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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유연성 ‘하르츠 개혁’ 글로벌 경제 위기 거뜬히 넘겼다.

 

노사정이 9월 15일 노동시장 개혁을 위한 대타협에 합의했다. 이번에 타결된 노동개혁은 청년고용 활성화를 강조하며 신규 채용 확대, 세대 간 상생고용 지원,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 청년창업 지원 강화에 공동으로 노력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의 노동개혁은 세계적인 노동개혁 흐름에 발맞춘 것이다. <위클리 공감>은 우리나라 노동개혁의 의미를 되짚어보고자 네덜란드 노동개혁에 이어 독일의 노동개혁을 살펴본다.

 

독일 지멘스 임베르크 디바이스 공장

▷독일 바이에른주 암베르크시에 있는 지멘스 암베르크 디바이스 공장. 독일은 선진적인 노동개혁으로 평가받는 하르츠 개혁을 통해 글로벌 경제위기 극복의 토대를 마련했다.

 

다임러그룹, 보쉬 등의 글로벌 기업이 있는 독일 기계산업의 메카 슈투트가르트. 주요 자동차 업체들의 신제품이 전시돼 있는 에히터딩겐 공항은 관광객들로 늘 북적인다. 올 1분기에도 독일의 가계 소비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2.5% 증가해 지난 4년 사이 가장 높았다. 유럽의 재정위기 속에서도 독일 경제만큼은 굳건한 비결은 뭘까.

독일 경제는 1990년대 중반부터 막대한 통일비용과 사회보장 지출로 말미암아 급격히 추락했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000년 3.2%에서 2002년 0%로 추락했고, 실업률(15~64세)은 같은 기간에 8.0%에서 8.6%로 상승했다. 특히 옛 동독 지역의 실업률은 20~25%에 달할 정도로 높아 노동시장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됐다. 여기에 실업수당 대상 선정과 지급, 실업자 재교육을 담당하는 연방고용청의 부정부패 스캔들이 터졌다.

결국 2002년 2월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는 노동개혁을 추진하겠다는 일념으로 칼을 뽑아들었다. 폭스바겐 경영위원회 전 감독인 페터 하르츠를 위원장으로 위촉하고 노동계, 경영계, 학계 전문가 15인으로 구성된 노동시장개혁위원회(이하 위원회)를 설립했다. 위원회는 노사정의 신뢰와 절박함을 바탕으로 6개월간 논의한 끝에 8월에 '하르츠 보고서'에 합의했다. 이로써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이고 사회복지 체계를 개편하는 한편 단기 일자리(미니 잡)를 확대해 고용을 창출하기로 했다.

기자가 독일 포츠담에서 만난 하르츠위원회의 전 위원 얀 베르너 포츠담대 교수는 합의 비결로 '독일 경제에 대한 위기 의식', 하르츠 위원장의 리더십', '노동개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절박한 타이밍', '접점을 찾기 불가능한 핵심 어젠다 제외'를 꼽았다.

 

하르츠 개혁법 핵심
사회복지 개혁 패키지 '어젠다 2010'

이후 슈뢰더 전 총리는 2003년 3월 하르츠 개혁법을 핵심으로 한 사회복지 개혁 패키지인 '어젠다 2010'을 발표하며 개혁에 고삐를 당겼다. 의회 입법 절차를 거친 위원회의 합의안은 '하르츠Ⅰ~Ⅳ'로 법제화돼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순차적으로 시행됐다.

먼저 2003년 시행된 하르츠Ⅰ법은 신규 고용 확대와 일자리 창출을 핵심 내용으로 한다. 파견 상한 기간을 폐지하고, 반복적 근로계약 체결을 허용하는 한편 신규 창업은 최장 4년간 임시직 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게 했다. 또 52세 이상에 대해서는 자유로운 근로 계약 체결이 가능도록 해 고령자의 취업 지원을 용이하도록 했다.

같은 해 도입된 하르츠Ⅱ법을 통해서는 실업자의 자영업 창업을 지원하고 장기 실업자를 관리하는 '잡센터'를 설립했다. 창업 시 연소득 2만5000유로(약 3321만 원)까지는 3년간 보조금을 지급하고 세금을 19.9%에서 10.0%로 깎아줬다. 아울러 월 소득 400유로(약 53만 원) 이하의 저소득 일자리에 사회보장세와 소득세를 면제해 사람들이 직업을 갖도록 유도했다.

연방고용청이 직업 소개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한 하르츠Ⅲ법은 2004년에 시행됐고, 이를 통해 공무원 한 사람이 담당하는 실업자 수가 400명에서 75명으로 줄었다. 2005년 시행된 하르츠Ⅳ법은 장기 실업자에 대한 실업급여를 축소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로써 실업급여 지급기간이 종전에는 32개월이었지만 이후 55세 미만은 12개월, 55세 이상은 18개월로 조정됐다.

