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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에 그을린 피부에 체크무늬 남방, 편안한 작업복 바지 차림. 6월 13일 여수시 소호동 요트선착장에서 만난 송광석(70)씨는 평범한 시골 할아버지 같았다. 영화에서 보던 요트 선장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전화로 취재요청을 하니 그는 자신을 ‘송 선장’으로 불러 달라 했다. 송 선장은 지난해 10월 미국 캘리포니아 롱비치를 출항한 뒤 하와이 호놀룰루, 일본 오키나와를 거쳐 여수엑스포 개막식이 열린 5월 11일 여수항에 입항했다. 현재 정박할 곳이 마땅찮아 여수 앞바다에 요트를 세워놓고 작은 고무보트로 뭍을 오가며 지낸다.

“카메라 잘 챙겨요. 나 휴대전화 세 대나 빠뜨렸어. 바다에.”
고무보트를 타고 뭍으로 나온 송 선장과 함께 그의 요트로 가기 위해 여수항을 출발하자 조금 거센 바람에 짙은 옥색 바다는 고무보트를 집어삼킬 듯 넘실거렸다. 10여 분을 가니 요트가 점차 카메라 렌즈의 사거리에 들어왔다. 쭉 뻗은 돛대, 유선형의 흰 몸체를 가진 쌍동선 ‘바다아이’다. 바다아이는 송 선장의 호인 ‘해동(海童)’을 한글로 푼 이름. 쌍동선은 선체 2개를 일정한 간격을 두고 갑판 위에서 결합한 배다.


“배는 사랑하는 사람하고 같아. 맘에 들어야 함께 살지.”
요트에 오른 송 선장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스쳤다. 바다아이는 길이 47피트(14.3미터), 폭 22피트(6.7미터)의 요트다. 해수면에서 돛대 끝까지 높이 65피트(19.8미터). 디젤엔진 2기와 선실 2실, 조타실로 이루어진 배 안에는 샴페인 바, 냉장고, 가스레인지와 오븐도 갖췄다.

그가 여수에 오기까지 6개월 동안 운항한 거리는 1만1천킬로미터, 항해일수는 57일이었다. 첫 출항 때 함께했던 캐나다 출신 젊은 이 세 명은 하와이에서 하선했고, 송 선장은 기착항마다 승조원을 새로 모았다. 항해 구간마다 승조원을 새로 모집하는 일은 항해자들 사이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송 선장은 “하와이에서 한국 젊은 이를 크루(승조원)로 태우고 싶어 한달 가까이 모집했는데, 지원자가 없었다. 한국 젊은이와 같이 항행하고 싶었는데 못한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또 태평양 건널 때 시속 90마일(1백45킬로미터) 정도 되는 돌풍을 만나 2, 3층 높이 파도가 밀려와 아찔한 순간도 여러 번 있었다고 했다. 현재 배는 엔진 1기가 이상을 일으켜 수리 중이다.

송 선장은 1970년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캐나다 맥길대학 물리학과 대학원에 유학했다. 당시 지도교수의 조언에 따라 컴퓨터 공학으로 전공을 바꾸고 졸업 후 캐나다 국방부에 연구원(공무원)으로 들어가 33년 만인 지난 2010년 공직에서 은퇴했다.

근무기간 동안 동료들을 따라 주말에만 타던 요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것은 2008년부터다. 캘리포니아에서 선장학교도 수료했다. 선장이란 호칭을 쓰게 된 이유 중 하나다.


한국에 도착해 국적회복 신청도 해놓았다. 캐나다 국적을 취득한 지 35년이 다 됐지만, 세계일주는 한국 국적으로 이루고 싶기 때문이다.

지금 타고 있는 ‘바다아이’ 역시 하와이에 거주하는 한국인 2세 루디최가 설계한 요트다. 루디 최는 고종 때 이주한 파인애플 농장 근로자 2세로, 그가 설계한 요트 약 2백척이 운항 중이라고 한다.

송 선장은 “나도 외국 나가 살다 보니 애국자가 되더라”며 “배에 꼭 태극기를 달고 다닌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저 스스로 한국을 알리는 민간홍보대사라고 생각한다”고 웃었다.

송 선장은 국내에서 싹트고 있는 해양 마리나 산업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한국의 지자체에서 해양 마리나 산업을 육성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아주 좋은 일이라고 봐요. 특히 한국 마리나 비용은 세계 최저수준이어서 자기 실력과 수준에 맞춘 적당한 배를 구입하면 자동차 한 대 굴리는 것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요트 체험이 가능할 겁니다.”

송 선장은 오는 9월 말이나 10월 초쯤 여수항을 출항해 대만, 중국 남부와 태국을 거쳐 인도양을 따라 서진해 남아프리카 희망봉을 돌 계획이다. 이후 스칸디나비아반도까지 북상하는 동안 지중해도 들러볼 생각이다. 다시 노르웨이에서 서쪽으로 북대서양을 건너 캐나다, 미국 동부해안을 따라 남하해 남미 최남단 케이프 혼을 지나 남태평양 타히티, 뉴질랜드에 거쳐 여수로 돌아올 장대한 계획이다.

북반구와 남반구를 모두 돌면서 5대양을 지나야 세계일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한다. 현재 예상 항해기간은 2~3년 정도다.




고령인 나이가 부담으로 느껴지지 않을까 싶은데, 송 선장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평생 연구원으로 산 나 같은 70대 노인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어요. 한국 젊은이들 역시 좀 더 바다에 관심을 갖고 도전했으면 좋겠어요.”

송 선장은 요즘 파손된 배 엔진 수리에 집중하고 있다. 국내에서 부품 구하기가 쉽지 않아 시간이 걸린다고. 또 요트동호인 모임(findacrew.com)을 통해 한국인 승조원도 구하고 있다. 세계일주 전 구간은 아니더라도 부분적으로나마 참여할 수 있으면 된다고. 글이나 사진, 영상으로 기록을 남길 사람도 찾고 있다.

글과 사진·남창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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