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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_IMAGE]2,original,center[/SET_IMAGE] [SET_IMAGE]3,original,right[/SET_IMAGE]지난 2003년, 같은 부대에서 생활하던 3명의 병사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주제는 여행이었다. 한동안 얘기를 나누던 3인방은 결국 의기투합했다. ‘군복무를 마치고 함께 여행을 하자고.’ 그들은 강상균(25·연세대 체육계열), 이강석(25·아주대 건축학부), 그리고 김영빈(23·서울대 경제학부) 씨였다. 국방의 의무를 마친 이들은 2년 후 다시 뭉쳤다. 김상균(25·한국과학기술원 전산학과4), 홍승일(21·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2) 씨 등 2명이 새로 합류해 5명으로 늘어났다. 이들은 막연하게 구상했던 여행계획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뭔가 의미 있는 여행을 하자는 의견이 제시됐다. 야구를 좋아하는 강상균 씨가 미국 메이저리그를 둘러보자는 제안을 했지만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했다. [B]모터사이클과 사물놀이의 만남[/B] 그때 이슈가 터졌다. 지난해 3월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하자 가슴속에서 뭔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독도 문제가 그들의 공통관심사로 떠올랐고, 여행테마도 자연스레 ‘독도 알리기’로 좁혀졌다. 그리고 독도가 우리 땅이란 사실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곧바로 모터사이클 동호회 ‘독도라이더’를 만들었다. 각종 서적을 구해 독도에 관련된 지식을 넓히는 것은 물론, 독도에 들러 ‘독도수호 모터사이클투어’를 하면서 각오를 다졌다. “독도를 직접 밟아보자 가슴이 벅차오르더군요. 외국에 나가 독도는 한국 땅이라는 사실을 널리 알리자고 다짐하는 확고한 계기가 됐습니다.” 독도라이더 팀장인 김영빈 씨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들려줬다. 동호회 결성 취지에 걸맞게 모터사이클을 타고 지구를 횡단키로 한 그들은 1주일에 꼬박 두 차례씩 모여 지칠 때까지 모터사이클과 뒹굴었고, 장기간 여행에 필요한 체력을 기르기 위해 틈만 나면 걷고 달렸다. 모터사이클을 처음 배운 김상균 씨는 아예 회사의 출근수단으로 사용하면서 ‘실력’을 갈고 다듬었다. 모터사이클을 타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겠지만, 또 다른 방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그리고 무릎을 탁 쳤다. 바로 사물놀이였다. 한국을 알리면서 사람을 끌어 모으는 데는 안성맞춤 아닌가. 그러자 그들은 더욱 바빠졌다. 사물놀이까지 배워야 했으니…. 하지만 출발 당시만 해도 250cc 모터사이클로 지구를 횡단한다는 계획이 실현될 것으로 여기는 사람은 드물었다. “괜히 사서 고생한다”는 얘기도 들려와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다. 이때 서울대 법대 이상면 교수, 그리고 독도수호대와 흥사단의 격려가 커다란 힘이 됐다. 독도 알리기의 대장정이 시작된 것은 올 3월. 독도라이더는 마침내 미국으로 떠났고, 기나긴 여정이 시작됐다. 모터사이클을 타고 ‘독도가 한국 땅’임을 알리고 다니자 곳곳에서 매스컴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사람들이 모일만한 곳이면 어디든지 모터사이클을 타고 가 흥겨운 사물놀이판도 펼쳤다. 특히 미국에서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과 독일 월드컵축구가 열린 경기장 주변은 독도를 알리는 데 최적의 장소였다. 김상균 씨는 “독도가 명확히 표기된 동북아 지도, 영어·독일어·프랑스어·스페인어로 번역된 독도 소개 홍보책자가 순식간에 동이 날 때면 힘이 저절로 솟아났다”고 했다. 월드컵축구가 벌어진 기간에는 하루 4시간씩 새우잠을 자며 강행군을 계속했다. 이강석 씨는 “열띤 호응을 받은 사물놀이 한마당은 전 세계에 독도를 한국 땅으로 각인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며 “외국인들이 자국어로 ‘독도는 한국 땅’이라고 서명해줄 때는 가슴이 뭉클했다”고 거들었다. [SET_IMAGE]4,original,center[/SET_IMAGE] [B]올 3월 대장정 나서 10월에 귀환[/B] 독도라이더가 ‘독도가 한국 땅’이란 사실을 전파하기 위해 238일 동안 들른 나라는 미국을 비롯해 영국, 독일, 스페인, 터키, 중국 등 무려 21개국에 이른다. 모터사이클로 이동한 거리만도 3만km. 이들은 사물놀이를 활용한 거리캠페인뿐 아니라 미국의 하버드대·UCLA, 중국 베이징대 등 명문대학에서의 세미나, 미국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등 언론사와의 인터뷰 등으로 왕성한 독도 알리기 활동을 펼쳤다. 여행 중의 어려움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으랴. 학업, 체력부담 등의 이유로 강상균 씨가 2개월여 만에 중도에 포기했고, 모터사이클이 넘어지는 바람에 멤버들이 다치는 경우도 빈번했다. 영국에선 불법체류 의혹으로 입국심사대를 통과하지 못한 적도 있고, 파키스탄에선 모터사이클이 3주 동안 세관에 묶여 안절부절못하기도 했다. 그뿐인가. 오스트리아 빈에선 주변 상인의 신고로 생명과도 같은 모터사이클이 감쪽같이 없어져 눈앞이 캄캄해진 적도 있었다. 견인료를 내고 되찾긴 했지만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래도 그들은 이를 악물고 달리고 또 달렸다. 그리고 목표했던 대장정을 멋지게 완수했다. “독도 문제가 하루아침에 해결될 것으로 생각지 않습니다. 그래도 저희들이 전한 메시지가 하나의 씨앗이 되어 독도 영유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됐으면 합니다.” 모터사이클을 타고 독도가 한국 땅이란 사실을 전 세계에 알린 당찬 젊은이들. 그리고 귀국하자마자 병역의무에 나선 홍승일 씨. 믿음직한 젊은이들이 있기에 대한민국의 미래는 더욱 희망차고 신명날 게 틀림없다. [RIGHT]이기호 기자 [/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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