이러한 하르츠 개혁을 계기로 독일 노동시장은 경직된 고비용 구조에서 유연하고 합리적인 구조로 전환됐다. 특히 2005년 말 정권이 바뀌었어도 앙겔라 메르켈 총리(기민당)는 슈뢰더 전 총리(사회당)의 개혁 기조를 이어갔다. 메르켈 총리는 기업의 법인세와 실업보험 부담을 축소하고 해고 제한 요건을 완화하는 식으로 노동개혁을 완성해나갔다.

그 결과 2005년 65.5%였던 독일의 고용률은 올해 1분기 74.1%까지 상승했고, 같은 기간 실업률은 11.2%에서 역대 최저치인 4.8%로 떨어져 완전고용 상태에 근접했다. 특히 여성, 고령자 등 취약계층을 포함해 임금 근로자가 2005년 이후 335만 명이 확대됐고, 60세와 65세의 고용률이 2005년 각각 43.2%, 8.7%에서 2014년 68.8%, 18.2%로 급격하게 높아졌다. 아울러 유로존 위기에도 기업들의 실적 호조가 지속돼 근로자 임금이 인상되고 그에 따라 소비 여력이 확충되는 선순환 구조로 이어졌다. 독일이 전 세계 노사정 대타협의 모범적인 사례로 꼽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다만 시간제 일자리 증가로 불안정한 고용 형태가 증가하고 4~5년간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장기 실업자 비율이 높아졌다. 이에 대해 베르너 교수는 "저임금 근로자와 불안정한 일자리가 예상치 못하게 많이 늘어났다"면서 "노동시장 개혁은 정원을 관리하는 일과 같아 다음 세대에서도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에서 하르츠 개혁 못지않게 부각되는 건 나이, 성별, 근속 연수와 무관하게 직무와 성과로만 임금을 결정하는 임금체계를 개혁한 일이다. 남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는 독일 내에서도 가장 임금체계가 잘 정립된 곳으로 꼽힌다. 약 10년간 노사 협의를 통해 지난 2003년 신임금구조협약(ERA-TV)을 체결했고, 그 협약을 2005년부터 도입했다.

라인하르트 반뮐러 튀빙겐대 노동기술문화연구원장은 "독일 임금체계의 기본 철학은 맡은 직업, 직무에서 요구되는 요소로만 평가하는 것"이라며 "임금체계를 단순화하는 동시에 임금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임으로써 근로자의 성장 동기를 부여한다"고 강조했다.

 

맡은 직업, 직무로만 평가
독일 임금체계의 기본 철학

ERA-TV의 임금체계는 크게 기본급+성과급+특별작업수당으로 구성된다. 기본급은 다시 직무에 따라 17단계로 나뉘는데 2011년 기준으로 1단계는 월 1924유로(약 255만 원)이며, 최고 등급인 17단계는 월 4848유로(약 644만 원)를 받는다. 기본 직무급을 평가하는 요소는 지식과 능력, 사고력, 책임감과 업무 범위, 의사소통, 리더십(관리 능력) 등 5개 항목이다.

예를 들어 입사 초년병이건 15년을 근속했건, 35세든 65세든 자동차 핸들을 조립하는 7단계 업무를 맡고 있다면 같은 기본급을 받는다. 원청에서 필요에 따라 파견 근로자를 받아도 동일 업무에 대해서는 같은 임금을 지급한다. 아울러 약 2년 주기로 진행되는 산업별, 지역별 임금단체협약 교섭에서는 근무시간과 휴가시간 등에 대한 조정이 이뤄진다.

카이 슈봐페 남서금속사용자협의회 노무담당 총괄은 "기본급을 적용받는 직무 단계는 8~10단계가 가장 많고 숙련 엔지니어나 마이스터(장인)가 되면 14~15단계까지 높아진다"면서 "청년들이 3년 정도 직업훈련을 받고 입사하면 6~7단계에서 시작하고 15년 정도 지났을 때 통상 9~10단계로 올라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기본급의 0~30% 사이에서 성과급이 주어진다. 기업은 생산성 및 실적과 관계없이 평균적으로 15% 수준을 성과급으로 책정해야 하며 노동조합도 무리하게 그 이상을 요구할 수 없다. 성과급을 책정하는 기준은 인사 평가, 핵심 성과 지표 비교, 계약 목표 달성 등이며 입사 6개월이 지나야 성과급을 받을 수 있다.

이와 함께 소음이 많거나 밀폐된 환경, 강한 힘이 요구되는 업무에 대해서는 기본급의 10% 이내에서 특별작업수당이 추가된다. 토어스텐 뷔어트 남서금속사용자협의회 기획홍보팀장은 "성과급이나 추가 이윤분배금에 따라 임금 총액에서 차이가 나는 구조"라며 "등급을 높이기 위해서는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추가 교육을 받는 등 자기 계발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독일에서 이처럼 임금체계를 조정한 것은 연공서열식 임금체계를 현 상황에 맞게 조정하고, 사무직과 생산직의 임금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다. 그 과정에서 독일 노사는 신뢰를 바탕으로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인다는 공통의 목표를 추구했다.

