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뉴스

명문대를 졸업하고 잘나가는 컴퓨터 회사에 다니며 예쁜 신부까지 아내로 맞이해 주변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았던 A씨. 남들이 보기엔 그저 평탄하기만 한 삶을 살고 있던 그였지만 어느날부터 이유 없이 불안해지고 사소한 일에 걱정이 많아졌다.
직장에서 새로 맡은 프로젝트는 남들에겐 A씨의 유능함을 증명하는 부러움의 대상이었지만, 사실 그에겐 큰 걱정거리였다. 예전 같았으면 별 어려움 없이 처리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이상하게 A씨는 불안과 초조함을 느꼈다. 그런 상태가 계속되자 급기야 A씨는 불면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또한 사소한 일에도 눈물을 흘리거나 짜증을 내는 일이 잦아졌다. 보다 못한 아내는 A씨에게 정신과 상담을 받아볼 것을 권유했지만 그는 완강히 거부했다.![]()
사실 그에겐 오래전부터 우울증을 앓던 누나가 있었다. 자존심 강한 A씨에겐 ‘정신과 환자’인 누나는 부끄러운 존재였다. 또한 A씨는 늘 비관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터라 정신과 치료를 받아도 아무 효과가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는 정신과에 가는 것을 거부했던 것이다.
위의 이야기는 내가 아는 어느 가족의 이야기다. 이런 일이 있은지 9년이 지난 지금도 A씨의 이야기가 생생히 떠오르는 건 결국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남편의 이야기를 수개월간 들어주고, 위로해 주던 아내는 누군가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것이 자신의 남편일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고 했다.
이 가슴 아픈 이야기는 아직도 내 기억에 남아 있는건 ‘그가 전문치료를 받았더라면 그런 극단적인 행동은 막을 수 있었을 텐데…’하는 아쉬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자살은 주변인에게 오래도록 상처를 남긴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급속하게 높아지고 있다. 지난 2010년 자살 사망자 수는 1만5천5백66명이었다. 이는 하루 평균 42.6명이 자살한 꼴이다.
2011년 국회입법조사처 자료에 따르면 자살 혹은 자살시도로 인해 직·간접적으로 많게는 4조9천억원의 사회경제적 비용이 소요된다. 국가적으로 엄청난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정부에서도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2004년과 2008년에는 ‘자살예방 종합대책’을 수립했다. 하지만 적절한 예산투입이나 법적, 제도적 장치가 미비한 상태에서 마련된 대책은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하지만 자살이 더욱 늘어나는 추세를 더 방치할 수는 없다. 자살예방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할 때다. 지난해 6월 정부는 총리실과 관계부처 합동으로 ‘건강한 사회 만들기 12대 중점과제’ 중 첫번째 과제로 ‘자살 없는 사회 만들기 중점 대책’을 확정하여 추진하고 있다. 또한 2011년 3월 국회를 통과한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을 위한 법률’이 올해 3월 31일부터 시행령·시행규칙이 확정되어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자살예방 대책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장기적인 계획과 적절한 예산, 인력의 지원이다.
자살예방센터장으로서 자살예방사업을 추진하며 느끼는 것은 자살은 사회적인 문제이고, 예방이 중요하다는 것에는 다들 공감하나 이를 위한 실질적인 지원은 부족하다는 것이다.
자살예방에서 가장 큰 과제는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생명의 소중함을 인식하도록 하고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을 낮추는 일이다.
두번째는 만성적인 신체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이나 노인층 등 우울증에 취약하거나 자살률이 높다고 알려진 고위험군을 선별해 위험요소를 조기에 발견하고 도움을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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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는 한 번 이상 자살을 시도했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국가적인 관리 시스템을 만들어 관찰하는 것이다. 자살을 예방하는 방법을 모르던 시대는 지나갔다. 하지만 아직까지 체계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데는 많은 걸림돌이 있다. 학교폭력 때문에 학생들의 자살이 늘어나자 교육과학기술부가 세운 대책이 자살예방이 아닌, 학교폭력 근절을 위한 처벌규정 강화에 초점을 맞추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자살이 문제라는 것에는 다들 공감하지만 직면하기 싫어하고, 자살이 과연 예방이 될 것인가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것 같다. 성공적으로 자살예방 정책을 수행한 핀란드의 경우,
10년 이상의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했다. 인적·물적 자원을 과감하게 투입하고 장기적으로
계획을 추진할 수 있는 국가적 역량을 기대해본다.
글·이유진 (인천시 자살예방센터장·가천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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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