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민생물가 안정을 위해 석유 가격에 상한을 두는 ‘석유 최고가격제’ 도입을 추진하는 등 최근 급등한 유가 대응에 나섰다. 중동 상황 불안으로 국제유가가 상승하면서 국내 물가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3월 11일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석유 최고가격제와 관련해 “2주 단위로 시장 상황을 봐가면서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철회 시점에 대해서는 “석유 가격이 전쟁이 나기 전 수준인 1800원대로 내려오는 등 안정화되면”이라는 단서를 붙였다.
석유 최고가격제는 1997년 유가 자유화 조치 이후 사실상 사문화된 제도다. 정부는 이재명 대통령의 도입 검토 지시에 따라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정책을 준비해왔다.
정부는 상황 대응력 강화를 위해 기존 경제관계장관회의를 비상경제장관회의로 전환해 매주 개최하고 관계기관 합동 비상대응반을 차관급으로 격상했다. 석유 최고가격제와 함께 유류세 인하, 화물차와 버스·택시 등에 대한 경유 유가연동보조금 인상 등도 추진할 계획이다.
구 부총리는 같은 날 정부서울청사에서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중동 상황 관련 경제 분야 합동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구 부총리는 “고유가에 따른 민생 안정에 전력을 다하겠다”며 “필요할 경우 추경(추가경정예산)을 포함, 모든 정책수단을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IEA(국제에너지기구) 기준 208일분의 비축유를 보유하고 있어 위기대응 능력을 갖추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서는 정부를 믿고 일상적인 경제활동을 차분히 지속해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정부는 위기 상황을 틈 탄 사익편취 행위에도 강력 대응하기로 했다. 석유 제품 매점매석 행위 금지 고시를 제정해 정유사와 주유소의 사재기나 판매기피 행위를 막고 시장교란 행위에 대해서는 무관용 원칙으로 엄단한다는 방침이다. 기존에 마련한 100조 원 이상의 시장안정 프로그램을 필요 시 확대하고 한국은행과 공조해 추가 시장안정 조치도 적기에 실시할 계획이다. 소상공인 경영안정바우처와 긴급경영안정자금 등을 지원하고 추가 지원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도 3월 9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국내 정유 기업 및 유관기관과 간담회를 열고 공정한 석유 가격 책정을 주문했다. 김 장관은 “국제유가 상승에 편승해 민생물가 안정에 역행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엄정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산업부는 이보다 앞선 3월 5일 자원안보 위기경보 ‘관심’ 단계를 발령했다. 이에 따라 ▲비상 상황 대비 대체 수입선 확보와 해외 생산분 도입 ▲단계별 비축유 세부 방출계획 수립 ▲유가 상승기에 편승한 담합, 가짜석유 판매, 정량 미달 등 불법행위 범부처 합동점검 및 특별기획점검 실시 등 총력을 기울여왔다.
국세청 역시 합동·특별점검에 참여해 위반 사항이 드러난 사업자에 대해 거래구조와 세금 신고 상황을 상시 모니터링하고 정유사 재고량 조사가 적기에 이뤄지도록 지원하고 있다.
유가연동보조금 연장, 긴급 물류바우처 신설
국토교통부는 교통·물류업계의 유류비 부담을 덜기 위해 2월에 끝난 경유 유가연동보조금을 4월까지 2개월간 연장하고 지급단가도 기존보다 높였다. 보조금은 경유 가격이 기준 금액인 리터당 1700원을 넘는 경우 초과분의 50%를 지원하는 제도이나 이번 경우에는 지급 비율을 70%로 상향해 지급하기로 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중동 상황 불안으로 수출에 차질을 겪는 중소기업 지원에 나섰다. 수출바우처를 활용해 국제운송비를 지원하고 긴급경영안정자금 및 보증공급 등 맞춤형 지원을 실시하고 있다. 특히 긴급 물류바우처를 신설, 물류비 지원 한도를 확대하고 패스트트랙 절차를 통해 지원에 속도를 낼 예정이다.
고환율로 원부자재 수입 비용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원부자재 수입 비중이 높은 기업 등을 대상으로 정책자금 대출의 특별만기연장도 추진한다. 구체적으로 대출 원금의 거치기간을 최대 1년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3월 중으로 시행할 계획이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 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3월 10일 기준 서울 지역의 평균 휘발유·경유 가격은 리터당 1946원·1967원이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전날인 2월 27일 가격과 비교해 각 11%, 18% 상승했다.
고유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