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골목길 누비고 도로 청소하고 자율주행차가 도시 일상을 달린다

‘화성 AI 자율주행 리빙랩’에서 실증 중인 ‘교통소외지역 이동지원 차량’. 좁은 골목길 등 비정형 도로에서 주변 환경을 스스로 인식하며 주행하고 있다. 사진 C영상미디어

‘화성 AI 자율주행 리빙랩’에서 만난
자율주행의 오늘

마을버스 대신 자율주행차가 주민을 태우고, 교통약자 호출에 자율주행차가 달려간다. 자율주행 청소차가 도로에 물을 뿌리고, 순찰과 도로 상태를 살피는 일에 자율주행 기술이 활용된다. 차량은 도로와 신호 정보를 주고받고, 중앙제어센터에서는 도시 곳곳을 달리는 차량과 도로 상황을 한눈에 살핀다.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경기 화성시에서는 이미 이 같은 자율주행 기술과 서비스를 실제 도로에서 시험하고 있다.
올해 3월 ‘화성 AI 자율주행 허브’(이하 허브)가 문을 열면서 화성시 일대가 자율주행 서비스의 실증 무대가 됐다. 허브는 교통 흐름과 도로 상태, 신호 정보 등을 수집·관리해 자율주행차와 공유하는 지능형 교통체계 기반 관제센터다. 차량이 스스로 파악하기 어려운 도로 상황을 교통 인프라가 보완해 돌발 상황에 대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
국토교통부·산업통상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경찰청 등 4개 부처 공동 자율주행기술개발혁신사업단(이하 사업단)은 이 허브를 중심으로 화성시 남양읍·새솔동·송산면·마도면 일대 등 서부권 36.13㎢, 총 46.5㎞ 구간에서 자율주행 공공서비스를 시험하는 ‘AI 자율주행 리빙랩’(이하 리빙랩)을 운영하고 있다. 2021년부터 시작된 1조 1000억 원 규모의 범부처 연구개발(R&D) 사업을 통해 개발한 기술과 공공서비스를 실제 도시 공간에서 통합 검증하는 사업이다.
이곳에서 검증하는 기술은 정해진 조건에서 운전자 개입이 거의 필요 없는 ‘레벨4’ 자율주행을 넘어 도로 통신 인프라를 활용해 돌발 상황에도 대응하는 ‘레벨4 플러스’를 목표로 한다. 사업단은 2027년까지 이곳에서 실증을 이어가며 자율주행 기술과 서비스의 상용화 기반을 마련할 계획이다.
실증 대상은 ▲교통약자(장애인·노약자 등) 이동지원 ▲수요응답형 대중교통 ▲자율주행(Lv4/4+) 공유차 ▲도시환경 관리 ▲도로 긴급복구 및 통행지원 ▲긴급차량 통행지원 ▲노선형 자율주행버스 ▲교통사고 예방 순찰 등 8개 공공서비스다. 자율주행 기술을 단순히 ‘운전자 없이 달리는 자동차’에 그치지 않고 도시의 이동과 환경 관리, 안전을 담당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 실제 도로에서 확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율주행차는 실제 도로에서 어떻게 움직일까. 직접 자율주행 차량에 올라타 화성 일대 도로를 달려봤다.

‘도시환경 관리’ 서비스를 담당하는 자율주행 청소차량. 도로를 주행하며 바닥을 쓸고 물을 뿌려 청소하고 있다. 사진 C영상미디어

교통소외지역의 새로운 이동수단
기자가 탑승한 차량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개발한 ‘교통소외지역 이동지원 차량’이다. 이름 그대로 대중교통이 닿기 어려운 지역까지 찾아가 주민의 이동을 돕는다.
차량에 올라타자 운전석에 안전요원이 앉아 있었지만 핸들과 페달을 조작하진 않았다. 자율주행차의 움직임은 생각보다 조심스러웠다. 도로 앞 상황을 살피며 속도를 조절했고 좁은 길에서는 속도를 낮췄다. 마주 오는 차량을 만나자 주변 공간을 확인한 뒤 천천히 지나갔다. 현장 관계자는 필요할 경우 안전요원이 브레이크나 가속페달을 밟거나 핸들을 조작해 사람이 직접 운전하는 방식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차량이 달린 길은 널찍한 도로가 아니었다. 남양체육공원을 출발해 문호2통 마을회관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는 차선이 뚜렷하지 않은 도로와 폭이 일정하지 않은 좁은 길이 이어졌다. 굽고 울퉁불퉁한 농로도 있었고 마을 주변에서는 갑자기 보행자가 나타날 수도 있었다. 이처럼 도로 환경이 좋지 않은 곳에서도 차량이 어떻게 상황을 판단하고 움직이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이날 주행의 중요한 관찰 대상이었다.
현재 국내에서 실증되고 있는 자율주행 기술은 레벨4 수준까지 와 있다. 레벨4는 정해진 운행 조건과 구간에서 시스템이 차량의 운전 업무를 맡는 단계다. 다만 실제 도로에서 기술을 검증하는 과정에서는 안전요원이 탑승해 만일의 상황에 대비한다.
자율주행은 다양한 도로와 교통 상황에서 주행 데이터를 축적하고 이를 바탕으로 안전성과 주행 성능을 높여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좁은 농로부터 교행이 필요한 마을길까지 달리는 것도 그 과정의 하나다.
특히 버스나 택시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어려운 지역에서는 이동 자체가 일상의 장벽이 될 수 있다. 어르신이나 장애인 등 교통약자에게는 가까운 병원이나 시장에 가는 일도 쉽지 않다. 이용객이 많지 않은 농촌·외곽 지역에 대중교통을 충분히 배치하기도 어렵다.
자율주행차가 이런 지역까지 찾아갈 수 있다면 주민의 이동 선택지가 넓어질 수 있다. 정해진 노선을 오가는 대중교통이 닿기 어려운 곳까지 차량이 직접 이동해 주민을 태우고 목적지까지 데려다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자율주행차는 좁고 굽은 마을길을 약 30분간 달렸다. 다양한 도로 환경에서 주행 경험과 데이터를 쌓아가며 교통소외지역 주민의 일상적인 이동을 돕는 새로운 교통수단에 한 걸음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AI 자율주행 허브 체험관에서 자율주행 투어를 체험하고 있는 모습. 사진 C영상미디어

