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매듭
세계적인 패션 아이템 되다

요즘 전 세계 패셔니스타들 사이에 값비싼 명품 팔찌보다 핫한 팔찌가 있다. 바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 진우가 차고 나온 것으로 우리나라 전통 매듭으로 만든 국화팔찌다. 누리소통망이나 유튜브에는 매듭 팔찌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는 영상이 넘쳐난다.
우리나라 전통 매듭은 쓰임새가 다양하다. 선물포장용 장식뿐만 아니라 팔찌, 목걸이, 귀걸이, 브로치 등도 만들 수 있다. 매듭은 한 가닥 또는 여러 가닥의 끈목을 꼬거나 짜서 다양한 모양을 만드는 수법이다. 끈목은 실을 합사(合絲:여러 가닥의 실을 합쳐서 드림)해 만든 끈이다. 끈목은 원래 나무껍질이나 초목의 넝쿨 혹은 짐승 가죽을 길게 찢거나 쪼갠 것을 말한다. 이 껍질(실)을 두 가닥, 세 가닥으로 꼬거나 엮으면 더 질기고 튼튼해진다. 기왕 엮음새를 예쁘게 만들면 실용적일 뿐만 아니라 보기에도 좋기 마련이다. 그렇게 해서 발전된 것이 매듭이다. 매듭에서 짜는 끈은 ‘다회(多繪)’라고 하고 끈 만드는 것을 ‘다회친다’라고 한다. 끈목을 짜는 매듭장은 ‘다회장’이라고 한다.
매듭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 매듭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라고 할 정도로 오래됐다. 인류가 정착생활을 하면서 실과 끈을 만들 때부터 시작됐다. 신석기시대 후기에 사용된 승문토기에는 줄무늬를 감아 사용한 흔적이 발견된다. 청동기시대 실을 꼬는 데 사용된 가락바퀴(방추차)는 오늘날 끈을 짜기 위해 실을 꼬는 기구와 비슷하다. 불교문화가 화려하게 꽃피었던 고려시대에는 사찰을 중심으로 불교용품에 매듭 장식이 사용됐다. 그러나 매듭이 가장 활발하게 제작된 시기는 조선시대였다.
조선시대에는 매듭의 전성기라고 할 정도로 다양한 형태의 매듭이 만들어졌다. 매듭장도 합사장, 연사장, 홍염장, 청염장 등으로 구분해서 부를 정도로 생사, 합사, 연사, 염색의 공정을 세분해서 작업했다. 장신구의 사용으로 장식용 매듭이 제작됐고 각종 노리개와 복식의 끈목은 물론 국악기와 가마 및 실내장식용으로 활용됐다. 예단을 담은 보자기나 함도 매듭으로 장식했다. 특히 가마나 깃발에는 갖가지 실로 매듭짓게 꼬아 술을 달았는데 이것을 유소(流蘇)라고 한다. 매듭은 한복과도 잘 어울린다. 남자들은 흰색이나 연두색의 한복을 입고 파란색이나 붉은색의 매듭허리띠를 둘러서 포인트를 살렸다. 선비들의 필수품인 부채에도 키링처럼 매듭을 달았다. 여인들은 옷고름이나 허리춤에 매듭으로 엮은 노리개를 달았다. 신윤복의 작품 ‘미인도’에 보면 여인이 옷고름에 단 노리개를 만지작거리는 모습이 등장한다.
매듭이 한국과 세계를 잇다 인류는 동서양 공통으로 끈목을 사용해왔는데 한국 전통 매듭은 다른 나라와 구별되는 특징이 뚜렷하다. 3점 이상이 한 선 위에 교차하면서 모양이 만들어져야 하고 앞면과 뒷면이 같아야 한다. 대부분 거의 두 가닥으로 맺어지는데 구성이 좌우대칭이다. 전통매듭은 쉽게 맺어지고 쉽게 풀 수 있어야 하는데 일부러 풀 때까지는 안 풀어질 정도로 튼튼하다. 전통 매듭의 종류는 도래매듭, 생쪽매듭, 나비매듭, 국화매듭, 장구매듭, 병아리매듭 등 기본적인 것만 해도 30여 종에 이른다. 지역별로 특색이 다를 정도로 전국적으로 생활전반에 걸쳐서 사용했다.
그러나 전통 매듭은 일제강점기 때 문화말살정책과 근대산업화로 그 수요가 급감하면서 점점 우리 생활에서 사라졌다. 매듭 재료인 섬유가 습도와 온도에 취약하기 때문에 장기보존이 어려운 것도 결점에 속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시작됐고 한국 전통 매듭은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김희진의 ‘영원에서 영원으로’는 이런 노력 덕분에 탄생한 작품이다. 김희진은 국가무형문화재 매듭장 기능보유자였던 정연수의 제자다. 전통 매듭은 정연수의 제자들에 의해 발굴되고 보전됐으며 현대적으로 재해석됐다. 오랜 인내와 노력으로 이어온 K-매듭이 이제 우리나라와 전 세계 사람들을 잇고 있다.
조정육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