실제로 독일 노조는 약 100년 가까이 회사 측과 동등한 파트너로서 협상을 하는 위치에 있다. 5인 이상 사업장에서는 근로자들로만 구성되는 직장평의회라는 조직을 통해 노사 갈등을 최소화한다. 사업주는 한 달에 한 번 이상 근무 규정, 작업 규칙 등의 직장 내 문제를 직장평의회와 협의해 풀어낸다. 독일이 유럽 내에서 파업권이 세고 강한 노조가 있는 국가로 꼽히지만 실제 파업이 일어나는 횟수는 많지 않은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독일은 주변국보다 침체의 폭이 커 경제성장률이 -5.1%를 기록했는데, 당시 노사는 해고 대신 '조업 단축 제도'를 실시했다. 기업은 근로자를 해고하는 대신 근로자의 업무시간을 40시간에서 37시간, 35시간 심지어 26시간으로 줄이면서 고용을 유지했고, 정부는 사회보장비와 함께 기존 임금의 최대 67%까지 지원해 근로자의 줄어든 임금을 보전하며 경제위기를 극복한 것이다.

프랑크 자흐 독일노동조합총연맹(DGB) 국제정책 총괄은 "노사가 유연하게 대처해 경기가 회복될 때 공장을 재가동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면서 "많은 경제학자들이 그때 정리해고를 단행했다면 독일 경제가 살아나는 데 오래 걸렸을 것이라고 분석한다"고 말했다. 한때 '유럽의 병자'로도 불렸던 독일은 이와 같이 노사 신뢰를 토대로 노동시장 개혁을 통해 경제 체질을 바꿈으로써 오늘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하르츠개혁 진행과정

 

· 슈투트가르트·포츠담·튀빙겐=황정원(서울경제신문 기자) 2015.10.12 

 

 

인터뷰 | 귄터 슈미트 베를린 자유대 명예교수

"고등학생 때부터 체계적 직업훈련 사회안전망 그 자체가 투자"

귄터 슈미트 베를린

"독일의 청년실업률 수치가 비교적 양호한 건 독일 청년들이 체계적인 직업훈련을 받기 때문입니다. 한국도 교육 제도와 노동시장을 더욱 긴밀하게 연결하는 분야에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합니다."

독일 베를린에서 만난 유럽 노동계의 거목 귄터 슈미트 베를린자유대 명예교수가 청년실업 문제를 겪고 있는 우리에게 이런 조언을 던졌다. 이는 노동개혁이 향후 교육개혁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슈미트 교수는 "한국에서 대학, 전문대학 등 고등교육기관 진학 비율은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인데 이 중 절반만이 정규직 일자리를 잡는다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우리나라 대학, 전문대학 졸업자의 25%가 비경제활동 상태이면서 고용이나 교육에도 참가하지 않는데, 독일의 대학, 전문대학 졸업자 중 이런 상태에 있는 이는 7.5%에 불과하다.

독일은 유럽에서 청년실업 문제가 적은 국가에 속한다. 청년실업률이 독일은 7.3%인 반면 프랑스(18.4%), 이탈리아(29.6%), 스페인(42.4%) 등은 모두 두 자릿수에 달한다. 이는 독일 정부가 유연한 노동시장과 탄탄한 사회안전망이라는 선진화된 구조를 갖추고, 예비 근로자들이 고등학생 때부터 이론 수업과 실습을 병행하고, 더 나아가 도제식 직업교육 제도(듀얼 시스템)를 실시하며 취업에 대한 준비를 진행하는 덕분이다.

직업교육은 최대 3년까지 진행되는 데 일주일 중 3일은 회사에서 실습하고 나머지 2일은 학교에서 이론 수업을 하는 형태로 이뤄진다. 실습 비용은 기업에서 부담하고 노동조합 전문가와 사측 전문가가 함께 예비 근로자의 능력과 적성에 맞는 다양한 교육과정을 만들고, 예비 근로자는 이런 교육과정을 이수하며 현장에서 필요한 기술을 습득할 수 있도록 했다. 이로써 직업훈련을 마친 이들은 곧바로 현장 업무에 투입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다만 독일은 비정규직 증가로 청년들이 정상적인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시기가 점점 늦어지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 슈미트 교수는 "초기에 실업을 경험했던 청년은 원만하게 노동시장으로 이행한 청년보다 30년 후에도 임금과 행복 수준이 낮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노동시장을 개혁할 때 초기에 취업하는 구직자들이 불안정한 자리로 가는 것을 최대한 없애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뒤이어 슈미트 교수는 "실업급여 등 사회안전망을 촘촘히 갖추려면 비용이 많이 들지만 그 자체가 투자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면서 "한국 기업들이 근로자의 재교육 시스템을 갖추고 배치를 전환하는 식으로 일자리가 유연하게 돌아가도록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 베를린=황정원(서울경제신문 기자) 2015.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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