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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에너지원 도전, ‘인공태양’ 개발 30년… “핵융합은 인류가 꼭 가야 할 길”

K-문샷 추진단 양형렬 핵융합 총괄관리자(PD)가 대전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앞마당에 설치된 KSTAR 진공용기 일부 모형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사진 C영상미디어

K-문샷 추진단 양형렬 핵융합 총괄관리자(PD)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이 우리나라에 하나 더 있다. 대전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에서 운영 중인 KSTAR(케이스타·차세대 초전도 핵융합 연구장치)다. 높이·직경 약 10m 규모의 KSTAR는 태양이 에너지를 만드는 원리를 지구에서 구현하기 위해 만든 거대한 실험장치다. 이른바 ‘인공태양’이다.
2007년 완공된 KSTAR는 이듬해인 2008년 최초 플라스마 발생에 성공했다. 이후 성능을 꾸준히 높여 2024년에는 이온 온도 1억℃의 초고온 플라스마 상태를 48초간 유지했다. 세계 최장 기록 경신이었다.
KSTAR를 이해하려면 핵융합의 원리를 알아야 한다. 핵융합은 현재 원자력발전소가 전력을 생산하는 원리인 핵분열과 다른 개념이다. 핵분열이 우라늄처럼 무거운 원자핵을 쪼개 에너지를 얻는 방식이라면, 핵융합은 중수소와 삼중수소처럼 가벼운 원자핵을 결합해 에너지를 얻는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이온 온도 1억℃ 이상에서 발생하는 플라스마 상태다. 태양보다 훨씬 뜨거운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 데다, 전기를 띤 입자들이 뒤섞인 플라스마가 장치 벽에 닿지 않도록 강력한 자기장으로 가둬야 한다. 원리는 간단해 보여도 지구에서 구현하기는 극도로 어렵다.
핵융합 발전이 성공하면 무한 전력 생산이 가능해진다. 무엇보다 핵융합 발전은 수소를 연료로 활용해 친환경적일 뿐만 아니라 원료 대비 발생 에너지 효율이 석유, 석탄 등 화석연료에 비해 높아 ‘꿈의 에너지원’으로 불린다.
이 어려운 도전에 우리나라도 일찍이 뛰어들었다. KSTAR는 첫 가동에서 핵융합을 위한 첫 단계이자 원자핵과 전자가 분리된 상태를 의미하는 최초 플라스마를 달성했다. 세계적으로 전무한 기록이다. 2년 뒤엔 초전도 핵융합장치 가운데 세계 최초로 고성능 플라스마 운전 모드인 H-모드에 진입했다. H-모드 달성을 위해 20년간 노력했지만 실패한 국가가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놀라운 성과다.
KSTAR가 새로운 역사를 거듭 쓰는 배경에는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양형렬 박사의 활약이 있었다. 양 박사는 수십만 개의 부품이 들어가는 KSTAR 조립을 총괄했다. 1㎜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세밀한 작업이었다. 장치 구조상 한 번 실패하면 돌이키기 어려웠고, 선례가 없어 참고할 만한 자료도 없었다.
양 박사는 초대형 국제 프로젝트인 ITER(이터·국제핵융합실험로)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ITER 프로젝트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7개 회원국(EU 포함)이 참여해 핵융합 에너지가 미래의 실제 에너지원으로 활용될 수 있는지 검증하고 향후 핵융합발전소 건설에 필요한 핵심기술을 확보하는 연구사업이다.
프로젝트에서 양 박사는 핵심장치의 조립을 총괄했다. 9년 3개월간 임무를 마치고 귀국한 뒤에는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혁신핵융합로설계단장으로서 차세대 핵융합로 개발에 매진했다.
지난 5월부터는 국가 차원의 프로젝트인 K-문샷 추진단에 합류했다. K-문샷은 2035년까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미래 과학기술 12개 미션(우주, 반도체, 양자, 인간형 로봇, 핵융합 등)에 인공지능(AI)을 결합해 국가적 난제를 해결하는 프로젝트다. 양 박사는 핵융합 임무 총괄관리자(PD)로서 한국형 혁신 핵융합로(실증로) 건설에 필요한 핵심기술 개발 등의 과제를 지휘한다.
30년간 핵융합을 연구하고 국내외 주요 프로젝트의 현장을 지켜온 양 박사에게 물었다. 핵융합이 왜 미래 에너지원으로 떠오르는지, 실현 가능한 기술인지, 무엇보다 안전한지에 대해. 그는 모든 질문에 막힘없이 답을 이어 나갔다.

사진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핵융합을 오래 연구했지만 K-문샷 추진단 합류는 또 다른 도전이었을 것 같은데.
K-문샷 프로젝트가 국가 핵융합 기술 발전에 큰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침 공모에서 요구하는 조건들이 나와 잘 맞았다. 국가적 프로젝트라 부담이 크지만 내가 가진 능력과 경험을 동원해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나.
한국형 혁신 핵융합로 건설을 위한 개념 설계 및 기술 개발이다. 특히 AI를 기반으로 가상 핵융합로 플랫폼을 구축해 실제 설계에 필요한 기간을 50% 이상 단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여기에 성공하면 핵융합로 건설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 전력 생산 실증에 필요한 핵심 부품과 기술 개발 역시 이번 프로젝트의 중요한 과제다.

