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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시리 전통마을
주소 경북 영덕군 영해면 호지마을1길 16-1
문의 (054)730-6533
경북 영덕군은 여행의 참맛을 아는 사람만 조용히 찾는 동해안 7번 국도에서도 보석 같은 여행지로 꼽힌다. 웅장할 정도로 드넓은 해안선과 소박한 항구, 어촌마을에서 눈을 돌리면 바다만큼이나 광활한 영해평야(연평들)와 그 사이에 옹기종기 자리 잡은 농촌마을, 그리고 옛이야기를 간직한 역사·문화 명소들이 곳곳에 보인다. 그중 영해면 ‘괴시리 전통마을(이하 괴시마을)’은 400여 년 이상 전통을 자랑하는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문화체육관광부의 ‘2023년 열린관광지 공모 사업’에 선정됐다. 괴시마을을 시작으로 새로운 시선으로 영덕과 만나는 ‘이색(李穡) 코스’를 따라갔다.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반촌마을
7번 국도를 빠져나와 영해평야를 곁에 두고 동쪽으로 달리다 보면 바다와 만나기 전 봉긋 솟은 ‘망일봉’ 아래 전통가옥들이 눈에 들어온다. 경북 북부 해안지방에서 단일 문중의 역사와 문화를 전승·유지해오고 있는 대표 반촌(班村) 괴시마을이다. 괴시마을은 2021년 경주 양동마을, 안동 하회마을, 영주 무섬마을, 성주 한개마을에 이어 경북에서는 다섯 번째, 전국에선 여덟 번째로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민속마을이다.
영양남씨(英陽南氏) 집성촌인 마을엔 ‘영양남씨 괴시 종택’을 포함해 조선후기 전통가옥의 특성을 살펴볼 수 있는 30여 채 전통가옥과 고택, 정자, 서당 등 다수의 문화유산이 남아 있다. 괴시마을은 포은(圃隱) 정몽주, 야은(冶隱) 길재와 함께 고려 삼은(三隱)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대학자 목은(牧隱) 이색(1328~1396)의 탄생지로도 의미가 깊다. 이색은 고려 말 성리학의 대가로 안향·이제현에 이어 조선 성리학의 뿌리를 세운 학자다. 정몽주, 길재, 권근 등 걸출한 인재를 길러낸 교육자이자 문장가이기도 했다. 수학능력시험 국어의 단골 작품으로 꼽히는 ‘백설이 자자진 골에’ 등 우국충정 시조의 지은이로 널리 알려져 있다.
마을은 영양남씨 괴시파 종택, 괴정, 목은이색기념관이 코스의 중심축을 이루고 영해 구계댁, 영해 주곡댁, 물소와서당 등 반촌의 소박미를 간직한 집들이 모여 있어 조용히 거닐며 한 바퀴 둘러보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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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 이색의 흔적 만나는 생가와 기념관
괴시마을은 영양남씨가 집성촌을 이루기 전에 이색 탄생 당시 외가였던 함창김씨(咸昌金氏)들이 터를 잡고 살던 곳이다. 덕분에 마을 곳곳엔 이색의 유년기를 비롯해 이색과 관련된 일화가 차고 넘친다. ‘괴시’라는 마을 이름부터 이색과 관련이 깊다. 원래 옛 마을의 북쪽 송천 주위에 늪이 많았고 성 방어를 위해 판 못인 호지(濠池)가 있어 호지촌(濠池村)이라 불렸다. 목은이 원나라에서 고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중국 구양박사방(歐陽博士坊)의 괴시마을을 들렀는데 마치 고향인 호지촌 풍경과 비슷해 돌아와 괴시(槐市)라고 고쳐 불렀다고 전한다. 그렇기에 이색의 생가와 목은이색기념관 일대는 괴시마을의 필수 코스이자 출발점으로 삼아볼 만하다. 생가에 닿기 전 이색의 동상과 시비부터 만난다. 이색의 ‘목은시고’에 나오는 작품을 적은 시비를 가만히 읽어 내려가다 보면 고려 대학자의 고매한 기품이 느껴진다. 목은이색기념관에선 이색의 영정을 비롯해 목은집 등 유물을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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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산 관어대 올라 고래불 조망
괴시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고 이어가볼 곳은 대진리 바닷가 해발 183m의 상대산 ‘관어대’다. 괴시마을에서 상대산 입구까지는 걸어서 20여 분, 차로 불과 2분 거리에 있다. 다만 관어대까지는 탐방로 등을 통해 50여 분 등산하듯 걸어 올라가야 한다. 오르는 수고 끝엔 비경이 기다린다. 관어대는 영덕 최고의 전망대다. 관어대에 서면 고래불 해안선은 물론이고 영해면 일대 풍경이 파노라마 전망으로 펼쳐진다. 방향에 따라 산, 바다, 들을 모두 눈에 담을 수 있다. 이색은 상대산을 두고 ‘관어대(觀魚臺)’라 부르며 글을 남겼다. “관어대는 영해부(寧海府, 지금의 영해면 일대)에 있다. 동해 석벽 밑에 임하여 노는 고기를 셀 만하므로 그렇게 이름한 것인데 부(府)는 나의 외가다.”
