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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미래? 우리 고민이 뭔지 알아요?




조용히 관객들이 지켜보는 무대 위에 ㄷ자 모양의 골대 같은 문 3개가 대중소 규모로 세워졌다. 가장 높은 문이 허리 높이쯤, 가장 낮은 문은 무릎 정도. 목에 끈을 매단 한 학생이 갈수록 좁아지는 문을 엎드리다 못해 마지막에는 기어서 통과했다. 갈수록 좁아지는 예술가의 삶을 보여준 추계예대 학생들의 무언극이었다.

무언극을 시작으로 지난 5월 1일 오후 서울 마포구 북아현동 추계예대 리사이틀홀에서는 ‘예술가, 노동자로 살아가기’란 부제 아래 대학생 소통 프로그램 ‘청년, 청와대를 만나다’가 개최됐다.

청와대 사회통합수석실 세대공감팀이 주최한 이날 행사는 ‘2012 미니(民意) 청와대 소통 프로그램’ 행사의 일환이다. 사회통합수석실은 2040세대의 민의를 청취하고 공감대를 확산하기 위해 올 상반기 전국 각지에서 ▲대학생 그리고 청년여론의 힘 ‘청년, 청와대를 만나다!’ ▲청와대와 고민하는 내일 ‘소통 소사이어티’ ▲청와대와 함께하는 직장인 정책담론 ‘Hope & Hof’ 등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청년, 청와대를 만나다!’는 일반 대학보다 취업에 있어 열악한 특성화대학, 지방대 등을 중심으로 진행되며, ‘소통 소사이어티’는 청년 단체, 여성 커뮤니티 회원들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Hope & Hof’는 맥주잔을 놓고 벌이는 직장인들과의 정책 담론의 장. 이러한 소통프로그램에는 정책 관련 정부 관계자, 저명 인사로 구성된 멘토들이 패널로 참여한다.




추계예대 행사 역시 추계예대 학생 4백여 명이 일부는 통로에 앉아 지켜보는 가운데 대학생 패널, 정부 패널, 명사 패널 등이 각자 입장에서 ▲예술계열 대학평가지표 중 취업률 산정기준 ▲예술계열 전공생에 대한 사회 안전망 ▲예술계열 졸업생에 대한 사회인식 등의 주제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김희재 추계예대 교수와 최세진 청와대 세대공감팀장이 사회를 본 이날 토론에서 추계예대 총학생회가 학생들을 인터뷰해 만든 영상자료가 불을 지폈다.

“예술가의 길로 가고 싶은데 졸업 후 생계가 고민이다” “등록금만큼 재료비가 들어가 등골 빼먹는단 소리 듣는다” “악단에 들어가고 싶지만 우리가 갈 자리는 없다” “특정 직장에 안 들어갔다는 이유로 멸시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예술은 죽었다’란 제목의 이 영상은 예술과 생계의 병립에 대한 고민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송준호 추계예술대 총학생회장은 “지난해 추계예대가 속칭 ‘부실대학’으로 선정됐는데, 재단 탓만 할 수 없었던 게 평가에 사용된 취업률 지표”라며 “예술 분야 특성상 성취에 시간이 걸리고, 대부분 비정규직이어서 미취업 혹은 백수로 분류되는 것이 현실인데 일반대와 똑같은 취업률 지표를 적용한 것은 무지한 처사”라고 꼬집었다.

임종원 경기대 연기학과 회장은 “교육과학기술부가 최근 취업률 지표 적용의 개선안을 마련해 연기 전공의 경우 졸업 후 6개월 안에 2편 이상 작품에 단역이라도 출연하면 취업으로 인정해 준다지만, 뮤지컬 단역만도 몇백 대 1의 경쟁을 뚫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민식 교육과학기술부 대학지원과장은 “언론이 ‘부실대학’이라 부르는 ‘정부 재정지원 제한대학’ 지정 배경에는 학내인구 감소에 대한 대비와 대학교육 향상을 위한 것”이라며 “지난해 부실대 명단 발표 후 개선안을 만들고 있다”고 전했다.

명사 패널로 참여한 박은실 추계예대 교수는 “무엇보다 정부로부터 ‘너희는 부실’이라고 낙인찍힌 것에 대해 상실감이 컸다”며 “학생들에게 꿈을 찾아 예술가의 자존감을 가져라 하고 가르치다 이젠 취업을 하라고 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박 교수는 “예술가가 사회에 어떤 경력을 남기기 위해서는 최소한 5년이 걸린다”며 4대보험 적용도 받지 못하는 예술인에 대한 복지의 허술함을 지적했다.

올해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로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전민식씨는 자신을 추계예대 92학번이라고 소개하면서 “예술인이 얼마나 힘든 삶인가 하면 흔한 신용카드도 못 만들고, 부친이 돌아가셔서 목돈이 필요한데도 결국 일숫돈을 빌려 막노동으로 갚았다”며 유명해지기 이전의 척박한 삶을 말했다.

이밖에도 국민대생 나지균씨는 “취업률 지표가 대학교육 향상을 위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예술교육에 대해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반박했고, 한세리 한양대 음악대 학생회장은 “창업도 취업률 지표로 잡는다지만 그 최저 수입기준이 1년에 2백70만원이라는데, 그 정도 버는 게 과연 창업인가”라고 지적했다.

서바이벌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 자문위원단장이었던 장기호 교수는 “예술가들의 생애지표는 다른 분야와 다르다. 창작활동을 통해 자신의 완성을 이루는 것이 우선, 다음이 돈”이라며 획일화한 잣대에 대한 불만을 표시했다.

이날 패널로 참석한 박인주 청와대 사회통합수석은 “문화예술에 대한 인식전환에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복지와 취업 차원에서 문화예술 시장 확대에 더욱 노력할 것이다. 대학평가에 있어 취업률지표의 정밀하지 못한 부분은 더욱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 수석은 “문화예술 일자리 확대 노력을 하고 있으니 여러분도 관심을 가져 달라”며 “여러분이 지금은 어렵지만 21세기는 문화예술의 시대가 될 것이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말처럼 여러분은 절대 낙망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이날 행사가 끝난 후 송준호 추계예술대 총학생회장은 “설사 형식적인 행사라 하더라도 소통의 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참석했다”고 이렇게 덧붙였다. “만족스럽진 않더라도 이것이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글·박경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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