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뉴스

흔히 한·미 미사일협정이라고 말하지만 이는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자율규제 성격의 지침(guide line)이 맞다. 우리 정부가 1970년대 지대지미사일 사업을 시작할 때 사실상 ‘무(無)’에서 시작하는 상태였으므로 미국의 기술지원을 받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때 ‘이러저러한 규제를 스스로 하겠다’는 가이드라인을 미국정부에 제시한 것이다. 즉 미국이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정부가 스스로 제한하겠다는 모양새를 취한 것이었다.
골자는 사거리 1백80킬로미터, 탄두중량 5백킬로그램 범위 내에서만 탄도미사일을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이 지침이 2002년에 사거리 3백킬로미터, 중량 5백킬로그램의 미사일수출통제체제(MTCR) 범위로 변경되었고 다시 오랫동안의 협상을 거쳐 이번에 사거리가 8백킬로미터로 늘어난 것이다.
탄도미사일 사거리가 3백킬로미터에서 8백킬로미터로 늘어난 것은 큰 성과다. 욕심으로는 제주도 최남단에서 북한 최북단까지를 사정거리에 넣기 위해서는 보다 충분한 거리가 필요하지만 현실적으로 8백킬로미터 사거리로도 국내 어느 지점에서든 북한 전역을 사정거리에 넣게 되었다.
사거리가 8백킬로미터로 늘어나면 대기권 밖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대기권 안으로 내려오는 탄도를 비행해야 하기 때문에 대기권 진입시 고열을 견뎌낼 수 있는 소재 개발이 필요하며 이 기술은 민간 우주로켓 개발에도 전용될 수 있다.


지금까지 순항미사일은 사거리가 3백킬로미터 이내이면 중량에 제한이 없고 중량이 5백킬로그램 이내이면 사거리에 제한이 없었다.
우리 군은 이 분야에서 이미 상당한 발전을 이룩하고 있다.
무인항공기(UAV) 탑재중량을 5백킬로그램에서 2.5톤으로, 글로벌 호크급으로 확보한 것은 또 하나의 큰 성과이다. 무인항공기는 승무원이 적의 포화에 노출되지 않고 장기간의 순항이 가능하기 때문에 동굴진지로 들어간 표적이 다시 밖으로 나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가 적시에 타격하는 등, 전술적 융통성을 발휘하는 데 유용하다. 이로써 우리의 억제력(deterrent)이 획기적으로 증대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장악하기에는 손실이 너무 많겠다는 계산으로 도발을 못하게 하는 거부적 억제(denial deterrence)나 일격을 가하더라도 보복으로 입는 피해가 너무 크다는 계산에서 도발을 못하게 하는 보복적 억제(retaliatory deterrence)가 아니라 어떠한 형태의 도발에도 즉응하는 적극적 억제(proactive deterrence)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이스라엘이 바로 그 모델이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능력 증대에 미국의 안전보장 약속에 안심하지 않고 필요하면 자기들은 독자의 방법을 강구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으며, 이를 위한 태세를 강구하는 데 여념이 없다.
이번 한·미 간 협상은 청와대와 백악관이 직접 나서서 돌파구를 풀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2010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을 겪으면서 미사일 협상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의지가 더욱 굳어졌고 따라서 협상은 시종 청와대 참모진이 백악관 안보담당 참모진과 긴밀한 협력하에 이루어졌다. 협상이 한계에 이르자 일방적으로 폐기 움직임도 보이는 협상전략도 발휘하였으며 이에 미국 측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의지가 그만큼 절실한가’ 하고 확인해 볼 정도였다고 한다. 나는 10년 전 한·미 미사일협상의 실무 국장으로 현장에 있던 당사자로서 충분히 그랬을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비확산정책의 틀을 지켜 나가려는 미국 정부의 의지는 확고하다. 그리고 여기에 관련된 실무자 진용도 큰 변동이 없다. 결국 백악관의 안보보좌관실이 국무부의 반대를 뚫고 협상이 타결되는 데 큰 역할을 하였으며 오바마 대통령이 마지막에 직접 개입해 ‘한국이 원하는대로 해 주라’고 지침을 내린 것이 결정적으로 주효했다고 한다.
우리는 앞으로 3년이면 한미연합사가 해체되고 연합방위 체제가 공동방위 체제로 전환하는 전작권 전환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지금까지 한미연합사는 세계 최고의 효율적이고 강력한 연합방위 체제였으며 북한의 전쟁도박을 성공적으로 억제해 왔다.

한미연합사 체제에서 우리는 미국의 전 세계에 걸친 군사체제에 접근이 가능하고 또 이를 활용할 수 있었다. 전작권이 전환되어도 여기에 접근이 가능할 수 있도록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와 군은 공동방위 체제를 어떻게 설계하고 움직여 나갈 것인가에 모든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군은 물론이거니와 국가통수권 차원에서 한·미 간에 긴밀한 협조와 연락을 취할 수 있어야 한다. 개인 간의 관계이든 국가 간의 관계이든 인간 사회에서는 기본적으로 상호신뢰가 중요하다. 아무리 조그마한 것이라도 한 번 신뢰가 무너지면 이를 회복하기에는 엄청난 노력이 든다.
이번에 민간 로켓 분야에서 고체연료 분야가 빠진 것은 물론 아쉬운 대목이다. 이는 한국이 이 기술을 바탕으로 장거리 탄도탄을 만들 수 있다는 의구심을 버리지 못한 결과인데, 그렇게 된 이유와 경과를 심중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미연합사의 해체도 이라크와 아프간 전쟁의 여파로 미국의 전세계적 책무(commitment)를 축소 조정해야 할 시점에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꼴이었다.
이제 와서 이를 되돌리기는 어렵지만 보완책을 강구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를 교훈삼아 외교 안보는 일관성을 가지고 추진해야 하며 서로의 신뢰가 무너지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뼈아픈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글·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예비역 육군 소장)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