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뉴스

초창기 회사 규모가 작을 때는 한눈에 직원의 움직임과 회사의 상황이 들어와 모든 문제에 기동성 있게 대처할 수 있다. 하지만 규모가 커지면 상황은 달라진다. 직원이 늘어나면서 부서가 생기고 칸막이가 쳐지면서 각종 복잡한 절차가 생긴다. 회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부서를 만들고 칸막이를 쳤던 것이 관료주의와 같은 병폐를 조장해 정작 위기상황에 직면했을 때 기동성 있는 대처를 가로막는 것이다.
일본 화장품 통신판매 회사 사이 칸제약소는 이런 문제를 극복했다. 이 회사는 1932년 창업, 1979년 1차 부도를 겪고 1982년 각고의 노력 끝에 기사회생했다. 이후 회사는 승승장구했고 10년이 지나지 않아 매출액이 1백만 달러에서 1억 달러로 100배 성장했다. 전 일본이 놀란 경이적인 성장이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1989년부터는 회사의 제품에 대한 고객 불만이 많은 기업으로 언론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고객불만이 많아진 원인은 통신판매를 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통신판매원들 간의 경쟁이었다.
성과에 대한 욕심으로 과도한 경쟁을 부추겨 고객의 불만이 묵살되거나 묻혀 쌓였던 것이다. 몇 년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영진들이 노력했지만 관료화와 절차의 벽에 걸려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1993년 회사는 문제 극복을 위해 큰 결단을 내렸다. 칸막이를 걷고 1천명 모든 직원이 한 공간에서 같이 일하는 혁신을 선택했다. 회사 내의 문제와 불만을 대표와 간부는 물론, 직원들이 한눈에 보기 위해서였다. 사이 칸제약소는 1층에 최대 2,300명까지 수용 가능한 엄청난 규모의 사무실이 있고, 2층에서 내려다보면 1층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사무실 내부에는 높은 천장을 받치고 있는 세 개의 기둥이 있는데 이 기둥이 일종의 경계를 나누는 기준이다. 이를 통해 사무공간을 각 부서별로 분리한다. 기둥 중앙에는 기획부서, 남쪽에는 텔레마케팅 부서, 북쪽에는 통신판매를 하는 소수의 마케팅 부서가 자리 잡는 식이다. 따라서 사무실 접견실도 임원실도 따로 없다. 다만 사무실의 중앙지점에 놓인 테이블에서 방문객을 맞고 있다.
일을 하다 갑자기 ‘두둥’ 하는 북소리가 울리면 회의가 시작된다. 소리에 따라 중앙으로 사원들이 모이면 그 자리에 선 채로 회의를 진행한다. 이메일로 회의를 미리 공지해 시간이 되면 회의실로 자리를 옮기는 일반 기업의 모습과 가장 대조적인 면이다.
조직 내 다양한 구성원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공간의 힘을 빌린다. 이를테면 한 텔레마케터(통신판매원)가 고객 불만을 접수하면 당장 문제와 관련 있는 다른 부서의 담당자에게 달려가 그 자리에서 긴급회의를 연다. 문제를 함께 공유하고 즉석에서 대응책을 강구하다보니 시간과 자원이 절약되고 다른 부서와의 소통도 쉬워진다.
사이 칸에서는 사무공간 외에도 ‘프리 어드레스’(free address·사무실 자유좌석화)라는 독특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 제도는 텔레마케터가 출근해서 앉은 자리에 자신의 출근카드를 꽂고 단말기에 코드를 입력하면 그 자리가 그날 자신이 일하는 자리가 되는 방식이다. 이 제도 역시 각 부서 내부의 목표에 집중해 회사 전체의 목표를 잊어버리는 일을 방지하고자 만든 것이다.
한 공간에서 일하다 보니 다른 부서에서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전 조직원이 공유할 수 있고, 보고서가 난무하지 않아도 1천명의 직원이 공동의 목표를 갖고 같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됐다. 이들의 혁신은 성공했고 2000년대 들어 2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자랑하고 있다.
조직 내 소통이 원만하지 않아 고민인 기업이라면 하드웨어적 공간설계로 직원을 관리하는 사이 칸제약소의 경영 환경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글·박성희(한국트렌드연구소 책임연구원)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