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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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_IMAGE]4,original,left[/SET_IMAGE] 국가유공자 지원은 국가보훈처(처장 박유철)의 가장 주요한 사업이다. 보훈처는 일제시대 독립유공자와 전쟁유공자, 4·19혁명 및 5·18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 제대 군인에 대한 예우와 지원을 전담하고 있는 국가기관이다. 현재 국내 국가보훈 대상자는 줄잡아 78여 만 명. 이들의 가족까지 포함하면 300여 만 명의 국가보훈 대상자가 존재한다.
보훈행정은 어느 분야보다 투철한 사명감과 함께 고도로 숙련된 노하우가 요구된다. 국가유공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대민 서비스 정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세제·교육·근로·복지 등 다양한 보훈정책을 교차 서비스해야 하므로 섬세하고 안정적인 정책조율이 특히 강조된다.
참여정부 보훈정책의 큰 줄기는 ‘안정적인 정책조율’이다. 구체적으로는 이를 근간으로 국민 속을 파고드는 정책, 보훈 대상자를 새로 발굴하는 정책, 보훈대상자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책으로 정리할 수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설치 운영되기 시작한 ‘보훈상담센터’(전국1577-0606)가 그렇다. 보훈처는 보훈상담센터에 14명의 전담인력을 배치해 각종 보훈 민원 관련 상담업무를 대행하고 있다.
상담센터가 운영되기 전에는 보훈 대상자나 그 가족은 담당부서 직원들을 일일이 찾아 상담을 해야 했다. 그러나 상담센터가 문을 열면서 보훈 관련 업무에 정통한 전문가들이 민원인의 궁금증을 원스톱으로 해결하기 시작했다.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보훈 대상에 포함
보훈 관련 상담업무가
상담센터로 통합되면서 민원 해결의 전문성이 월등히 높아졌다. 상담센터에서 해결하지
못한 민원은 1차 필터링을 통해 보훈처 담당부서로 이관된다. 당연히 업무 프로세스가
크게 개선됐고 대민 서비스 수준은 고양됐다. 업무효율은 60% 이상 높아졌고 1대1
상담이 가능해지면서 민원인의 보훈정책 서비스 만족도도 크게 향상됐다. 최근 독립유공자
선정 문제로 보훈처에 자주 문의를 했던 한 유가족이 “보훈처에 전화하는 일이 지금처럼
편한 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다.
보훈처는 14명의 전문 상담인력을 올해 말까지 30여 명으로 늘리고, 순차적으로 50명 수준으로 조직을 확대 개편할 예정이다. 지난해 장관급 부서로 격상된 후 ‘대민 서비스 강화’를 부처 운영의 최우선 과제로 선정한 뒤 나타난 결실 중 하나다.
보훈처가 최근 정부의 46개 부·처·청 중 ‘혁신’의 모범으로 부각된 이유는 ‘능동적인 보훈행정’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훈처가 현재 추진 중인 ‘제대군인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 독립유공자의 대대적 발굴 포상, 수집된 독립운동 사료에 대한 포괄적 데이터베이스(DB) 구축 등이 그 대표적 사례들이다.
독립유공자 발굴에 있어서도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를 국가 보훈 대상에 새로 포함시킨 사실도 눈에 띈다. 참여정부 이전 과거 정부에서는 철저히 배제됐던 인물들이다. 그러나 참여정부는 이들에 대해서도 새로운 기준을 정하고, 이에 따라 일정한 심사를 거쳐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을 대거 발굴했다. 지난 3·1절에 이미 54명을 포상했고, 오는 제60주년 광복절(8월15일), 제66회 순국선열의 날(11월17일)에도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중 상당수의 새로운 포상자가 나올 전망이다.
그동안 적용됐던 경직된 이념의 잣대를 걷어낸 참여정부가 새로운 독립유공자의 대대적인 발굴에 나선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결단에 힘입은 바 크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8월25일 독립유공자와 가족 150명을 청와대 오찬에 초청, 일제하 독립운동과 역사적 평가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좌우 대립의 비극적 역사 때문에 독립운동사 한 쪽은 알면서도 일부러 묻어두고 있는 측면이 있다. 과거 독립운동 시기 선열들이 가졌던 이념과 사상이 어떤 평가를 받든 역사는 역사라고 생각한다. (그 역사는) 있는 사실대로 밝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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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처는 2005년 1월부터 체계적인 사료 발굴과 분석, 정리를 위해 ‘전문사료 발굴·분석단’을 가동했다. 공훈심사과장의 지휘 총괄로 역사학을 전공한 석·박사, 독립유공자 공적 심사 및 DB작업 경력자 등 15명을 이 작업에 투입했다. 이들은 2005년에만 60만 장이 넘는 각종 사료를 분석해 DB화하면서 포상 대상자 심사와 검증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올해 포상 예상 인원은 500명, 독립운동 참여자 발굴은 5,000명이 넘을 전망이다. 86돌을 맞은 올 3·1절을 기해 ‘3·1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한 김진영(金振榮)·배희두(裵熙斗) 선생 등 108명, 국내외에서 항일운동을 벌인 여운형(呂運亨)·조동호(趙東祜) 선생(앞 쪽 상자 기사 참조) 등 57명을 포상한 것도 보훈처가 노력을 기울인 결과다.
