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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가슴에 단비 내린 ‘문화누리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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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문화누리카드’가 일을 냈다. 고놈 때문에, 아내가 40여 년 만에 서점에 가는 일이 벌어졌다. 아내의 표현대로 ‘책의 바다’, 서점.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저소득층 서민들을 위하여 마련한 문화누리카드. 그 카드가 고사목(枯死木) 같던 아내의 가슴에 뽀얀 꽃눈을 피우기 시작한 것이다.

아내의 고향은 중국 흑룡강성 해림현 목단강 강변마을이다. 중국내 조선족 출신인 아내의 최종학력은 중학교 졸업이다. 아내는 그동안 책만을 전문으로 파는 서점에는 한번도 가 본 일이 없다고 했다. 학생시절엔 국가에서 지급하는 교과서가 유일한 책이었고, 그 이후에도 돈을 주고 책을 사 본 기억이 없다고 했다. 1995년 한국으로 시집을 온 이후에도 아내가 책을 사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책을 사기는커녕 이미 비치되어 있는 책에도 관심이 없었다. 아니, 관심을 가질 여유조차 없었던 것. 항상 쪼들리게 살았고, 그 결과 책을 산다는 것은 아내에겐 말 그대로 사치였다.

요즘 책 한 권 가격은 대략 1만원 정도이다. 아내가 책 한 권을 산다는 것은 1천원어치 콩나물 열 번 사는 것을, 2천원짜리 배추 다섯 포기를, 5천원짜리 국수 두 묶음을, 3천원짜리 자반고등어 세 손을, 1만원쯤 하는 삼겹살 한 근을 포기해야만 한다는 의미였다. 물론 이런 결과는 전적으로 나의 무능 때문에 빚어진 것이었다.

올초 동사무소로부터 문화누리카드를 받아온 아내는 한숨을 푹푹 쉬는 것이었다. 거금 10만원짜리 공짜 카드가 넝쿨째 굴러들어 왔는데, 엄지를 곧추세우며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잿빛 한숨이었다. 아내에게 문화누리카드는 버리자니 아깝고 쓰자니 탐탁지 않은 존재였다. 정부에서 저소득층의 문화생활을 위하여 짜낸 아이디어라고 설명을 하고 나서, “영화 또는 연극을 관람하거나 책을…”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내는 내게 왕소금으로 버무려진 푸념 한 방을 쏘았다.

“책이 밥 먹여줘요?”

내 말문이 턱 막히고, 주먹으로 명치를 한 방 얻어맞은 것처럼 내 아랫배에 통증 하나가 길게 지나갔다. 문화누리카드를 수령하라는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받고 동사무소로 달려갈 때, 아내의 기대는 이런 것이었을 것이다. 시중에서 유통되는 상품권처럼 문화누리카드도 시장에서 자기가 원하는 물건을 살 수 있는 것. 즉 문화생활을 원하여 책을 사거나 영화를 볼 사람은 그쪽에 카드를 사용하고, 그런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쌀이나 반찬거리를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분홍빛 기대. 그 기대가 산산이 부서졌던 것이다.

‘책이 밥 먹여주냐’ 반문하던 아내

동사무소 사회복지사의 설명을 듣고 온 아내는 문화누리카드를 방바닥에 내팽개쳐 버렸다. 그렇다고 그것을 당장 쓰레기통에 던져버리지는 않았다. 내팽개쳐진 그 문화누리카드가 방바닥에서 폭소를 터뜨리고 있었다. 아내가 그 카드를 집어들어 휴지통에 막 던져버리려고 하다가, 그대로 멈춰라 게임을 하듯 뚝 멈추더니, 그 카드를 가지고 창가로 다가가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 순간 아내는 머릿속으로 10만원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을 헤아리고 있었을 것이다. 3만원 하는 10킬로그램짜리 쌀 세 포대가 하늘에 둥둥 떠가고, 소고기 서너 근이 손이 닿지 않는 허공에 매달려 있고, 7만원짜리 ‘짝퉁 명품가방’이 눈앞에서 아른거리며 약을 올리고 있었을 것이다.

