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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_IMAGE]2,original,left[/SET_IMAGE]“밤은 껍질을 벗기고 대추는 씨를 모두 빼내야 해요. 그리고 먹기 좋게 1㎝ 정도로 썰어 두어야 해요.”
강사의 말에 칼을 든 손들이 분주해진다.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은 옆 사람이 하는 걸 보고 따라하고 자원봉사자들이 손짓으로 설명해주는 대로 소꿉장난하듯 밤과 대추를 다듬는다.

지난 3월 27일 서울 경희대 생활과학대학 조리실에서 열린 한국음식만들기 강좌. 서울 동대문구 결혼이민자가족지원센터가 마련한 이 강좌에는 여러 나라에서 온 결혼이민자 23명이 참석해 약식과 화전 만드는 방법을 배웠다.

삼삼오오 그룹을 지어 모인 이들은 같은 나라 출신끼리 신나게 수다를 떨기도 하고 서투른 한국말로 자원봉사자와 이야기를 나누며 처음 배우는 남편나라의 음식을 만들어갔다.
찐 찹쌀에 설탕시럽과 참기름을 섞은 재료에 다듬은 밤, 대추와 잣을 넣고 다시 쪄내면 약식이 완성된다. 그저 하라는 대로 했는데 그럴 듯하게 만들어진 약식이 신기한 듯 집어 먹으며 재미있다는 표정이다. 찹쌀반죽에 식용 꽃을 붙여 지져내는 화전은 만들기가 쉬운지 제법 모양을 내고 “예쁘다”를 연발한다.

이 와중에 엄마를 따라온 꼬마는 이리저리 조리실을 오가며 요리도구를 만지고 수선을 피워 엄마의 공부를 방해하기도 하고 자원봉사자들과 놀며 엄마의 공부가 끝나기를 기다린다.  강좌에 참가한 결혼이민자들의 출신 국가는 베트남 러시아 일본 몽골 중국 필리핀 캄보디아 우즈베키스탄 등.





다양한 실생활 프로그램에 큰 기대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지 2년 됐다는 라노(27) 씨는 “결혼이민자가족지원센터에서 여러 가지를 가르쳐주고 여러 나라 친구를 사귈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한국말은 그래도 여기저기서 배울 수 있지만 “한국무용, 컴퓨터, 한국음식 등 다양한 문화를 가르쳐주는 곳은 여기뿐”이라고 강조했다.

일곱 살 아들의 엄마인 라노 씨는 “말이 통하지 않아 처음엔 어려웠지만  이제 한국생활이 괜찮다”면서 “우즈베키스탄에도 시부모나 남편 등을 존중하는 관습이 있어 비슷하게 느낀다”고 설명했다. 김치찌개, 된장찌개 등 한국 음식도 잘한다는 그녀는 “약식을 만들어 보았냐”는 질문에 “그냥 사먹어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남편을 따라 한국에서 살게 된 결혼이민자들의 생활은 한국말이 익숙한 정도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고 한다. 말이 잘 통하면 가족들과도 잘 지내고 친구도 쉽게 사귀며 한국문화를 배우는 일에도 재미를 느끼게 된다. 한국에 적응하는 일의 시작이 한국어에 익숙해지는 것인 셈이다.

이날 강좌에는 한국에 시집온 지 4개월밖에 되지 않아 아직 말이 통하지 않는 다섯째이자 막내며느리인 김응안(한국이름, 25) 씨를 동반한 시아버지 송태근(83) 할아버지가 참석했다. 지하철을 타고 광진구 자양동에서 경희대에 있는 지원센터를 오가기가 어려운 며느리를 데리고 왔다.

“며느리가 말을 아직 배우지 못해 대화가 통하지 않아 걱정이 많다”는 송 할아버지의 우려에 지원센터 이지선 팀장은 “그래도 표정이 많이 밝아졌다”며 “곧 한국어를 배우고 나면 좋아질 것”이라고 위로했다. 송 할아버지는 지원센터의 한국어 교육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고 한다.

베트남의 호찌민에서 호텔직원으로 일하다 남편을 만나 지난해 8월 한국에 온 이선희(24) 씨는 지원센터가 한국어와 한국 문화교육을 늘리면 좋겠다며 “더 배우고 싶어요. 많이 해주세요”라고 요청했다. 1주일에 이틀 두 시간씩 배우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다.
“남편, 시아버지와는 영어로 소통하지만 한국어로 시어머니와 말하는 게 아직 서툴다. 집에서 시어머니께 말도 음식도 배우고 있는데 부족하다”며 베트남 친구들도 “모두 같은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글 김병훈 기자 사진 한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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