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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 울리는 ‘일자리 희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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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의 수도 나이로비 산업공단 지역 룽가룽가 거리에는 매일 오전 6시만 되면 긴 줄이 늘어선다. 어림잡아 100여 명이 넘는 구직 행렬이다. “하바리(안녕하세요), 보스!” 차에서 내린 최영철(59) 사나그룹 회장을 알아본 젊은이들이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반갑게 손을 흔든다. 이들은 모두 이 공장에서 일하고 싶어한다. 케냐를 비롯한 동부아프리카 가발 시장의 70퍼센트를 차지하는 사나그룹에 취직하기 위해 짧게는 몇 달, 길게는 1년 넘게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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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는 이미 사양길에 접어든 가발산업이 아프리카에서 희망의 씨앗이 된 데는 최영철 회장의 역할이 컸다. 최 회장이 케냐에 처음 발을 내디딘 것은 30년 전인 1984년, 사회생활을 막 시작할 무렵이었다. 첫 직장인 무역회사 사장이 케냐에서 함께 일해 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해 왔다. 그 말만 철석같이 믿고 전재산 2천만원을 탈탈 털어 구입한 섬유제품을 컨테이너에 실어 나이로비로 보냈다.

3현지에서 물건은 날개 돋친 듯 팔렸지만 사장은 ‘아직 수익이 나지 않았다’며 투자금은커녕 월급 한푼 주지 않았다. 1년 동안 버티다가 결국 한국행 비행기표와 현금 300달러를 겨우 얻어 귀국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는 대신 희망을 봤다. 최 회장은 “아프리카에는 무엇을 가져다 팔아도 잘 팔릴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 후 소규모 무역으로 적잖은 돈을 벌었지만 안주하지 않았다. 제조업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케냐에 가장 필요한 제품은 무엇일까 고심한 끝에 아프리카인의 필수품인 가발을 떠올렸다. 풍부한 노동력을 저렴한 임금으로 쓸 수 있는 환경에 제격인 사업이라고 생각했다.

수개월에 걸친 시장조사 끝에 최 회장은 1989년 10월 케냐인 30명을 채용해 가발공장을 설립했다. 일단 공장 문은 열었지만 가발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터라 어려움이 뒤따랐다. 가발 원사와 부자재를 구하는 일부터 기계 설비를 갖추고 가발을 생산해 판로를 개척하는 것까지 어느 하나 간단치 않았다. 무엇보다 어느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는 기술과 디자인 개발에서 난관에 부딪쳤다. 한국에서 가발업 전문가를 불러 디자인을 고안하고 기술을 배웠다.

무장괴한에 납치당하는 등 숱한 고초 겪으며 기업 일궈 현지인의 노동력 수준도 장벽이었다. “한국인처럼 손재주가 좋지 못해 빨리빨리 제대로 만들어내질 못하는 거예요. 타고난 천성이 여유롭고 느긋해 오늘 못 한 일은 내일 하면 된다는 식으로 일하다 보니 생산성이 떨어졌죠. 이런 근로자들을 가르쳐 일에 대한 책임감을 갖게 하는 데 오랜 시간을 쏟았습니다.” 각고의 노력과 땀의 결과물인 가발은 출시와 동시에 불티나게 팔렸다. 사업이 잘되자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기존 가발업체들이 갖은 협박을 해 왔다. 출근길에 소총을 든 무장 괴한에게 납치되기도 했다.

“돈은 물론이고 차고 있던 시계며 반지까지 몽땅 빼앗긴 채 어느 시골 외딴 곳에 버려졌죠. 내가 이 먼 타국까지 와서 왜 이런 수모를 겪나 싶다가도, 우리 공장에서 일하며 가족을 부양하는 수천명의 직원들을 생각하면 이 곳이 내 자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글·허정연 기자 2014.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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