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뉴스
"이번 역은 신경주입니다."
열차 창 너머로 드넓은 들판에 볼록 솟은 고분이 눈에 들어왔다. 방내리 고분군 1호 돌방무덤이다. 문득 마주한 기둥엔 십이지신상이 위풍당당하게 그려졌다. 역을 나와 10분가량 차를 타고 도심에 이르니 거리마다 무열왕릉, 선덕왕릉, 문무대왕릉, 김유신묘 등의 표지판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괜히 신라의 수도, 경주가 아니었다.
경주를 방문하기 전날, 경주시 관계자에게 "지진 이후 경주의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그는 "경주를 상징하는 한옥마을"이라고 했다. 발걸음을 황남동 한옥마을로 옮겼다. 그의 말마따나 전통 한옥이 밀집한 황남동 한옥마을은 신라시대 천년 고도의 미관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9월 26일 방문한 경주는 불과 14일 전 역대 최대 규모의 지진이 발생한 곳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차분해 보였다.
태풍 불기 전 공공시설·사유시설 응급조치 완료
기술자·공무원 80명 복구 구슬땀 "그래도 믿을 건 정부뿐"
민가로 발을 들이고서야 지진의 후유증에 시달리는 경주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전통 한옥이 밀집된 황남동은 전체 3317채 중 한옥이 1658채다. 이 중 670여 채가 기와가 떨어져나가거나 벽에 금이 가는 손상을 입었다. 아직도 부서진 기왓장이 골목 곳곳에 떨어져 있었다. 세 채 중 한 채는 지붕 위에 파란 천막을 덮었고, 그중 몇 채는 외벽에 접근 금지를 알리는 폴리스라인을 쳤다. 지진이 남긴 상처였다.

▶지진으로 땅이 갈라진 내남면 주택.
추석 연휴가 끝난 9월 20일부터 지금까지 매일 황남동 한옥마을에서는 전국기와기능인협회 와공 및 기술자 50여 명, 공무원 30명이 복구작업에 매달리고 있다. 관계부처와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확보한 지붕 보수용 기와 7만7000장과 3억 원 상당의 지붕 보수용 장비인 ‘스카이’도 동원됐다.
마침 황남동경로당에선 기와가 놓일 바닥에 알매흙을 채우고 기와를 새로 까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경로당 옆에 주차된 트럭에는 기와 수십 장이 쌓여 있었다. 경주시 관계자는 "한옥마다 규격과 종류가 달라서 기와를 확보하는 데 시일이 걸리는 데다 기와장이까지 부족해 복구하는 데 1년 정도 걸릴 것으로 보인다"며 "시간이 오래 걸려도 완벽히 되살릴 것"이라고 말했다.

▶경북 경주시 황남동의 지진 피해를 본 한옥주택에서 기와 교체작업을 하고 있다. ⓒ뉴시스
경주에서 첫 번째 지진이 발생한 것은 9월 12일 오후 7시44분께. 규모 5.1 전진이었다. 48분뒤인 오후 8시32분엔 규모 5.8의 본진이 발생했다. 지진 발생 일주일 만인 9월 18일, 정부가 피해를 본 지역에 응급조치를 취했다. 무엇보다 태풍 ‘말라카스’가 불기 전에 조치를 마무리해야 했다. 이를 위해 지방자치단체 공무원과 군인, 경찰 등 인력 6447명이 동원됐다.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경주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피해를 본 문화재와 도로 등 공공시설 306곳이 전부 응급조치를 완료했다. 사유시설 5513곳 중 2956곳(53.6%)에도 응급조치가 이뤄졌다.
주민 안옥경 씨는 "황남동주민센터 공무원과 군인들의 도움 덕분에 기왓장이 떨어져나간 황남동경로당 지붕 위에 천막을 치고, 기와담장에 균열이 일어난 곳을 보수했다"며 "이제 마음 놓고 지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 지진의 진앙지는 경주시 남쪽에 있는 내남면이다. 이곳에서 시작된 지진은 인근 지역으로까지 퍼졌다. 황남동은 이곳에서 불과 7km 떨어졌다. 내남면 공무원들은 지진 발생 이후 2주가 지났지만 날마다 주민들의 집을 구석구석 살펴본다. 또 다른 지진 징후나 추가 붕괴된 곳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지진 피해 현장을 살펴보는 내남면사무소 직원들.
경주 시동에 거주하는 주민 유제태 씨는 "내남면사무소에 안전진단을 받고 싶다고 요청했더니 나흘 전 내남면 공무원과 지질 전문가가 나와 살펴본 후 ‘문제가 없다’고 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유 씨는 지진 때문에 받은 충격에서 벗어나 차츰 일상을 회복하고 있다. 유 씨는 "그래도 믿을 건 정부밖에 없다"며 "우리는 더 굳건하고 강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9월 22일 정부는 재난을 효과적으로 수습하기 위해 중앙안전관리위원회 심의를 거쳐 경주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이번 지진으로 피해를 본 주민에 대해서는 재난지원금이 지급된다. 금액은 주택 완전 파괴(전파)는 900만 원, 반파는 450만 원, 반파 이하 주요 구조물 파손은 100만 원이다. 주택 복구에 자금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연 1.5% 금리의 저리 대출을 해준다.
문화재청, 3D스캐너로 다보탑 안전점검
정부·지자체 각종 행사 경주서 개최하기로
재난이 터지면 항상 퍼지는 것이 유언비어다. 이번에도 경주에서 지진이 발생한 이후 ‘진짜 지진은 오지 않았다’며 근거 없는 소문이 퍼졌다. 정부는 피해지역의 주민은 물론 국민이 헛소문에 휩쓸리지 않도록 주의를 당부했다.
관광지도 회복의 기지개를 펴고 있다. 불국사를 찾은 이날,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관계자 2명이3D스캐너로 다보탑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었다. 스캐너에서 다보탑으로 레이저를 쏴 돌아오는 시간을 이전에 측정했던 데이터와 비교해 이번 지진으로 영향을 받았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세간에 알려진 바와 달리 문화재의 지진 피해는 크지 않다.

▶불국사 다보탑의 상태를 측정하는 3D스캐너.
불국사 대웅전 기와가 떨어지고, 다보탑 상층부 난간석 일부가 파손되는 등 20건의 피해 사례가 접수됐지만 경미한 수준이다. 불국사 측은 지진 발생 직후 "불국사 관람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방문 예약이 대부분이 취소됐다. 불국사를 찾은 당일, 2시간여 동안 머물렀지만 관광객을 거의 만나지 못했다.
불국사 종무소 정혜석 실장은 "문의전화 100통 중 90통은 관람이 가능하냐고 문의할 정도로 위험하다는 인식이 퍼져 관광객이 예전처럼 찾지 않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늘 그래왔던 것처럼 불국사는 관광객을 맞이할 준비가 돼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경주의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추진하는 각종 행사를 가급적 경주에서 개최하기로 했다.
한 숙박업소 관계자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상황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무엇보다 지자체의 협조로 경주가 명성을 되찾길 바란다"고 말했다. 경주에서 만난 자연은 생각보다 훨씬 웅장하고 풍요로웠다. 그중 상당수가 천 년이라는 세월이 만들어낸 흔적이었다. 도시가 그토록 긴 시간을 품었다는 건 힘이 있다는 얘기다. 경주의 지진 피해는 조만간 복구될 것이다. 상경길에 오르기 전 경주 시내를 돌아봤다. 때마침 늦더위가 물러가고 가을비가 촉촉하게 내려 운치가 더했다.
글· 김건희(위클리 공감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2016.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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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