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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년에 걸쳐 사회 변화를 겪은 서구 사회와 달리 우리나라는 60여 년의 짧은 기간에 압축 성장하면서 사회 변화 역시 압축적으로 겪고 있다. 다양한 갈등이 동시에 표출되고 이를 복합적, 중첩적으로 겪고 있다. 과제는 이 갈등을 얼마나 슬기롭게 해결해 사회 발전의 동력으로 삼느냐다. 그런데 아직 우리 사회는 갈등이 해소되기보다는 증폭되고 확대되는 경향이 강하다.

▶ 방폐물 관련 사업부지 선정 등에 대한 주민 의견 수렴 및 합의로 건설된 국제 수준의 경북 경주시 양북면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모습.
국민 스스로도 사회 갈등 수준이 매우 위험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대통령 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위원장 한광옥)가 2014년 말 성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 사회의 갈등 수준을 묻는 질문에 65.7%가 '매우 심하다' 또는 '심한 편이다'라고 평가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5년 펴낸 '사회갈등지수 국제 비교 및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의 사회갈등지수는 1.043(2011년 기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 대상 24개국 가운데 다섯 번째로 높았다. 2010년 기준으로 2위였던 것에 비하면 조금은 나아진 수치지만 여전히 높다.
우리보다 높은 나라는 종교 분쟁을 겪는 터키(2.940)와 '국가부도' 사태를 겪은 그리스(1.712), 칠레(1.212), 이탈리아(1.119) 정도다. 2013년 삼성경제연구소는 사회적 갈등으로 발생하는 우리나라의 직간접적인 경제 손실이 연간 최대 246조 원에 이른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임기를 시작하며 대통령 소속으로 '국민대통합위원회'를 신설해 갈수록 심각해지는 국민 분열과 갈등을 해소하고 치유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그동안 축적된 모순과 대립 때문에 갈등이 쉽게 해소되기는 힘들다.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장은 "갈등 없는 사회는 없다. 적당한 갈등은 사회에 긴장과 결속력을 부여하는 촉매제가 된다. 하지만 우리가 처한 갈등은 사회의 건강성과 미래를 위협하는 심각한 수준"이라며 "우리 사회도 갈등을 다루는 문화와 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사회갈등지수 OECD 24개국 중 5위
갈등으로 생기는 직간접 경제 손실 연간 최대 246조 원사)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 서정철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사회적 갈등의 특성은 소모적이고 장기화하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갈등 해결 방식은 여전히 법원 판결과 입법(특별법 제정)을 통해 해소되는 경향이 강하다.
정부는 그동안 주요 해결책으로 물질적 보상과 이해관계의 정치적 해결에만 주력해왔다. 이는 새로운 갈등을 증폭시키고 지역사회 내 심각한 후유증만 남긴다. 그뿐 아니라 정부 공공정책에 대한 불신의 원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시위 파업, 공권력 사용, 다수결에 의한 투표 등 '힘'에 의존하는 방식과 법적 소송 등 권리에 의존하는 방식, 당사자 간 협상 등 실익의 만족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이 그것이다.
김동영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당사자 간 협상 등 실익의 만족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이 가장 현명한 방법임에도 대부분 갈등 상황에서 당사자는 자신이 가진 힘이나 권리에 초점을 맞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쟁취하고자 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권리와 힘의 충돌은 많은 비용을 야기하게 되고 실질적으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되는 위험을 가진다"고 충고했다.
김 교수는 "주민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자신의 권리와 국가의 책임을 강조하고, 공공기관도 법이나 규정을 들어 주민의 요구 사항을 거부한다. 이에 주민들은 제3세력과 연대해 시위나 소송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공공기관은 공권력을 사용해 저지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당사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지지 못하고 대안이 창출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아가 힘겨루기를 통해 아무도 원치 않는 방식으로 갈등이 확장되면서 문제 해결과는 더 거리가 멀어지는 과정으로 갈 위험성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이해관계자들의 소통과 협력 없이는 해결이 어렵다는 이야기다. 전문가들은 소통과 협력의 전제조건으로 "어떻게 신뢰를 회복하고 구축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또한 상대를 함께 문제를 해결해야 할 파트너로 인식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서정철 연구위원은 "합의의 실천성, 지속성, 책임성이 중요하다. 갈등 해결은 현안 해결로는 부족하다. 풀어가는 과정에서 상호 신뢰와 새로운 관계 형성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국민대통합위원회는 이념 갈등, 지역 갈등, 노사 갈등, 세대 갈등, 계층 갈등 등 각종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연구뿐 아니라, 2014년부터 공공기관과 민간 갈등 관리 전문가를 연계해주는 공공기관 갈등 관리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갈등 발생 시 중립적 제삼자로서 공공기관과 이해당사자가 갈등을 원만히 해결할 수 있도록 소통 역할을 해주고, 공공기관 직원들의 갈등 관리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것.
