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은 잼잼테라퓨틱스 대표
다섯 살 성아(가명)는 놀이터에 가도 벤치에 앉아 노는 친구들만 바라본다. 물건을 쥐는 동작이 어려워 놀이기구에 매달리거나 붙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친구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이 성아에게는 닿을 수 없는 이상이다. 뭔가를 쥐는 힘만 있어도, 손목을 조금만 더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어도 아이들의 삶은 많이 달라진다. 이를 위해 발달장애 아이를 둔 부모들은 병원과 재활치료센터를 오가며 아이의 작은 움직임 하나에 희망을 건다.
하지만 이들을 가로막는 허들은 적지 않다. 큰 병원들의 재활치료는 주 1회, 연 52회로 횟수 제한이 있다. 사설 센터는 1회(40분) 치료비가 7만~8만 원에 달한다. 의료진과 재활치료사 수도 부족해 재활치료를 예약하려면 긴 대기를 거쳐야 한다. 잘 알려진 곳은 대기 기간만
1년 이상이다. 특정 의사는 만나는 데만 3년을 기다려야 한다. 하루가 다르게 뇌가 발달하는 아이들의 특성상 재활 역시 빠를수록 좋다는 점을 고려하면 안타까운 일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게임회사 출신의 엄마가 나섰다. 김정은 잼잼테라퓨틱스 대표다. 김 대표 역시 쌍둥이 중 한 아이가 뇌병변질환을 앓고 있다. 재활을 위해 경기 수원에서 서울 병원까지 왕복 5시간 거리를 매주 다섯 번씩 오갔다. 남은 아이를 혼자 둘 수 없어 두 아이를 데리고 다녔으니 체력과 시간을 모두 쏟아 부은 과정이었다.
결국 김 대표는 재활 솔루션을 직접 개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가 ‘잼잼400’이다. 잼잼400은 인공지능(AI) 동작 인식 기술을 활용한 게임형 재활 애플리케이션이다. 색칠공부, 요리놀이, 양치하기 등 아이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다양한 게임으로 소근육 발달에 도움이 되는 16가지 손동작을 유도한다.
사용자는 엄지손가락을 구부리거나 손목을 드는 등 재활을 돕는 여러 동작을 반복하며 게임에 참여한다. 주먹을 쥐었다 펴는 ‘잼잼’ 동작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를 위한 양치놀이는 손을 쥘 때마다 화면 속 칫솔이 움직여 이에 낀 지저분한 것들을 닦아낸다. 아이들마다 손 사용 정도가 달라 난이도와 프로그램은 잼잼재활센터 소속 재활치료사들이 설정해준다.


재활치료사, 게임사 동료와 손잡고 개발
김 대표는 “아이 재활을 도와주던 치료사, 개발자 동료와 ‘사이드 프로젝트(본업과 병행하는 일)’로 아이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지원금과 컨설팅을 받을 수 있는 창업진흥원의 예비창업자패키지에 선정되면서 2023년에 창업해 본격적으로 이 일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창업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주변에서는 안정된 직장을 두고 왜 굳이 어려운 길을 택하느냐는 걱정이 이어졌다. 개발 과정 역시 만만치 않았다. 아이들이 겪는 어려움이 제각각인 만큼 게임을 개개인의 특성에 맞춰 설계하는 작업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게임을 이용하는 부모들에게 귀찮을 정도로 전화를 걸어 피드백을 요청했다. 현장의 반응과 개선점을 최대한 많이 모아 게임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노력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잼잼400은 아이들이 지루해하며 피하던 재활치료를 게임 방식으로 풀어내 ‘하고 싶은 놀이’로 만들었다. 게임을 하면서 손 사용이 자연스럽게 늘어나자 이전에는 안 되던 동작이 하나씩 되기 시작했다. 손의 어느 부분을 움직여야 물건을 잡고 글씨를 쓸 수 있는지를 인지하는 수준도 함께 높아졌다. 부모들이 가장 만족해하는 부분이다. 집중력 향상 효과도 확인됐다.
언제 어디서든 즐겁게 할 수 있어
이 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잼잼테라퓨틱스는 2025년 여름부터 자폐아동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을 보급하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게임을 짧게 여러 번 반복하도록 설계하자 아이들이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늘었고 집중력도 함께 좋아졌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자폐아동 역시 뇌병변 아동과 마찬가지로 소근육과 대근육의 힘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며 “아이들은 실패를 통해 배우는데 발달이 느린 아이들일수록 시도 자체를 안 하기 때문에 발달이 더 늦어지는 악순환에 빠지기 쉽다”고 말했다.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아이들의 움직임을 계속 유도하는 환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잼잼400은 언제 어디에서나 무제한으로 쓸 수 있도록 개발됐다. 다만 아이들의 미디어 노출 적정 시간을 고려해 한 번 할 때 15분이 넘어가면 더 이상 게임을 통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도록 설계했다. 고가의 장비도 필요하지 않다. 스마트폰, 노트북은 물론 TV에 연결해 쓸 수도 있다. 이용료는 월 15만 원이다. 보통 사설 센터에서 하루 두 차례 치료를 진행하므로 하루 치료비와 비슷한 수준이다. 7일간 무료 사용 후 유료로 전환된다. 유료 전환 사용자 비율과 이들의 서비스 재구매율은 각각 45%, 94%다.
투자·지원 힘입어 쑥쑥 성장
잼잼400은 가능성과 가치를 인정받아 창업 이듬해인 2024년 6억 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잼잼400의 핵심기술 중 하나인 AI 동작을 세밀하게 인식, 프로그램의 효용성을 높여주는 기술도 한국콘텐츠진흥원의 R&D(연구개발) 지원금을 받아 개발했다. 2025년 7월부터는 아이들에게 인기가 높은 핑크퐁 캐릭터를 활용해 흥미를 높였다.
현재 서울아산병원과 국내 복지관, 특수학교 등에 프로그램을 보급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저소득 장애인을 위한 경기도 보조기기 지원사업에 신규 품목으로 추가돼 아이들뿐만 아니라 성인 재활도 돕고 있다.
김 대표는 인터뷰 말미에 성아가 잼잼400으로 손힘을 기른 후 혼자 힘으로 미끄럼틀을 탈 수 있게 됐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감격했다. 그는 “큰 보상이 돌아오는 일은 아니다. 팀원들도 조금씩 자기 것을 희생하며 일하고 있다”면서 “그저 한 명이라도 더 우리 솔루션을 통해 희망을 볼 수 있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나와 우리 직원들은 아이들의 작은 변화에 기뻐하고 더 큰 희망을 불러오기 위해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유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