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뉴스

“일감도 나누고, 서로의 일손도 되어주고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서울 동대문구 창신동에서 11년째 봉제공장을 운영하는 한성하(47)씨는 요즘 일할 맛이 난다. 직원 8명과 공장을 꾸려오다 보니 일손이 부족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최근 인근의 다른 공장들과 교류하며 이 문제를 말끔히 해결했기 때문이다.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타 공장에 알리면 전체 연락망을 통해 이웃 공장의 직원들이 일종의 ‘품앗이’를 하러 한씨의 공장으로 온다. 반대로 이웃 공장의 인력이 부족할 때면 한씨 공장의 직원들이 도우러 간다. 일감도 마찬가지다. 업체로부터 일을 받으면 일감이 없어 어려움을 겪는 공장에 이를 소개해준다. 한씨는 “인근에는 2~3명 규모의 영세한 봉제공장들이 많아 인력난을 겪을 때가 잦은데, 주변의 공장들과 협력해 인력 및 일감을 알선하니 든든하다”고 말했다.

481곳 인가… 서울 174건으로 가장 많아
현재 창신동에는 한씨의 공장과 같은 봉제공장이 2,800개에 달한다. 하지만 이 중 30퍼센트가량이 2인 부부 형태의 가내수공업으로 환경이 열악한 편이다. 사업자등록증이 없는 경우도 다반사다. 설령 있다 하더라도 4대 보험 가입을 꺼려 제대로 된 정부의 지원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에 120여 곳의 공장이 힘을 합쳤다. 정보를 나누며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환경을 스스로 마련하고 있다. 봉제공장 및 의류 제조업에 종사하는 이들을 조합원으로 한 ‘서울의류봉제협동조합’을 통해서다.
지난 1월 8일 박귀성(54) 한국의류산업협회장의 주도 하에 출범한 이곳은 봉제산업 종사자들의 권익 개선을 위한 사업을 진행한다. 1구좌당 10만원의 출자금을 낸 180명의 조합원들은 일감 및 인력 알선 외에도 필수 의류자재를 공동 구매해 싸게 공급하는 사업을 펼친다.
대체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준비 중에 있다. 앞으로 서울의류봉제협동조합은 공동브랜드를 만들어 상표등록을 하고, 이를 기반으로 수익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지난 1월부터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상표 이름을 공모 중인데, 이달 내 작업을 마무리 지을 예정이다.
봉제공장 종사자들이 지역 경제활동의 주체가 된 데에는 지난해 12월 1일 발효된 ‘협동조합기본법’(이하 기본법)의 힘이 컸다. 기본법이 시행됨에 따라 금융·보험업을 제외하고는 5명 이상만 모이면 누구나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게 됐다. 기본법 발효 전에도 우리나라에는 농협이나 수협·생협 등 8개의 개별 협동조합이 있었지만 지금까지는 정책수행의 보완적 성격이 더욱 강했다.
하지만 기본법이 통과되면서 국내에서도 소수의 생산자 및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조합원으로 참여하는 소규모 협동조합 설립이 가능해졌다. 3월 10일까지 전체 설립신청 건수는 총 647건으로 하루 평균 약 6.5건이 접수됐다. 이 중 481건이 신고수리 또는 인가됐다. 지역별로는 서울이 174건으로 가장 많았고, 광주(95건)·경기(68건)·부산(50건)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소상공인, 영세사업자 등 경제적 약자들이 모인 협동조합은 태생적으로 특권층이 아닌 99퍼센트 다수를 위한 경제를 지향한다. 주식회사의 의결권이 ‘1주1표’ 방식을 따르는 데 반해 협동조합은 출자규모에 관계없이 조합원 모두가 평등하게 1표씩 갖는다. 경제적 약자 편에 선 협동조합이 늘어나며, 활기를 잃었던 지역경제가 점차 활성화되고 있다. 부산 내 구멍가게들이 조합원으로 뭉친 ‘부산골목가게협동조합’은 협동조합의 출범과 함께 점포 소득 증가는 물론 그간 엄두를 내지 못했던 온라인 쇼핑 시장에도 진출할 수 있게 됐다.
영리가 아닌 공익을 목적으로 탄생한 사회적협동조합도 늘어 그동안 복지 사각지대에 놓였던 취약계층들이 힘을 얻고 있다.
사회적협동조합이 취약계층의 일자리 창출에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취업 어려운 취약계층에 우호적 시장 마련
사회적협동조합은 ‘지역별 맞춤복지’도 가능케 할 것으로 보인다. 지역주민이 직접 조합원이 되면 노인요양·보육 등 지역이 필요로 하는 복지를 자체적으로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은 농식품·공공요금 등 생활물가 안정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개방적이고 실질적인 혜택을 주는 협동조합들이 늘면 일반 민간기업들이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책정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3월 15일 당시 기획재정부 신제윤 제1차관은 “협동조합은 수요와 공급 양 측면에서 물가상승 완화에 기여한다”며 “생활밀착형 협동조합 활성화를 통해 농산물 가격과 서비스 요금 등 생활물가를 낮춰 전체 물가지수 인하를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향후 정부는 협동조합 활성화를 위해 우선 협동조합 기본법을 개정하고 다른 법인과 차별해소 등을 위해 관련법과 제도를 개선해나갈 방침이다. 특히 중소기업법 개정으로 사회적협동조합을 중소기업에 포함시켜 관련 혜택을 받게 할 계획이다.
글·백승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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