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뉴스

과도한 빚 부담에 시달리는 서민들의 삶을 정상궤도로 되돌리기 위해 출범한 국민행복기금은 지난 1년 동안 희망조차 잃었던 많은 서민들에게 빛이 되어주었다. 일부 채무를 감면받기도 하고, 능력에 따라 분할 납부를 하면서 가슴을 펴고 살 수 있게 됐다. 다음은 국민행복기금이 전하는 희망 찾은 이야기들이다.
채권추심 도망자에서 정상생활로 10여 년 전 부모님 병원비 때문에 카드 빚을 낸 송모(33·여) 씨는 그로 인해 자신의 삶이 달라질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카드 빚을 갚지 못한 상황에서 사기대출까지 당했다.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송 씨가 갚기에는 너무 큰 부담이었다. 송 씨는 채권 추심업자를 피해 집을 나와 10년을 숨어 살아야 했다. 어디에서도 자신의 이름으로는 직장도 구하지 못하고, 은행 통장은 물론 휴대폰 개설도 못하는 상황에서 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었다.
자신의 이름으로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송 씨는 국민행복기금의 문을 두드렸다. 그의 채무를 확인하니 원금은 681만4천원인데, 이자가 무려 1,931만2천원이었다. 송 씨는 이자 전액, 그리고 원금의 50퍼센트를 감면받았다.
그는 줄어든 대출금을 나눠 갚으며 부모님 곁에서 제대로 된 직장을 갖고 본인 명의의 통장을 만들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

일곱 자녀 키우는 가장의 부담 덜기 위모(44·남) 씨는 월수입 150만원으로 자녀 7명을 키우는 가장이다. 결혼 후 육가공품을 실어다 마트에 납품하는 일을 시작했는데,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신용카드·캐피털·은행 등에서 대출을 받게 됐다.
이후 택배업으로 생계를 유지하게 됐으나 아이들과 함께 먹고 사는 문제가 시급하다 보니 빌린 돈을 갚지 못해 지난해 초까지 6개월 이상 연체됐다.
국민행복기금 출범 소식을 듣고 위 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채무조정 신청을 했다. 그 결과 채무액 681만1천원 중 60퍼센트를 감면받고 나머지 272만4천여 원만 10년 분할(매월 약 2만2천원)로 납부하고 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빚을 갚아나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개인사업 도산에 병원비까지 ‘설상가상’ 탈출 한모(56·남) 씨는 개인사업을 하던 사람이다. 사업이 망한 뒤 생활비에다 갑작스러운 병원비까지 지출해야 해 결국 카드 빚을 졌다. 일정한 수입이 없다 보니 카드 빚을 연체하게 됐다.
나이가 많으니 취업도 쉽지 않았다. 절박한 마음에 국민행복기금에 기대를 걸었다. 원금과 이자를 더한 그의 총 채무액은 1,384만8천원. 한 씨는 이 가운데 채무 원금의 50퍼센트를 감면받아 692만4천원을 10년에 걸쳐 월 5만7천원씩 상환하게 됐다.
나이가 걸림돌이던 취업도 국민행복기금을 통해 해결했다. 국민행복기금의 취업연계 프로그램을 안내받아 납품·배송업무에 취업,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
카드 빚 구제받아 활짝 핀 모성 한모(48·여) 씨는 두 아들을 키우는 기초생활수급자다. 남편이 술을 마시는 날에는 폭언과 폭력을 피해 두 아들과 함께 집 밖에서 남편이 잠들 때까지 기다렸다 들어가야 했다.
이런 가정환경 때문에 큰아들은 사춘기 이후 점점 비뚤어져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가출했다. 어느날 카드 빚 독촉장이 날아왔다. 살아갈 길이 막막하니 카드 빚에 손을 댄 것이다. 아들의 카드대출금 상환은 온전히 한 씨의 몫이 됐다.
남편에게 생활비를 제대로 받아본 적 없이 20년 넘게 공공근로 일을 해 온 한 씨는 길거리·화장실·지구대 청소 등 할 수 있는 일은 닥치는 대로 했지만, 아들의 카드 빚을 갚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던 중 희망의 빛을 보았다. 국민행복기금에 채무조정을 신청해 이자와 원금을 조정받아 매달 2만4천원씩 10년만 내면 모든 빚을 정리할 수 있게 됐다. 자식에게만은 빚의 굴레를 남겨주고 싶지 않았던 한 씨의 소원은 국민행복기금 덕분에 이뤄질 수 있게 됐다.
12년 만에 귀가한 가장 사업을 하던 김모(44·남) 씨는 사업 실패로 오랜 암흑의 세월을 보냈다. 사업 실패 후 계속된 채무 독촉전화, 찾아오는 채권자들, 등기우편물로 온 가족이 시달리고 아이들은 기가 죽어갔다.
김 씨는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하겠다며 아내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부부가 함께 법원으로 가는 버스에서 내내 고개 숙이고 있던 김 씨, 그 모습을 본 아내가 마음을 바꾸어 이혼을 하지 말자고 했다. 하지만, 계속된 추심업자의 추심을 견디지 못한 김 씨는 가족들에게 피해를 주기 싫어 결국 집을 나갔다.
김 씨는 지난해 국민행복기금에 채무조정을 신청하기 전까지 꼬박 12년 동안 여러 지역을 떠돌면서 일용직 노동일을 전전하며 살았다. 이제 더 이상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김 씨의 전화에 아내와 아이들은 그동안의 설움을 기쁨과 함께 쏟아냈다. 지금 김 씨는 12년간 말소되었던 주민등록을 신청하고, 온전한 국민의 한사람이자 한 가정의 가장으로 돌아왔다.
글·박경아 기자 2014.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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