. 중봉에서 종주하면 무룡산과 삿갓재대피소를 지나 남덕유산에 닿는다. 산불방지 입산금지 기간에는 덕유산을 온전히 종주할 수는 없지만 향적봉의 풍경만으로도 충분히 오를 가치가 있다.
곤돌라를 타고 올랐다가 걸어서 하산하는 방법도 있다. 백련사까지 급경사 계단이 이어지는 까다로운 구간이지만 고비를 넘기면 천년고찰 백련사의 정취가 피로를 씻어준다. 백련사에서 덕유산탐방지원센터까지 이어지는 6㎞의 구천동 계곡 길은 ‘치유의 길’이다. 경사가 완만해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다. 계곡의 물소리를 벗 삼아 걷다 보면 일상의 번뇌가 씻겨 내려간다. 봄철 입산 통제로 다른 능선길이 닫혀 있는 지금, 이 구간은 덕유산이 허락한 유일하고도 아름다운 퇴로다.
신준범 월간<산> 기자

알고 가면 좋은 정보
추천 코스 무주덕유산리조트(곤돌라)~설천봉~향적봉~백련사~구천동계곡~주차장(10㎞, 4~5시간 소요)
관광 코스 곤돌라 왕복 이용. 설천봉~향적봉 구간 산책(왕복 40분: 순수 걷는 시간)
준비물 3월에도 눈과 얼음이 있어 아이젠을 준비해야 한다. 향적봉은 강풍이 잦은 곳이므로 보온옷과 귀마개, 장갑, 바람막이 재킷 등을 준비해야 한다.
향적봉대피소 정상에서 150m 거리에 대피소가 있다. 물과 부탄가스, 초코바, 컵라면 등을 판매하며 예약 시 숙박 가능하다. 다만 매트리스와 침낭을 준비해야 하며 취사장에서 버너 사용이 가능하다. 곤돌라를 타고 올라 대피소에서
1박 후 아침에 일출을 보고 곤돌라를 타고 하산하는 방법도 있다.
곤돌라 운행 시간(오전 9시~오후 4시, 하행 막차 오후 4시), 스키장 폐장 시 주말 30분
추가 운행하기도 한다. 폐장 시기는 그해 적설량 등에 따라 정해진다. 이용요금은 편도 2만 원, 왕복 2만 5000원. 왕복권은 당일 사용만 가능. 향적봉대피소 1박 시 편도권을 구입해야 한다. 설천봉까지 20분. 최대 8명 탑승 가능하며 5~1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주말 사전 예약 필수이며, 기상 악화 시 운행 중단될 수 있다.
덕유산국립공원 산불방지 입산금지 기간 3월 4일~4월 30일. 설천봉~향적봉~백련사~구천동 구간은 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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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