아내와 나 사이에는 자식이 없다. 첫아이가 자궁 속에서 잘못된 후로, 임신이 되지 않았다. 곧이어 자궁암 전조증상이 나타났고, 적지않은 돈을 투입하여 치료과정을 거치다가 결국 아내는 자궁을 몽땅 들어내는 수술을 해야만 했다. 만일 자식이 있었다면 문화누리카드는 자녀의 각종 도서 구입비로 요긴하게 쓰일 것이었지만 아내에겐 그런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던 것.

본인에게는 쓸모가 없는 듯 느껴지는 그 문화누리카드를 나에게 주는 것도 아내에게는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찢어지게 가난하게 사는 사람이 책은 좋아한다고, 책이 밥 먹여 주냐고, 아내는 나를 힐난하기 일쑤였다. 내가 어렵게 책 한 권을 사들고 오는 날에는 갑자기 집안 분위기가 썰렁해지고, 아내는 엉뚱한 일로 내게 바가지를 긁어댔다. 그러고 나면, 냉전 아닌 냉전 상태가 며칠간이나 이어지곤 했다. (중략) 문득 동생네가 생각났다. 자녀가 둘인 동생에게 그 카드를 주면, 분명 돌아오는 것이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뾰족하게 돋아나는 자존심이 그것을 막아섰다. 나는 먼 산을 바라보며 흘러가는 말처럼 아내에게 한마디 했다.

“필요 없으면 그 문화누리카드 나한테 주지?”

획 돌아선 아내가 눈에 불꽃을 튀기며 내게 쏘아붙였다.

“제대로 밥벌이도 못하면서 무슨 책이야, 책은? 책 볼 정신 있으면 노가다(일용직) 사무실 한 곳이라도 더 가 봐요! 한 곳에서 퇴짜 맞았다고 그냥 돌아오면 어쩌자는 거야?”

3아내가 난생 처음 구입한 책은 <이솝이야기>

어설픈 잽 한번 날리고 카운터펀치를 맞은 격이었다. 그날 새벽에 날품을 팔기 위해 일용직 인력시장에 나갔지만 특별한 기술도 없고 키도 작은 나는 허탕을 치고 돌아왔었다.

문화누리카드에게 귀싸대기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붉으락푸르락 하는 얼굴을 수습하느라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문질러댔다. 가까스로 얼굴 표정은 수습했지만, 가슴속에선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집을 빠져나와 민들레꽃 핀 전주 천변길을 마냥 걸었다.

때론 씨앗을 맺지 못하는 고사목에도 새싹이 돋는 법. 며칠 후, 아내의 화장대 밑에 책 한 권이 숨어 있었다. <이솝이야기> 위에 손거울이 놓여 있어 그 책이 마치 숨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큰 글씨에 삽화까지 곁들여진 양장 제본이었다. 책 뒷면에 새겨진 가격은 1만1천원이었다. 1만1천원은 아내가 1천원어치 콩나물을 열한 번이나 살 수 있는 금액이었다. 순간 내 입이 쩍 벌어지고,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 책을 조심스럽게 펼쳐보았다. ‘여우와 포도’라는 소제목의 책갈피에 문화누리카드가 꽂혀 있었다. 그 책을 문화누리카드로 샀으며 그곳까지는 읽어 보았다는 증거였다.

‘여우와 포도’라는 짧은 이야기를 나도 한번 읽어 보았다. 포도나무 밑을 지나가던 여우가 탐스러운 포도를 발견하고, 그것을 따서 먹기 위해 힘껏 뛰어 보았지만 높이 매달려 있는 포도를 따지 못하게 되자, 그 포도를 올려다보며 샛노란 푸념을 하는 것이 줄거리였다.

“쳇, 저따위 포도는 처음부터 마음에도 없었어. 게다가 포도가 모두 벌레 먹은 것뿐이야!”