KSTAR 개발 경험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당시 어떤 역할을 맡았나.
KSTAR 건설 기간 동안 장치 조립을 담당했다. 조립 계획을 세우고 필요한 부품들이 들어오면 서로 맞춰 조립하고 시운전까지 책임졌다. 최초 플라스마 발생 이후에는 장치의 성능을 높이는 작업도 총괄했다. KSTAR에는 약 20만~30만 개의 부품이 들어간다. 그 부품을 하나의 장치로 완성하는 일이 내 역할이었다.

수십만 개의 부품을 맞춘다는 게 상상이 잘 안 된다. 가장 어려운 문제는 무엇이었나.
가장 힘들었던 점은 각기 다른 곳에서 제작해 오는 부품의 품질과 정밀도를 맞추는 일이었다. 기술적으로는 헬륨을 새지 않게 하는 일이 어려웠다. KSTAR가 초전도 성질을 유지하려면 극저온 환경이 필요하다. 영하 약 269℃의 온도에서 작동하는 초전도체를 활용하기 때문에 냉각에 필요한 헬륨을 잘 가둬야 한다. 아주 작은 빈틈만 있어도 헬륨이 새어 나갈 수 있어 용접을 세밀하게 하고 누설 여부를 꼼꼼하게 검사해야 했다. 장치가 양파처럼 여러 겹 쌓이는 구조라는 점도 난이도를 더했다. 한 겹을 조립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간 뒤 문제가 발견되면 다시 고치기가 어렵다는 점이 긴장도를 높였다.
KSTAR는 ITER와 같은 타입의 초전도 자석으로 지어진 세계 최초의 장치다. 선례가 없는 일을 하는 만큼 참고할 만한 사례도 없었다. 밀리미터(㎜) 단위의 정밀도를 기준으로 조립하고 검증하는 과정이 이후 세계적인 실험 성과를 내는 데 중요한 토대가 됐다고 생각한다. 매일 일찍 출근해 새벽 1~2시에 퇴근하면서 이뤄낸 성과다. 가족에게 소홀할 수밖에 없었는데 미안하다.

그렇게 공들여 만든 장치가 처음 플라스마를 발생시켰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
첫 가동에서 바로 성공했다. 정말 감격스러웠다. 최초 플라스마 상태를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KSTAR가 큰 문제없이 건설됐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토대를 잘 만들고 업그레이드하면 그다음에 성능을 제어하고 더 높은 목표를 달성하기 용이해진다. KSTAR의 성패가 달린 순간이라 눈물이 날 만큼 벅찼다. 이후 2년 만에 H-모드 플라스마 1초 달성에도 성공했다. 세계적으로 손꼽힐 만큼 빠른 수준이다.

ITER 프로젝트에서는 어떤 역할을 담당했나.
ITER는 KSTAR보다 훨씬 규모가 큰 국제 공동 프로젝트다. 프랑스 남부에 건설 중인 실험로로 여러 나라가 협력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토카막의 핵심 구조물인 진공용기 9개 가운데 4개를 제작해 공급했다. KSTAR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토카막 조립·건설에도 참여했다. 난 조립을 총괄했는데 수백, 수천 톤에 이르는 구조물을 1~2㎜ 이내 정밀도로 정렬하고 조정하는 세밀한 작업이었다.

전 세계가 핵융합에 투자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연료가 사실상 무한하며 친환경적이기 때문이다. 핵융합발전은 기술이 발전할수록 건설비·발전 단가가 낮아진다. 단가가 낮아지면 국민의 에너지 부담 비용도 자연히 줄어든다.
연료 또한 친환경적이면서 쉽게 구할 수 있다. 핵융합발전에 사용하는 중수소는 바닷물에서 얻을 수 있다. 삼중수소는 자연적으로는 거의 존재하지 않지만 이를 만드는 데 필요한 리튬이 육상에도 있고 바닷물에도 녹아 있다.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라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더 긍정적이다. 석탄·석유 등 화석연료는 지정학적 상황으로 수급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지 않나. 에너지 밀도 또한 높다. 핵융합 연료 1g 정도로 만들 수 있는 에너지는 8톤의 석탄 또는 4배럴의 석유에서 얻을 수 있는 양과 비슷하다.

핵을 이용한 기술인데 위험하진 않나.
핵융합로는 연료 공급이 끊기거나 조건이 무너지면 반응을 멈춘다. 영화 속 장면처럼 핵발전소가 통제 불능에 빠져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 이산화탄소도 배출하지 않는다. 안전하고 매연 배출이 없으니 인구밀집 지역에도 충분히 건설할 수 있다. 한마디로 모든 인류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원의 단점을 다 극복할 수 있으니 꿈의 에너지원이라고 할 수 있다.

발전소 소형화도 중요한 이슈다.
장치를 소형화하면 할수록 핵융합로 건설에 필요한 비용과 발전 단가가 낮아진다. 상업용 핵융합로 건설을 목표로 보면 소형화에 관심이 모일 수밖에 없다. 십수 년 전에는 생각지 못한 고온초전도체 기술이 많이 개발된 것도 발전로를 소형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고온초전도체는 초전도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온도에서 강한 자기장을 만들어낸다. 그만큼 설비 부담이 줄고 장치 위험성도 줄어들어 소형화가 가능해진다.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가.
우선 한국형 혁신 핵융합로의 개념 설계에 역점을 두려고 한다. 설계가 탄탄해야 뒤따라오는 공정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핵심기술 개발과 개발에 필요한 인프라 구축 측면에선 당장 내년부터 국내외 인력과 자원을 모아 사업을 적기에 시작하고 수행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게 시급한 과제다. 해야 할 일은 많지만 국가적 사업을 맡은 만큼 사명감을 갖고 임하겠다.

고유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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