최근 국민대통합위원회와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에서 이런 민관 간의 갈등을 잘 해결한 사례를 분석한 〈소통과 갈등 관리〉를 펴냈다. 정부부처와 지역주민, 시민단체의 다양한 갈등을 대화와 협력으로 해결한 사례들은 공공부문에 종사하는 공무원과 공공기관은 물론 갈등을 겪는 국민에게 도움을 주는 학습서가 될 것이다. 책에 소개된 대표적 갈등 극복 사례를 다음 장에서 살펴보았다.
경북 울진군 신화리 원전마을 집단 이주 요구 갈등 해결 사례
마을 둘러싼 변전소와 송전탑, 주민들 걱정 해소와 삶의 질 제고에 동의
문제 발단
경북 울진군 신화1리는 네 곳의 변전소와 11기의 송전탑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1km 떨어진 곳에 원자력발전소 6기(한울원전단지)가 가동 중이고, 바로 그 옆에 4기(신한울원전단지)가 새로 건설 중이다.
1979년 한울원전단지 건설 당시 주민들은 지역이 크게 발전할 것이라는 정부 말을 믿었다. 그러나 발전 수준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오히려 마을을 가로지르는 2차선 도로가 생기면서 교통사고 위험과 소음에 시달려야 했다. 송전탑에서 나오는 소음으로 귀가 잘 안 들리거나 손발이 저려오는 증세가 발생했다고 믿었다. 일부 주민은 암 발병도 송전탑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정부에서 원전 인근 주민에게 제공하는 지원 혜택을 5km 떨어진 주민과 1km밖에 안 되는 가까운 곳에서 큰 위험을 감수하며 사는 자신들이 똑같이 받는 것에 대한 억울한 마음도 있었다.
주민들은 밀양지역 송전탑 갈등을 보며 목소리를 높여야 보상도 커진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 2013년 주민대책위를 만들어 행동에 나섰다. 주민대책위 요구 사항은 '집단 이주', '신화리 마을 우선 지원', '송전선로 정비사업 실시 계획 승인 취소', '정비사업 포기 또는 지중화', '원전 전용도로 개설' 등 다양했다. 그런데 핵심 쟁점인 집단 이주 지원은 현행법상 원자로 노심으로부터 560m 이내의 경우만 가능해 신화리는 해당되지 않았다.
산업통상자원부, 한국전력공사, 한국수력원자력, 울진군은 주민들과 함께 문제 해결을 위한 실무협의체(5자협의체)를 구성해 9개월 동안 10회에 걸쳐 회의를 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한국전력공사와 한국수력원자력은 국민대통합위원회에 지원을 요청했다. 주민들은 처음엔 국민대통합위원회를 불신했다. 정부기관도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양측 모두 반신반의하며 동의했다.
해결 과정
국민대통합위원회가 추천한 조정팀은 이해관계자들을 면담하면서 양측 간의 공통 인식과 차이점, 합의 형성을 위해 필요한 전제가 무엇인지를 파악했다. 또한 갈등조정회의의 목적과 범위, 권한, 주요 의제를 설정해 공유했다. 이렇게 시작한 신화리 갈등조정회의는 12차례 회의 끝에 합의를 이뤄냈다.

▶ 경북 울진군 신화리 갈등조정회의 모습.
자협의체가 벽에 부딪힌 주요 쟁점은 주민 피해 조사 방법이었다. 그런데 조정팀이 보기에 참여자들 모두 피해 조사를 통해 집단 이주 근거가 마련될 것이라는 믿음이 없었다. 주민조차도 자기들이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럼에도 회의는 주민들 요구인 집단 이주의 옳고 그름에만 맞춰졌다. 주민들은 자신의 요구를 중심으로 주장했고, 공공기관은 법제도 측면에서 불가함만 주장했다. 주민들이 왜 그런 주장을 하는지, 주민들의 실익과 관심사가 무엇인지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
조정팀은 갈등조정회의에서 주민들이 실질적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에 주목했다. 입장보다는 실익에 초점을 둔 것이다. 이주가 가장 좋지만 현실적인 대안이 아님을 인정하고 장기적으로 법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하면서 단기적으로 주민들의 안전, 생활기반 안정 및 주거 환경 개선을 위한 방법을 다각도로 찾도록 논의했다. 실마리가 풀리자 주민들은 물론 참여 기관들도 적극적으로 대안을 내놓았다.
이렇게 해서 양측은 합의안을 도출해냈다. 우선, 집단 이주가 가능하도록 산업통상자원부와 국민대통합위가 관련 법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주민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도 합의했다. 한전 등은 마을 관통 도로의 차량 속도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신한울원전 3, 4호기 건설 추진 시 우회도로를 우선적으로 건설하기로 약속했다.
주민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해서도 각 기관은 다양한 지원을 약속했다. 송전탑을 신설할 경우 주민과 충분히 협의하고, 송전탑 소음 저감대책을 찾기로 합의했다. 주민이 원하면 모두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이 밖에도 소득 증대 및 주거 환경 개선방안 등 주민들이 걱정하고 고통스러워했던 것들을 해소하기 위한 대안들을 내놓기로 했다.
글 · 최호열 (위클리 공감 기자) 2016. 0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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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