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뉴스

결혼한 지 6개월 된 베트남 여성 리(가명). 한국어를 제대로 못해서 답답하다며 남편이 자주 구타를 했고, 때리고 나면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가 길에 혼자 버려두기 일쑤였다.
길도 모르고 한국말도 잘 못하는 리에게는 무서운 일이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부탁해 결혼중개업체에 연락했더니 남편이 와서 그녀를 데려갔다. 그 이후로도 계속 나가라며 폭행과 폭언이 계속됐다. 리는 두려움을 이기지 못해 손님이 온 틈을 타 집에서 도망쳤다. 이번에는 처음 한국에 입국할 때 교육받았던 1577-1366전화번호를 기억해냈다. 곧장 1366센터로 연락해 쉼터로 보내졌다.
이주여성 긴급전화 1366센터의 가장 큰 특징은 자국어 상담이다. 말도 안 통하는 타국에서 위기에 처하면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도 말문이 막힐 때가 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자신의 모국어로 상담을 할 수 있으니 가장 큰 위안이 된다.
“이주여성들은 남편 하나 믿고 낯설고 물선 대한민국에 온 겁니다. 이 여성들을 한국여성의 눈으로 보면 안 됩니다. 한국 여성은 이곳에 가족도 있고, 공부해서 당당하게 혼자 설 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주여성들은 아무것도 없어요. 인권침해를 당해도 편들어줄 사람 하나 없는 거죠.”
각 나라 출신이 직접 상담
이주여성 긴급전화 1366센터의 강성혜 소장은 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온 그들을 존중해줘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이 우리나라에 돈을 보고 왔건, 사랑을 보고 왔건 어쨌든 그 당시 상황에서는 이곳으로 올 수밖에 없었고 인간으로서 대우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강 소장이 전하는 그들의 억울한 사연도 가지가지다. 아이를 못 낳는다고 쫓겨나는 것은 이야기 축에도 못 낀다. 방에 감금돼 있다가 탈출한 사람도 있고, 70이 넘은 할아버지가 아내와 서류상으로만 이혼한 후 이주여성과 셋이서 살면서 몸종 취급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곳에서 일하다 보면 보람보다 안타까웠던 순간이 더 많이 기억나요. 자살하겠다고 전화한 사람을 설득해서 위기를 넘겼던 것은 좋은 기억입니다.”
강 소장은 앞으로도 더 많은 위기의 이주여성을 구하기 위해 인력이 보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설립 1년 만에 전화접수가 1만 건을 넘어선 것은 그만큼 더 많은 도움을 요청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주여성긴급전화 1366센터는 2006년 11월 9일 처음 설립됐다. 센터가 생기기 전에는 이주여성인권센터가 그 역할을 대신했었다. 그런데 언어가 통하지 않는 불편함이 계속 쌓이면서 1366센터가 태어나게 된 것이다.
상담원은 우리나라에 오래 살아서 한국말에 익숙한 이주여성을 채용했다. 현재 베트남어, 중국어, 영어, 러시아어, 몽골어, 태국어 등 6개국어로 상담 중이다.
각 나라 출신 이주여성 14명이 상담을 담당하고 소장과 한국인 팀장 두 명이 업무를 지원하며 24시간 상담 중이다. 인원이 부족해 2교대 근무를 하지만 한밤중이라도 급한 일이 생기면 언제든 현장으로 달려간다.
아무리 바빠도 상담원 교육은 1366센터가 빼놓지 않는 중요행사다. 처음 설립할 때 상담원을 대상으로 두 달 이상 한국사회에 대한 이해, 여성인권, 법률, 상담이론 등을 교육했다.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씩 한국어 교육과 각 분야별 교육을 받는다. 1년이 넘은 지금 상담원들의 각종 분야에 대한 상담 노하우는 대단하다. 강 소장은 그 점을 활용할 방법을 찾는 중이다.

같은 이주여성 돕기에 자부심과 보람
“그간 상담원들은 상당히 훈련이 됐기 때문에 이쪽 분야는 새로운 사람들을 교육시킬 정도가 됩니다. 그러면 새롭게 교육받은 사람들은 지역에서 더 가까이 상담을 할 수 있게 되는 거죠.”
또 상담 후 계속 문제는 없는지 확인하는 2차 서비스도 필요하고 법정에 가야 할 일이 생겼을 때 통역으로 나설 인원도 충원돼야 하는 등 앞으로도 할 일이 많다. 하지만 아직은 전화상담과 이주여성 인식개선 운동 등을 펴나가는 데 주력하고 있다.
러시아어를 담당하고 있는 키르키스스탄 상담원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답답했던 심정을 잘 알기에 이주여성들의 고민이 남의 일 같지 않다. 5년 전 처음 한국에 왔을 때 한국말을 전혀 못해 시어머니와의 갈등이 컸다. 그때 이주여성인권센터에 전화를 했지만 한국말을 할 줄 모르는 그녀를 상담해줄 사람이 없었다.
“그때 제 모국어로 하소연할 수만 있었어도 속앓이가 다 풀릴 것 같았어요. 이곳으로 전화하는 분들 역시 그렇게 의지할 곳만 있어도 한국 생활을 이겨내는 데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안타까울 때가 변호사가 필요한 상황인데도 돈이 없어 이혼도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가지도 못하는 이주여성을 만날 때라고 한다.
“위기에 처한 이주여성을 구해 문제를 해결하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서 공항까지 바래다줬던 일은 제가 이 일을 계속하게 하는 힘입니다.”
그녀는 전화하기가 곤란한 경우라면 인터넷 홈페이지(www.wm1366.or.k r)로도 상담이 가능한 것을 꼭 알려달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글 이선민 기자 사진 한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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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