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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 텔레비젼에서 김용옥 교수의 강의를 듣다가 깊은 감명을 받은 기억이 난다. ‘똥의 철학’이라는 강의였는데 당시 구체적인 내용은 거의 잊어버렸지만 요약하면 “똥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는 주장이었다. 전날 바른 생활을 했으면 한 덩어리로 깔끔하게 나오면서 휴지에도 거의 묻지 않지만 안 좋은 음식을 먹거나 불규칙한 생활을 하면 변비 같은 문제가 생긴다는 말이다.
최근 과학자들은 김 교수의 강의가 일리가 있음을 시사하는 연구결과를 내놓고 있다. 건강은 장에서 비롯된다는 내용으로 특히 장내 미생물의 역할이 생각보다 중요함이 밝혀지고 있다. 사실 똥의 3분의 1은 장 속에 살던 미생물이라고 한다. 우리 몸을 위해 일하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셈이다.
인체는 미생물에게 지구인 셈
인체는 미생물에게는 지구인 셈이다. 한 사람의 몸속에는 100조 마리가 넘는 세균이 살고 있고 그 종류도 500종이 넘는다.
다행히 우리 눈으로 볼 수 없으니 망정이지 몸속과 피부에 살고 있는 이 녀석들(?)이 보인다면 기절할 노릇일 거다. 눈, 코, 입을 비롯해 우리 몸에 미생물이 살고 있지 않은 곳이 없지만 대부분은 장 내에 살고 있다.
특히 대장에 우글거리는데 이 녀석들을 다 합쳐 무게를 달면 1kg이나 나간다고 한다. 장 내 세균을 다 내보내면 몸무게를 1kg이나 줄일 수 있는 셈이다.
그런데 설사 이런 약이 나온다 해도 먹었다가는 큰일이 난다. 장 속에 상주하는 유익한 균들이 사라지면 장은 금세 해로운 세균의 공격을 받아 심지어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실제로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는 데 있다. 우리나라는 통계가 나와 있지 않지만 미국은 매년 수천 명, 캐나다는 수백 명이 수퍼박테리아로 인해 목숨을 잃는다. 그런데 이 수퍼박테리아라는 사실 그렇게 무시무시한 존재는 아니다. 문제는 평소 이 녀석들을 꽉 잡고 있던 유익한 균들이 강력한 항생제로 몰사하면서 수퍼박테리아의 고삐가 풀린다는 데 있다.
세균에 감염돼 병이 생기면 항생제를 찾게 된다. 그런데 항생제를 먹다 보면 장이 불편한 경우가 종종 있다. 특정한 타깃만을 공격하는 항체와는 달리 항생제는 다수의 세균에 무차별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장 내 미생물 생태계가 교란된다. 장속의 1kg 세균은 짐이 아니라 우리 몸을 지키는 용병인 셈이다.
장 내 미생물의 역할은 인체를 지키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대표적인 장 내 세균인 박테로이데스를 보자. 이 녀석은 소장을 통과해 영양분이 다 빠져나가 똥이 되기 직전의 내용물을 한 번 더 처리한다. 사람이 갖고 있지 않는 소화효소를 분비해 인체가 흡수하지 못한 영양분을 분해한다. 이 녀석들이 재처리해 내놓은 에너지는 우리가 쓰는 양의 15%나 된다. 박테로이데스가 없다면 식량을 15% 더 증산해야 하는 셈이다.
박테로이데스는 인체를 조종하기도 한다. 사람이 먹지 않으면 이 녀석들은 사람이 배고픔을 느끼게 하는 물질을 분비한다. 자신이 살기 위해 사람의 식욕까지 조절한다. 또 자신들의 거주지인 대장을 근사하게 꾸미는 데도 적극적이다.
연구자들은 멸균상태에서 태어난 쥐의 대장을 보통쥐와 비교해 봤다. 그 결과 놀랍게도 대장이 제대로 발달하지 않았고 혈관 분포도 부실했다. 알고 보니 박테로이데스가 대장이 제대로 형성되도록 유도하는 단백질을 만들었던 것. 뿐만 아니라 이 녀석들은 장 안쪽 벽의 상피세포가 리사이클되는 주기도 조절한다.
[SET_IMAGE]2,original,left[/SET_IMAGE]장 건강도 장내 유익균 덕분
사람과 인체 거주 미생물의 상호작용, 즉 공생에 대한 연구는 이제 시작단계다. 지난 10여년 동안의 연구로 많은 사실이 밝혀졌지만 여전히 베일에 가려진 부분이 많다.
그런데 최근 국내 연구진이 이 분야의 연구를 주도하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그 주인공은 이화여대 생명과학과 이원재 교수. 이 교수는 사람보다 훨씬 단순한 장 구조를 갖고 있는 초파리를 대상으로 동물과 장내 미생물의 상호작용을 연구하고 있다. 초파리 장에는 대략 25종의 미생물들이 살고 있는데 기본 역할은 사람의 장에 사는 미생물들과 비슷하다.
연구자들은 초파리의 면역계와 장 내 미생물의 생태계가 밀접한 관계를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예상치 못한 놀라운 내용이었기 때문에 이 연구결과는 저명한 과학저널인 ‘사이언스’ 2월 8일자에 해설논문과 함께 실렸다. 보통 해설논문은 한 호에서 주목할 논문 대여섯 편에 붙는다. 그만큼 이 교수팀의 연구가 높이 평가됐음을 의미한다.
이 교수는 초파리의 ‘코달’이라는 유전자에 주목했다. 코달은 항미생물 펩티드를 만드는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한다. 항미생물 펩티드란 동물이 스스로 만드는 항생제로 몸속 미생물의 번식을 견제하는 역할을 한다.
만일 코달이 제 역할을 못하면 항미생물 펩티드가 많이 만들어진다. 연구자들은 코달을 억제한 뒤 장 내 세균 생태계의 변화를 지켜봤다. 그 결과 놀랍게도 유익균은 크게 줄어들고 유해균이 늘어났다.
즉 건강한 초파리의 장에는 10만 마리가 넘게 사는 A911이라는 유익균은 코달이 억제된 초파리 장에서는 1000마리 이하로 줄어들었다. 반면 G707이라는 유해균은 평소 몇 마리 살고 있지 않지만 A911이 급감하자 1만 마리 이상 늘어났던 것. 그 결과 초파리는 장염에 걸려 앓았고 수명이 단축됐다.
미국 매사추세츠의대 닐 실버만 교수는 해설논문에서 “이 교수팀의 실험은 정상적인 미생물 생태계가 유지되기만 해도 병원성 박테리아의 증식을 억제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며 “동물의 면역반응이 미생물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하는 것을 알게 됐다”고 평가했다.
선진국일수록 높은 과민성대장증상이나 장염증상은 결국 인체의 면역반응이 과민해지면서 유익균을 공격한 결과 유해균이 과다 증식해 생긴 현상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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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