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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헌 윤봉길(1908~1932) 의사 순국 제80주기를 기념하는 추모식이 지난 12월 19일 효창공원 내 묘전에서 열렸다.
그는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하이(上海) 홍커우(虹口)공원에서 열린 ‘일본군 상하이 점령 전승 경축식장’에 폭탄을 투척하여 일본군 수뇌부를 폭사시킴으로써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를 세계만방에 알리고 한국독립운동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의거 직후 현장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된 윤 의사는 같은 해 5월25일 상하이 파견군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1월 18일 오사카 육군 위수(衛戍)형무소에 수감생활을 하다가 12월 19일 오전 7시40분 교외에 있던 작업장에서 26발의 탄환을 맞고 순국했다.
이날 추모식은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독립운동단체장과 광복회원, 기념사업회원, 학생 등 3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학생대표의 어록 봉독, 기념사업회장의 식사(式辭), 국가보훈처장과 광복회장의 추모사에 이어 추모가, 헌화, 분향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은 이날 추모사에서 “대한민국의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발전의 과실을 영위하는 현 세대는, 자라나는 세대가 우리의 자랑스런 독립과 호국의 역사를 바로 알고 애국선열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처장은 또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투쟁하고, 제국주의의 폭압 앞에 당당히 맞서 순국하신 윤봉길 의사님의 명복을 빌며, 오늘 추모식을 통해 스물다섯 살 애국청년의 순국이 온 국민의 가슴에 나라사랑의 불씨로 이어지기를 염원한다”고 말했다.
윤봉길 의사는 충남 예산에서 출생했다.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일제의 식민교육을 배척하여 학교를 자퇴한 뒤 오치서숙(烏致書塾)에서 한학을 수학했고 1927년 구매조합을 조직하여 농민의 경제자립을 추구했다. 그는 또 독서회를 통해서 문맹퇴치에 힘쓰기도 했다.
1928년 부흥야학원을 설립하고 1929년 월진회(月進會)를 조직하여 농민의 단결과 민족정신의 배양, 애국사상을 고취하는 등 농촌운동에 헌신하였으나, 일제의 압박으로 농촌운동이 성공할 수 없음을 깨닫고 1930년 3월 6일 중국으로 망명하게 된다.
1932년 봄에 상하이 홍커우 일대에서 임시정부 국무위원 겸 한인교포단장인 백범 김구 선생을 만나 독립운동 지도자들과 함께 독립운동의 방략을 토론하며 의열투쟁의 기회를 엿보던 중, 4월 29일 일왕(日王)의 생일인 천장절을 맞아 일본군 상하이 점령 전승 경축식을 상하이 홍커우공원에서 거행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살신구국의 기회를 잡았다.

4월 29일 윤 의사는 김구 단장으로부터 받은 수통으로 위장한 폭탄 1개와 도시락으로 위장한 폭탄 1개를 투척하여 일본의 수뇌부를 폭사시킴으로써 한국 독립운동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으며, 한국과 중국의 항일연대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25세의 나이로 이국 땅에서 순국한 윤 의사의 유해는 1946년 일본에서 박열(朴烈), 이강훈(李康勳) 선생 등의 주선으로 본국으로 봉환되어 효창공원에 안장되었다. 정부에서는 의사의 공적을 기려,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고인에게 추서했다.
정부는 올해 의거 80주년을 맞아 윤봉길 의사의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한 다양한 행사를 진행해왔다. 폭탄을 투척한 4월 29일에는 국내와 중국에서 동시에 기념행사와 공연을 개최한 바 있다. 중국 상하이 홍커우공원에서 열린 올해 행사에는 중국 측 고위인사와 교민 3백여 명이 참석해 성황리에 기념식을 마쳤다.
지난 7월에는 ‘윤봉길 의사의 발자취를 찾아서’라는 주제로 중국현지 탐방교육을 실시, 전국 중·고·대학생 참가 희망자 60여 명을 선발해 함께 다녀오기도 했다. 국가보훈처는 학생들과 함께 홍커우공원과 임시정부를 둘러보는 3박 4일의 일정을 소화했다.
윤봉길 의사의 사진전도 많은 학생들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1~3차로 나눠 진행된 사진전은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서초구청 본관, 양재동 AT센터 등에서 지난 8월부터 10월 중순까지 진행됐다. 지난 9월에는 윤봉길기념관에서 기념음악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소프라노 이석란, 아리수 합창단, 가수 서유석씨 등이 출연한 행사에는 약 1천명의 관객이 참여했다.
올해는 윤봉길 의사를 기념하기 위한 한시 백일장 대회도 열렸다. 대전 충남유림회 주관으로 열린 이날 행사에서 장원 1명 등 총 41명의 우수작을 선정해 시상했고 주요 작품을 묶어 백일장 시집도 발간하며 윤 의사의 순국 의미를 되새겼다.

일본에 잡혀가 윤 의사가 순국할 때까지 거쳐갔던 현장을 답사하는 행사도 지난 11월에 열렸다. 일본 가나자와, 교토, 나라, 오사카 등을 답사하는 행사에는 다무라 미쓰아키(田村光彰) 전 호쿠리쿠대 교수의 특강도 이어져 탐방단에 참가한 학생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지난 2006년 일본 가나자와에서 양심 있는 일본인들과 함께 ‘윤봉길과 함께하는 모임’을 발족해 활동하고 있는 다무라 전 교수는 현지 특강에서 “윤봉길로부터 배우고 실천하는 것이 인권을 존중하는 일본으로 변화시키는 일이며, 윤봉길 저항투쟁은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의 전쟁, 억압과 부정에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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