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줄무늬가 선명한 초록색 거친 수건. ‘이태리타월’이라는 이름 때문에 유럽에서 건너온 물건이라 오해하기 쉽지만 이는 1967년 부산의 한 섬유공장에서 탄생한 100% 한국형 발명품이다. 당시 한일직물을 운영하던 기업가가 이탈리아에서 비스코스 레이온 원사를 들여와 새로운 수건을 만들려 했다. 하지만 막상 짜놓고 보니 질감이 너무 거칠어 피부가 따가울 정도였다. 실패작으로 버려질 뻔한 이 원단은 ‘이걸로 몸의 때를 밀면 어떨까’라는 역발상을 통해 한국 목욕 문화의 패러다임을 바꾼 혁명적 도구로 거듭났다. 실수로 태어난 이 투박한 수건은 반세기 만에 한국인의 정서를 상징하는 ‘K-아이템’이 돼 이제 전 세계인의 욕실을 점령하고 있다.
“처음엔 고문 같지만 끝나면 아기 피부가 됩니다.” 요즘 외국인들은 한국의 세신(洗身)을 ‘돌고래 피부를 만들어주는 마법 같은 서비스’라고 부른다. 미국 토크쇼의 전설로 불리는 코넌 오브라이언이 LA 한인타운 찜질방에서 때 미는 모습을 촬영한 유튜브 영상은 누적 조회수 2300만 회를 넘었다. 세신사의 이태리타월 아래서 국수처럼 밀려 나오는 자신의 때를 보며 그는 경악과 환희로 몸서리치며 외친다. “내 영혼까지 벗겨지는 기분이지만, 나는 새로 태어났다(I feel like a newborn baby)!” 그가 묘사한 ‘돌고래 피부(Dolphin Skin)’라는 표현은 이제 서구권에서 한국식 세신의 효과를 상징하는 고유명사가 됐다.
사실 몸에서 각질을 긁어내 청결을 유지하는 행위는 인류의 보편적인 역사였다. 고대 그리스인은 운동 후 올리브오일을 몸에 바르고 모래를 뒤집어쓴 채 훈련한 뒤 ‘스트리절(Strigil)’이라 불리는 낫 모양의 금속 긁개로 땀과 먼지를 긁어냈다. BC 4세기의 조각상 ‘아포쿠시오메노스’는 제목 자체가 그리스어로 ‘때 벗기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에서도 목욕은 영웅이 긴 여행이나 전투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받는 최고의 환대이자 정화의 의식으로 묘사된다. 고대인에게 몸을 닦는 것은 단순히 청결을 넘어 영혼을 보살피는 신성한 행위였다.
‘피부 학대’에서 ‘마법의 박리’로
동양의 문호 소동파도 1000년 전 송나라에서 때를 밀었다. 그는 시에서 하루 종일 팔을 휘두르는 세신사의 노고를 치하하면서도 너무 아픈 나머지 “살살, 좀 살살(輕手, 輕手)!”이라며 엄살 섞인 애원을 남겼다. “이 거사는 본래 때가 없다”며 너스레를 떨던 그의 모습은 1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목욕탕 풍경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은 오래전부터 피부를 물리적으로 문질러 닦으며 신체적 해방감을 맛보았다.
하지만 서구문학 속 목욕은 비누의 보급과 함께 점차 개인적이고 정적인 사유의 공간으로 변해갔다. 제임스 조이스의 현대문학 걸작 ‘율리시스’에서 주인공 레오폴드 블룸은 공중목욕탕 욕조 속에 잠긴 자신의 창백한 몸을 바라보며 ‘흐릿하고 창백한 꽃’ 같다는 감각적 사색에 잠긴다. 서구인에게 목욕이 물속에 몸을 ‘담그는’ 수동적 위안의 시간으로 흘러갔다면, 한국의 세신은 몸을 불려 이태리타월로 박박 밀어내는 역동적이고 능동적인 ‘재생’의 과정으로 진화했다.
과거 외신들은 이 역동적인 문화를 오해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일부 외신은 ‘피부 학대인가, 청결인가’를 제목으로 뽑으며 때밀이를 위험한 관습으로 치부했다. 세신사가 손님의 몸을 거칠게 뒤집는 모습에선 ‘인간 존엄성을 무시하는 행위’를 읽기도 했다. 10년 전 한국 찜질방을 체험한 뉴욕타임스 기자는 주말 특집판에서 “죄수들처럼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바닥에 누워 코를 고는 모습은 한국식 과로 사회의 상징”이라고 적었다. 낯선 타인 앞에서 알몸을 드러내고 몸을 맡기는 문화적 생소함이 부정적이고 냉소적인 보도로 이어진 셈이다.
지금은 정반대다. 서울의 한 5성급 호텔은 국내 고객을 겨냥해 세신 서비스가 포함된 패키지 상품을 내놨는데 놀랍게도 고객 84%가 외국인이었다. 부산의 한 대형 목욕탕도 올해 전체 입장객의 절반이 외국인이었으며 프라이빗한 1인 세신 숍은 외국인 관광객의 예약으로 빈자리가 없다. 미국 아마존에서 판매 중인 한국 때밀이 수건엔 리뷰만 3만 개 넘게 달렸고 그들은 이를 ‘마법의 박리(Magic Peel)’, ‘각질 제거의 신세계’라며 찬양한다.
이태리타월이 ‘매력 국가’ 상징으로
이러한 반전은 한국이 ‘매력 국가’가 됐기에 가능했다. 한국이 단순히 때를 잘 밀어서가 아니라 국가브랜드 가치가 급상승하며 한국인의 일상 자체가 전 세계인의 동경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튀르키예의 전통 목욕 ‘하맘’이나 중국의 ‘추오자오’도 깊은 역사를 자랑하지만 세계 대중은 유독 한국의 세신에 열광한다. 방탄소년단(BTS)이 찜질방에서 ‘양머리’를 하고 식혜를 마시는 모습에 반하고,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주인공들이 전투 후 초록색 수건으로 때를 박박 미는 장면에 매료된 것이다.
‘한국인처럼 해야 나도 멋있어질 것 같아.’ 이제 K-세신은 미개한 피부 학대가 아니라 ‘과학적인 피부 관리’이자 ‘힙한 뷰티 리추얼’로 정의된다. 틱톡과 인스타그램에는 이태리타월을 사용해 얻은 매끄러운 피부를 인증하는 영상이 넘쳐난다. 투박한 초록색 수건 한 장에 담긴 문화의 힘이 이토록 무섭다. 고대 그리스의 금속 긁개가 미학적 조각상을 남겼다면, 현대 한국의 이태리타월은 전 세계인의 피부 위에 ‘K-글로(glow)’라는 새로운 매력을 새기고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히 지나쳤던 때밀이 수건이 이제는 대한민국이라는 매력 국가를 광내는 가장 빛나는 상징이 됐다.
어수웅
조선일보에서 문학, 영화, books 등 문화부 기자를 오래했다. 지은 책으로 ‘탐독’ ‘파워 클래식’ 등이 있다. 주말뉴스부장, 문화부장, 여론독자부장을 거쳐 현재 논설위원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