이번에 거둔 성과 중 하나는 충남 당진군 대호지면과 홍성군 금마면에서 발굴한 3·1독립만세운동 참여자 69명의 항일운동 행적. 지자체와 지역 기념사업회, 국가보훈처가 연계해 지방에 보관돼 있던 범죄인 명부에서 수형기록 등 거증 자료를 찾아내 포상하게 된 것이다.
오는 광복절에 독립유공자로 서훈될 대상자 중에 ‘김산’(1905∼1938, 본명 장지락)이란 이름도 들어 있어 이채롭다. 잘 알려진 대로 미국인 님 웨일스가 기록한 전기 <아리랑>이 1984년 출간되면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이른바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다.
평북 용천에서 태어난 그는 15세에 집을 나서 일본·만주·상하이·베이징·광둥·옌안 등지를 떠돌며 오로지 조선의 독립혁명을 위해 자신을 내던졌다. 님 웨일스는 그를 가리켜 “중국과 조선 독립혁명의 원형을 창조한 사내”라면서 감격했고, 이 책은 일본 이와나미(岩波)문고가 선정한 ‘세계명작 100선’에 꼽히기도 했다.
끝내 반당주의로 몰려 중국 공산당에 의해 서른 셋의 짧은 생애를 마감한 김산은 그동안 중국에서도, 남북한에서도 잊혀진 혁명가였다. 그를 처형한 중국 공산당은 1984년 “특수 상황에서 빚어진 잘못”이라며 복권조치를 취했고, 북한도 1992년 그의 항일투쟁 경력을 뒤늦게나마 인정하고 나섰다. 미국·일본·중국이 인정한 우리의 항일혁명가를 상해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은 대한민국에서 이제야 복권하는 것은 때늦은 감이 있지만 뜻깊은 일임에 틀림없다.
[SET_IMAGE]5,original,right[/SET_IMAGE] 독립운동가 일대기 영상으로 만든다
보훈처와
민족문제연구소는 지난 4월부터 독립운동가 280명이 구술하는 ‘영상기록, 생존 독립운동가의
일상(가칭)’을 제작 중이다. 독립운동가의 일생을 연대기 형식으로 편집한 이 자료는
가공되지 않은 ‘생생한 사료’로서의 가치가 크다.
보훈처와 민족문제연구소는 광복 60주년을 맞는 8월15일을 전후해 1차로 160명의 영상자료를 선보인다는 방침이다. 올해 말까지는 전체 독립운동가 280명의 자료를 완성할 계획이다. 이 영상물은 국가 공식 인물 사전 또는 각종 항일 독립운동 교육자료로 활용될 전망이다.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은 “자료가 완성되는 대로 현재 보관 중인 독립운동가 관련 자료와 함께 ‘구술사연구소’ 설립 작업을 본격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보훈처가 광복 60주년을 맞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이런 ‘발굴 사업’은 ‘외국국적 동포 독립운동가 유족찾기 운동’으로도 확대되고 있다. 일제 강점기 민족의 스승으로 불리던 도산 안창호 선생도 참여정부의 관심으로 이제야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반열에 공식적으로 올랐다. 이에 따라 도산의 후손 안필영(3남, 미국 국적) 씨는 1962년 도산이 건국훈장(대한민국장)을 추서받은 지 43년 만에 보상금을 받게 됐고, 그런 선열만 이번에 16명이 더 있다.
그 중에는 카자흐스탄 거주 이동휘 선생의 후손 리 루드밀라(손자)와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박동완 선생(건국훈장 대통령장)의 후손 박재영(손자, 미국 거주) 씨 등이 포함돼 있다. 독립유공자 유족 보상금은 훈격(勳格)별로 월 29만3,000원에서 최고 119만8,000원까지 지급된다.
이번에 보훈처에 새로 등록된 독립유공자들은 대부분 훈격이 높은 건국훈장을 받았기 때문에 그 후손들은 최소한 월 81만5,000원의 유족연금을 받게 되며, 도산의 유족에게는 최고 수준인 월 119만8,000원이 지급된다. 매달 보상금이 지급되는 국내 유족과 달리 해외거주 유족에게는 매년 5월과 11월에 보상금을 모아 송금한다.
박유철 국가보훈처장은 보훈행정의 기본 정신을 ‘자유민주독립국가’로 규정한다. 항일 독립운동, 6·25전쟁 당시 국가를 지켰던 호국운동, 4·19와 5·18광주항쟁이 하나라는 것이다. 보훈처가 국민통합의 3대 정신을 밀고 나가면서 보훈 가족의 삶의 질을 어떻게 향상시켜 나갈지 향후 그 정책 행보가 주목을 끌고 있다. [RIGHT]임천우 객원기자[/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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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