사람 대신 도로 누비는 ‘자율주행 청소차’
시승을 마치고 도로로 나서자 이번에는 조금 다른 자율주행차가 눈에 들어왔다. ‘도시환경 관리’ 서비스를 담당하는 자율주행 청소차량이었다. 차량은 도로를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바닥을 쓸고 물을 뿌리며 도로를 청소했다. ‘도로 위 로봇청소기’ 같았다. 정광복 사업단장은 “청소뿐 아니라 방역과 소독까지 자율주행으로 수행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자율주행 기술의 활용 범위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리빙랩에서는 순찰에도 자율주행 기술을 적용한다. 인구감소지역처럼 순찰 범위가 넓어진 곳에서는 자율주행 순찰차가 골목길과 일반도로를 돌며 현장을 살핀다. 사람이 직접 하던 순찰 업무를 보조해 한정된 인력으로 더 넓은 지역을 관리할 수 있다.
공유차 서비스도 준비하고 있다. 앱으로 차량을 호출하면 자율주행차가 이용자가 있는 곳까지 찾아가는 방식이다. 이용을 마치면 차량은 다음 호출 장소로 이동한다. 지정된 장소에서 빌리고 반납하는 기존 공유차와 달리 필요한 곳에서 차량을 호출해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정해진 노선을 운행하는 자율주행 버스도 추진하고 있다. 새솔동과 화성시청을 오가는 왕복 28㎞ 노선이다. 이용자 수요에 따라 움직이는 자율주행 셔틀도 실증에 나선다. 이용자가 애플리케이션(앱) 등을 통해 차량을 호출하면 수요에 맞춰 차량이 배차되고 경로와 정류장이 정해진다. 정해진 시간과 노선에 따라 운행하는 기존 버스와 달리 이용자가 필요한 시간과 장소에 맞춰 차량이 움직이는 수요응답형 대중교통(DRT) 방식이다.

화성 AI 자율주행 허브 관제센터. 교통 흐름과 도로 상태, 객체·신호 정보를 한눈에 확인하며 자율주행차의 주행을 지원한다. 사진 C영상미디어

차량과 도로의 ‘협력주행’
문제는 다양한 자율주행차가 실제 도로에서 동시에 움직일 때다. 차량 한 대가 주변 상황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러 차량의 움직임과 도로 상황을 종합적으로 살피고 필요한 정보를 차량에 전달하는 역할이 필요하다. 그 역할을 맡는 곳이 바로 ‘화성 AI 자율주행 허브’다.
상황실에 들어서자 커다란 관제 화면이 한눈에 들어왔다. 관제 상황판에는 실증 구역을 오가는 차량의 위치와 움직임, 도로 상황이 표시돼 있었다. 교통 흐름과 도로 상태, 객체 인식 정보, 신호 정보 등을 한곳에서 확인하며 자율주행차의 주행을 지원한다.
자율주행차가 주변을 더 넓게 인식하도록 돕는 ‘협력주행’ 기술도 적용된다. 자율주행차는 카메라와 각종 센서로 주변 상황을 인식하지만 건물이나 구조물에 가려진 공간까지 모두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때 도로에 설치된 인프라가 차량의 눈을 보완한다.
교차로 등에 설치된 센서가 다른 차량이나 주변 객체의 위치와 움직임을 파악해 자율주행차에 전달한다. 차량이 직접 보지 못하는 상황을 도로가 대신 알려주는 셈이다. 정광복 사업단장은 “차량이 앞차의 정보를 받을 수도 있고 인프라의 정보도 받을 수 있다”며 “서로 소통하면서 안전하게 운행하는 방향으로 개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상공간에서 자율주행 기술을 시험하는 ‘디지털트윈’도 활용한다. 실제 차량 흐름과 교통 상황을 가상공간에 재현한 뒤 특정 상황을 추가해 자율주행차의 반응을 살펴볼 수 있다. 평상시 상황뿐 아니라 일부러 난도를 높인 상황을 만들어 주행 성능을 평가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처럼 자율주행은 자동차 한 대의 기술을 넘어 차량과 도로, 관제센터가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 시스템으로 발전하고 있다. 화성 AI 자율주행 허브는 그 기술을 실제 도시에서 시험하는 현장이다. 다양한 자율주행의 쓰임새를 시험하며 자율주행이 일상이 되는 도시의 모습을 만들어가고 있다.
허브는 일반인이 자율주행 기술을 직접 보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홍보·체험관에서는 자율주행 기술 설명과 홍보 영상 관람을 비롯해 가상현실(VR), 자율주행 투어, 시뮬레이션 등을 체험할 수 있다. 자세한 정보는 화성 AI 자율주행 허브 누리집(openlivinglab.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자료 국토교통부

강정미 기자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