관어대는 이색의 ‘최애’ 전망 명소이자 고려 말부터 시인 묵객들의 교류 공간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팔작지붕의 관어대는 2015년 복원한 것이다. 문헌에 따르면 원래 정상에서 서쪽 방향의 절벽에 있었다고 전한다. 지금의 관어대는 영덕의 해맞이·해넘이 명소로 더 유명하다. 하산하는 길, 나무 사이로 ‘명사이십리’라 불리는 백사장과 눈이 시리도록 푸른 바다가 걸린다. 관어대에서 이색이 바다에서 노니는 고래를 보고 지었다고 전해지는 그 이름, ‘고래불’이다. 고래불의 ‘불’은 ‘벌(펄)’을 의미한다고 알려져 있다. 고래불은 영덕의 대명사로 통한다. 관어대까지 오르기가 부담스럽다면 상대산과 가까이 있는 대진항이나 대진해변으로 가볼 일이다. 차로 1분 거리의 대진해변은 덕천해변과 물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다. 해변까지는 평지여서 걷기 무난하다.
영덕의 블루로드 ‘목은 사색의 길’까지
동해안 해변을 따라 걷는 해파랑길 중 영덕 구간을 달리 부르는 ‘블루로드’에도 목은 이색의 이름이 숨어 있다. ‘목은 사색의 길’은 괴시마을과 블루로드 다리를 연결한 전체 9.5㎞ 코스로 바다와 산, 농촌 마을을 두루 거친다. 구간 내에 있는 축산항과 죽도산 전망대 등은 차로도 어렵지 않게 접근이 가능하기에 추운 겨울엔 주요 코스의 일부 구간만 걸어보는 것도 방법이다. 영덕의 소박한 어촌마을 풍경을 간직한 축산항은 싱싱한 대게를 맛볼 수 있을 뿐 아니라 하양·빨강 두 개의 등대가 푸른 바다와 어우러져 운치를 더한다. 오후부터 해 질 녘 풍경이 가슴에 남을 만큼 아름답다. 안타깝게도 지난봄 경북 화재 때 화마가 할퀴고 간 흔적이 일부 남아 있다. 해발 78m 정도에 자리한 죽도산 전망대 역시 해맞이 명소로 꼽히는 곳이니 일부러 찾아가볼 만하다. 대학자의 이름을 딴 코스마다 사색은 덤이다.
박근희 객원기자

가까이 있는 열린관광지 고래불해수욕장
상대산 관어대에서 내려다보이는 ‘고래불해수욕장’도 괴시마을과 함께 ‘2023년 열린관광지 공모 사업’에 선정됐다. 병곡면 고래불·영리·덕천·대진 등 여섯 개 해안 마을을 배경으로 해변 길이가 무려 8㎞에 이르는 긴 백사장 덕분에 ‘동해의 명사 20리’로 불린다. 긴 백사장과 얕은 수심의 바다, 울창한 송림을 앞뒤에 두고 카라반, 캠핑장 등을 갖춘 ‘고래불국민야영장’이 있어 여름 휴가철마다 전국 단위 야영객들이 찾는다. 연말연시를 앞둔 이맘땐 해돋이 여행객들이 조용히 찾아 차박 등을 즐기는 차박 명소로 유명하다. 해변과 주차장이 가깝고 탐방로가 잘 조성돼 있어 누구나 어렵지 않게 해돋이를 감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