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뉴스

올해는 한국과 베트남이 월남전이라는 현대사 문제를 극복하고 정식 외교관계를 수립한 지 20주년 되는 해다. 1992년 수교 당시 5억달러에 불과하였던 양국 교역규모는 2백억달러로 늘었다.
한국은 베트남 해외투자국가 가운데 1, 2위 자리를 다툴 정도로 도약하였고, 3천여 한국계 진출기업은 그 수나 수익 면에서 여타 국가기업들을 압도적으로 앞섰다. 교역 규모가 늘어남에 따라 현지 거주 교민도 13만명으로 늘었다. 이는 베트남에 거주하는 외국인으로는 화교 다음으로 가장 많은 인구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베트남으로 빠져나간 빈 공간은 현재 12만명에 달하는 베트남 사람들로 자리바꿈되었다. 산업연수생 6만5천명, 베트남 신부 5만명, 유학생 5천명이 그 공간을 메우고 있다. 이 역시 한국에 거주하는 민간 외국인 가운데는 중국인 다음으로 많은 두 번째 규모다.
이렇듯 짧은 기간 동안 두 나라의 관계가 괄목할 만큼 성장하기 까지는 많은 요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한국을 국가발전 모델로 삼아 우리의 경험과 노하우를 배우고 싶어하는 베트남의 열망을 꼽을 수 있다. 오랜 전쟁의 상흔에서 벗어나 이제 1인당 국민소득 1천4백달러에 달한 개발도상국가 베트남에게는, 한 세기 이전에 이미 선진국에 도달한 서구나 일본 같은 나라들은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그렇다고 지척에서 급성장하는 중국은 국가규모에 차이도 있고, 경제발전 과정이 아직은 충분히 검증된 것이 아니기에 따라가기에는 불안하다.


이에 비하여, 한국은 국토면적이나 인구규모가 비슷하고, 또 당대에 국가발전 과정을 직접 목도하였기에 구체적으로 눈에 잡히는 대상이다. 반세기 전에는 상황이 비슷했던 한국이 지속된 평화로 국가발전에 매진할 수 있었던 반면, 베트남은 월남전 종전 후에도 계속된 중·월 전쟁과 경제 제재 후유증으로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는 점도 벤치마킹하기에 부담이 없다.
사실 아세안 지역 중 베트남만큼 ‘메이드 인 코리아’를 흔히 접할 수 있는 곳은 없다. 그러나 그동안 아세안은 일본의 뒷마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일본 자본과 제품, 문화가 생활 속에 널리 퍼져 있다. 중국 역시 화교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오랫동안 누적된 영향력이 상당하다.
하지만 베트남에서 한국의 놀라운 약진을 보며, 이를 좌시하다가는 그간 누려온 우월적 기득권을 상실할 수 있다는 판단하에, 일본과 중국은 아세안 한류의 원점인 베트남에서 판세를 뒤집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따라서 당분간 베트남에서는 한국, 일본, 중국 3국 간에 주도권 장악을 위한 각축이 심화될 것이다.
다행히 한국에는 이들과의 경쟁에서 우리 편이 되어줄 든든한 후원군이 있다. 한국에 거주하는 베트남 사람들, 특히 가정을 이룬 5만 쌍의 한국·베트남 가족이 바로 그들이다. 더욱이 이 숫자는 매년 7천 쌍씩 늘고 있다. 덕분에 한국과 베트남은 단순한 교역 대상국 이상의 혈연으로 맺어진 사돈의 나라가 되었다. 그리고 2세들로 인해 한국과 베트남은 엄마나라, 아빠나라가 되었다.
공자는 치국의 도를 묻는 질문에 ‘근자열 원자래(近者說 遠者來)’라 답한다. 가까이 있는 이가 좋으면 먼 곳에 있는 이는 절로 찾아온다는 것이다. 세상 이치가 이럴 것이다. 한국과 베트남이 오랫동안 같이 가는 길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현재 살림살이가 좀 낫다고 우쭐대지 말고, 옆에 다가온 한사람 한사람의 마음을 얻도록 하는 것이 바로 답이다.
글·금기형 (문화체육관광부 문화도시정책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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