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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처분한 주미공사관 건물 되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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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자동차를 타고 북동쪽으로 10분 정도 달리면 1백30여 개의 고풍스러운 건물이 밀집된 로간서클역사지구가 나온다. 방사형 도시의 심장부인 이곳 원형도로변에는 빅토리아 양식 특유의 모던함과 클래식함이 잘 배합된 적갈색 건축물이 하나 있다. 현존하는 대한제국 외국 공관 중 유일하게 원형이 남아 있는 주미대한제국공사관 건물이다. 독특한 건축양식과 역사적 의의 때문에 미국 정부에서도 보존가치가 큰 건물로 인정하고 있는 곳이다.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이 유서 깊은 건물은 1891년 조선왕조가 당시로서는 거금인 2만5천 달러를 주고 매입, 구미 최초 공사관을 설치했다. 당시 공식 명칭은 ‘대조선주차 미국화성돈 공사관’(大朝鮮駐箚 美國華盛頓 公使館·주차는 주재를 뜻하고 화성돈은 워싱턴의 한자표기)이었다. 공사관은 오늘의 대사관 역할을 했던 곳이다. 1905년 미국으로 건너간 이승만 박사는 이곳을 거쳐 딘스모어 미 하원의원과 존 헤이 국무장관,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등을 만나 일제가 대한제국을 침략하고 있음을 폭로하고 독립 유지를 위해 미국의 개입을 요청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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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들은 재정이 넉넉지 않은 조선에서 거금을 들여 건물을 통째로 매입한 것에 대해 “1982년 미국과 수호통상조약을 맺은 조선이 청나라·러시아·일본의 압박에서 벗어나려 애쓴 자주외교의 결연한 의지로 보인다”고 분석한다.

1905년까지 14년 동안 주미대한제국공사관으로 사용된 이 건물은 을사늑약(1905년 11월)과 함께 관리권이 일제에 넘어갔다. 이어 일제의 강제병합(경술국치) 2개월을 앞둔 1910년 6월 단돈 5달러에 건물의 소유권마저 주미 일본공사 우치다에게 넘어갔다. 우치다는 3개월 뒤 10달러를 받고 미국인에게 재매각했다. 건물은 이후 1백년 넘게 민간을 떠돌았다.

조선의 독립의지와 경술국치의 비극이 서려 있는 이 역사적 건물을 최근 문화재청과 문화유산국민신탁이 3백50만 달러에 매입했다. 일제에 빼앗긴 지 1백2년 만에 우리 품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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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관의 존재는 1980년대 중반에 알려졌다. 당시 소유주는 1977년부터 거주해 온 미국인 변호사 디모시 젠킨스였다. 건물의 역사적가치에 주목한 우리 정부와 재미동포 단체는 건물을 매입하기 위해 그동안 적지 않은 정성과 노력을 쏟았지만 소유주와의 매입협상이 원만하지 않아 난항에 부딪혀왔다.

이번에 매입을 주도한 문화유산국민신탁에 의하면 재미동포 사회는 1997년부터 공사관 매입을 위한 모금운동을 전개했다. 이 운동은 2003년 ‘이민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2005년 ‘워싱턴 우리 공사관 찾기 운동’으로, 2007년 ‘이민역사 박물관 사용을 위한 모금’으로 이어졌고, 건물 매도 100년을 맞은 2010년에는 건물 매입과 보존을 위한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 운동에는 동포사회의 주요 인사들이 앞장서 참여했다. 하지만 민간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정부가 나섰다. 문화재청은 민관협력에 의한 협상전략을 세워 문화유산국민신탁을 매입 주체로 정하고, 문화유산국민신탁은 현대카드의 후원과 현지 부동산 전문가 등을 통해 연초부터 매입협상을 진행했다. 그 결과 한미수교 1백30주년이 되는 올해 마침내 매입 계약체결에 이르게 됐다.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은 “이 건물의 가격은 한때 6백만 달러(한화 약 68억원)까지 치솟고 건물주가 매각을 거부해 협상에 어려움이 많았다”며 “이배용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해 조윤선 전 국회의원(현 새누리당 대변인), 박보균 <중앙일보> 기자 등이 맹활약한 덕택에 좋은 결실을 맺게 됐다”고 말했다.

역사학자인 이배용 위원장은 이화여대 총장시절부터 이 건물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이 위원장은 가격 문제 때문에 매번 매입이 결렬되어 온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좀 더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판단, 뜻있는 사람들과 함께 헤리티지 포럼을 결성했다. 이 포럼에는 조윤선 전 의원과 박보균 <중앙일보> 기자 등 사회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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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매입협상에서 이들은 각자 역할을 맡아 뛰었다. 컨트롤타워인 이 위원장은 한덕수 당시 주미 대사(현 한국무역협회 회장)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고, 컬럼비아대 로스쿨 출신인 조윤선 전 의원은 법률 분야와 현지 에이전트 관리 업무를 담당했다. 오래전부터 공관의 존재를 대중에 알려온 박보균 기자는 소유주인 디모시 젠킨스를 설득하는 데 앞장섰다.

이배용 위원장은 “이번 협상은 밖으로 알려져 주목받게 되면 가격만 올라가기 때문에 철저한 보안 속에 진행했다”며 “헤리티지 포럼 회원들은 물론 문화유산국민신탁 회원들이 우리 것을 찾겠다는 마음으로 하나가 돼 성공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한미수교 1백30주년을 맞는 올해, 그것도 경술국치일(8월 29일)을 앞두고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건물을 되찾게 돼 기쁘다”며 “이번 일이 한미 양국의 우호협력 증대와 화합의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글·서철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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