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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며칠 전 직원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가 사무실 근처 서울역사에 가게 됐습니다. 햄버거 가게 앞에 천안함 피격사건 3주기 전시회를 하더군요. 직원들에게 처남을 소개하는데 가슴이 아팠습니다. 때가 되긴 했구나 하고….”

많이 희석된 것 같은데 때 되면 슬픔은 다시 제자리다. 천안함 46용사유족협의회의 이정국(42) 자문위원. 고(故) 최정환 상사의 매형인 그는 천안함 피격사건 직후 천안함실종자가족대표와 천안함가족협의회 대표로 활동하다 지금은 자문위원으로 있다.

그에게는 인터넷 소프트웨어 개발자인 평범한 일상도 있지만, 3월이 되면 다시 그리움이 돋는다. “3년이라지만 크게 바뀐 건 없습니다. 일상으로 돌아갔으나 식구가 없는 일상이 된 것이지요. 똑같은 일을 하는데 그 사람이 없으니 그때마다 힘들어지는 것이지요.”

외동아들로 자란 이 위원에게 하나뿐인 처남은 친동생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가 처남 최 상사를 만난 것은 최 상사가 고교 1학년 때였다. 고3 때까지 입을 요량으로 넉넉하게 구입한 교복에 ‘풍덩’ 담긴 어린 처남은 곧 해군에 입대하고, 하얀 제복을 입고 결혼식을 하고, 그리고 딸아이의 아빠가 됐다.

“그래도 혈육 잃은 분들만 하겠습니다. 장인·장모님, 처남 가족은 일상이 지뢰밭이고, 제 처는 3월만 되면 끙끙 앓습니다.”

하지만 그는 천안함 피격사건을 통해 가족 잃은 슬픔만 부각되는 ‘감성팔이’를 경계했다. “자식 잃은 부모야 3년이 아니라 30년이 지난들 그 슬픔을 잊겠습니까. 슬픔, 아픔은 가족의 문제입니다. 대한민국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안보입니다.”

 

천안함 사건 3주기를 맞은 소감이 어떠십니까?

“3주기를 맞아 돌아보니 가장 겁나는 것은 30년 후입니다. 그때 어린이들이 천안함에 대한 공부를 할 텐데, 인터넷에서 무얼 보겠습니까? 사상적으로 편파에 물들지 않은 세대가 가장 먼저 만나는 정보가 부정적인 정보들입니다. 이를 바로 전달할 온라인매체를 만들고자 했으나, ‘이슈력’이 떨어진다며 협조를 못 받았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누가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전쟁이 날 때 누가 앞장서겠습니까? 그것이 겁납니다.”

 

3그러한 불신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몇 년간 생계를 접고 쫓아다니며 천안함 사건에 관한 민·군합동 조사단의 조사 결과를 보면서 느낀 점이 우리의 사건대응능력이 매우 뒤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국민에게도 과정을 조리 있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과정에서 미흡했습니다. 민주주의의 사상의 자유를 역이용하는 기생 세력들이 공격할 빌미나 틈을 주지 말았어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군과 정부의 노력이 부족했다고 봅니다.”

 

불신을 없애기 위해 지금이라도 필요한 노력은 무엇일까요?

“처음에는 혼란스러워 미처 챙기지 못했다 해도 지금쯤은 완벽한 천안함 보고서나 백서가 나와야 합니다. 정부와 군은 이해하지 못한 국민에게 100번, 1,000번이라도 이해시켜야 합니다. 그것이 신뢰의 시작이라고 봅니다. 다 밝히자면 정부나 군 입장에서도 아픔이 있고 부족한 부분도 있겠지만 국민들에게 신뢰를 얻고 더 이상 비극을 만들지 않도록 제대로 된 백서가 필요합니다.”

 

그동안 천안함 유족으로 활동하며 가장 가슴 아팠던 점은요?

“가장 화나고 서러운 것은 천안함 장병들에 대해 패잔병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제 처남은 13년을 근무했습니다. 1차 연평해전에 참전하고, 2차 연평해전 때는 시신 수습을 하고, 천안함 사건으로 동료들이 누웠던 스테인리스 침대에 함께 누웠습니다. 영웅처럼 떠받들어 달란 말이 아닙니다. 자신의 임무에 충실하다 희생됐다는 당연한 평가조차 받지 못하는 현실이 가슴 아픕니다.”

 

가슴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해야 할 과제가 있다면요?

“3년이면 탈상할 때입니다. 아직까지 천안함의 의미는 슬픔입니다. 국가적으로 그 희생의 의미를 살리려는 노력이 더 있어야 합니다. 안보에 대해 공포심을 줄 필요는 없지만 현실을 인지시켜 줄 필요는 있습니다. 군 입대는 나라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마땅히 하는 일이란 분위기가 조성돼야 하고, 사회 지도층이 솔선수범해야 합니다. 천안함 사건으로 국민성금을 낼 때 100만원 이상의 익명 기부자가 많았습니다. 국방력은 국민의 이러한 우러나온 마음을 바탕으로 다져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박경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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