그 이야기의 마지막 문장에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그 밑줄 옆에는 나는 알 수 없고 아내만 알 수 있는 중국어로 뭐라 메모까지 되어 있었다.

다시 일주일쯤 후, 또 한 권의 책이 <이솝이야기> 위에 포개져 있었다. 이번에는 <웰빙 식초 건강법>이었다. 가정에서 천연식초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었다. 아내가 문화누리카드의 가치를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고, 문화누리카드는 아내의 황량한 가슴속에 씨를 뿌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문득 떠오르는 책 한 권이 있었다. 나는 <웰빙 식초 건강법>이라는 책의 책갈피 속에 아내 몰래 쪽지 한 장을 슬쩍 끼워 넣었다. 그 쪽지에는 책명 하나를 큼지막하게 적어두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아내가 가끔 2장씩 사는 로또복권의 1등 당첨확률은 860만분의 1이란다. 그 확률만큼이나 희박한 일이 내 눈앞에서 벌어졌다. 며칠 후, 아내의 작은 화장대 위에는 바로 그 책,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가 놓여 있었다. 내 가슴속에서 징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경제적 어려움이 잦은 불화를 낳고, 그 결과 아내와 나 사이에는 항상 깊은 강 하나가 흐르고 있었다. 문화누리카드가 아내와 나 사이를 가로지르고 있던 짙푸른 강에 다리를 놓아준 셈이었다.

나는 시치미를 떼며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의 내용이 무엇이냐고 아내에게 물었다. 순간 아내의 얼굴이 토마토처럼 익어버렸다.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 아내는 책 내용 대신, 그 책을 샀던 서점에 대하여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그 서점은 전주시내에서 가장 전통이 깊은 ‘홍지서림’이었다.

아내가 서점에서 행복을 느끼기 시작

“서점이 그렇게 클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책이 그렇게 많이 진열된 곳은 난생 처음이야. 책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을 줄이야….”

침까지 튀겨대며 열변을 토하는 아내의 얼굴에 모처럼 화색이 돌았다.

“그게 다 문화누리카드 덕택이구만!”

나의 말에 아내는 살짝 얼굴을 붉히더니, 다시 열변을 토했다.

“이제 공중화장실도 은행으로 가지 않고 그 서점으로 갈 거야! 목이 말라 물 한 컵 마실 때도 그 서점까지 걸어가서 마시고 왔어요. 그 서점 속에 그냥 앉아 있기만 해도, 왠지 마음이 푹 놓이고…. 약속장소도 이제부터는 그 서점으로 정할 거야.”

찬물 한 컵을 마시던 내 오른손이 가늘게 떨리고, 내 가슴속 하늘에서는 갑자기 소낙비가 내려 가슴을 촉촉히 적셔주더니, 이윽고 쌍무지개 하나가 떠오르고 있었다.

문화누리카드가 배움의 기회를 잃은 아내 앞에 뽀얀 길 하나를 내고 있다. 그 길이 어디를 경유하며,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잘 모르겠다.

바라건대 <이솝이야기> 속으로 난 교훈의 오솔길을 걸어서, <1천원어치 콩‘ 나물’>이란 현실의 언덕을 넘어서, <웰빙 식초 건강법>으로 몸 건강을 다진 다음, <7만원짜리 ‘짝퉁 명품가방’>의 모래사막을 가로질러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생활철학의 긴 터널을 통과하여, <5천원짜리 자반고등어>가 사는 바다를 건너서, <1만2천원짜리 삼겹살>이 생산되는 돼지축사 모퉁이에 서 있는 하얀 쥐똥나무꽃과 눈 한번 맞추고 난 다음,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삶>이란 산마루에 올라서서 세상사를 한나절쯤 내려다보다가, 한 계단 한 계단 내려와, 걷고 또 걸어서 새로운 <웰빙> 마을에 도착하기를….

정리·허정연 기자 2014.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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