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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_IMAGE]2,original,center[/SET_IMAGE] [SET_IMAGE]3,original,center[/SET_IMAGE] e스포츠 세계 무대에서 ‘프로게이머’ 중 누구를 아느냐고 물어보면 열 명 중 아홉 명은 복서(BoxeR)라고 말한다. 프로게이머 이름으로 난데없이 ‘권투선수’가 등장하니 잠깐 어리둥절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말은 ‘SK텔레콤T1’의 프로게이머 임요환을 가리키는 말이다. 외국에서는 그의 게임 아이디‘SLayerS_BoxeR’가운데 ‘BoxeR’만 끄집어내 이런 별명으로 부른다. 임요환은 e스포츠 세계 무대에서 단연 발군이다. ‘온게임넷’ 스타리그 본선 99승으로 최다승 기록, 세계 최초의 억대 연봉을 받는 프로게이머, 본선 경기 최다 출전 등 화려한 경력이 이를 증명한다. 그는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을 세상에 등록시키고 인정받게 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그런 그를 국내에서는 ‘테란의 황제’로 칭한다. 임요환은 e스포츠 무대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팬클럽 회원만 50만 명을 넘어섰다. 임요환은 세계에서도 e스포츠 메이저대회로 분류되는 한국의 온게임넷 스타리그 결승 6회 진출, 2회 우승, 8회 4강 진출을 이뤘다. 그는 얼마전 인천에서 벌어진 ‘So1’ 스타리그에서도 결승에 진출했다. 비록 준우승에 그쳤지만 그의 인기는 말 그대로 욱일승천, 식을 줄을 모른다. 무엇보다 임요환이 인정받는 이유는 끊이지 않는 도전정신과 노력 때문이다. 임요환은 2002년 ‘스카이배’ 이후에도 계속 스타리그 본선에 올랐다. 선수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슬럼프도 그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극복했다. ‘질레트’ 스타리그 본선 진출에 실패했던 임요환이 바로 그 다음 시즌에 또 한 번 결승전에 올랐다. 비록 준우승에 그쳤지만 그의 탁월한 실력을 잘 말해 준다. 임요환은 1999년 프로게이머로 이름을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이미 e스포츠가 문화의 한 코드로 자리 잡은 한국에서는 물론 세계 무대에서도 계속 정상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쟁쟁한 신인들이 거친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대부분 썰물처럼 스러져 갔다. 그러나 임요환만큼은 지금껏 독야청청한 존재로 남아 있다. 스스로 기울인 노력의 결과였다. 그의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인기는 곳곳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e스포츠를 99번째 정식 스포츠 종목으로 지정한 중국의 경우만 예로 들어도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중국에서는 e스포츠가 한국처럼 단일화한 리그 몇 개로 운영되지 않는다. 하지만 중국에서 열리는 e스포츠대회는 매해 굵직한 대회만 3~4개나 되는 등 양과 질 면에서 한국을 바짝 뒤쫓고 있다. 이곳에서도 최고의 게이머 스타는 역시 임요환이다. 지난해 중국에서 벌어진 월드e스포츠게임즈(WEG) 초청전에서 임요환을 이긴 장밍루는 중국 최고의 프로게이머로 떠올랐다. 이렇듯 ‘임요환을 이겼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스타가 된 게이머까지 등장하는 실정이다. 몽골에서도 임요환과 그의 경기는 관심의 대상이다. 얼마 전 한 몽골의 팬이 기자에게 “임요환의 경기를 보고 싶다”는 메일을 보내왔다. 오코(Oko)라는 이름의 이 팬은 지난해 11월25일 ‘몽골에서(from Mongolia)’라는 제목의 e메일에서 임요환·박지호의 준결승을 어떻게 주문형 비디오(VOD)로 볼 수 있는지 문의했다. 인터넷 인프라가 열악한 몽골에서도 임요환 때문에 게임 ‘한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가슴 뿌듯한 일이었다. 임요환이 전 세계 게이머들의 우상이 된 이유는 적지 않다. 임요환은 프로게이머의 전설을 넘어 신화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SET_IMAGE]4,original,center[/SET_IMAGE] 해외 대회에 나가는 외국 프로게이머들이 항상 우스갯소리처럼 하는 말이있다. ‘BoxeR’임요환의 영원한 맞수, ‘[NC]...YellOw’. 홍진호의 출전 여부를 확인할 때 잊지 않고 꼭 한국 관계자들에게 물어보는 말이 있다. ‘KTF매직엔스’에 소속된 홍진호는 가장 게임을 잘하는 선수로 항상 기억된다. 누구에게나 물어보면 “홍진호처럼 손이 빠르고, 홍진호처럼 상황판단이 정확하게 되기는 불가능하다”는 말을 한다. e스포츠 무대에서 이런 홍진호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홍진호는 팬클럽에 가입한 인원이 19만 명에 이르러 20만 명 돌파 초읽기에 나섰다. 임요환에 이어 팬클럽 회원 수 10만여 명을 돌파한 두 번째 선수라는 기록도 그가 세웠다. 성적 역시 대단하다. 역대 온게임넷 스타리그 진출 횟수만 무려 12번으로 임요환과 동률이다. 8강 진출 기록 역시 임요환과 같은 9회다. 홍진호의 실력은 임요환과 말 그대로 막상막하, 용호상박이다. 지난 시즌까지 1위는 오히려 홍진호였다. 홍진호는 유난히 2, 3위를 많이 했다. 주요 선수와의 결승전 경기에서는 자주 패했다. 그러나 그 점이 홍진호의 매력이기도 하다. 무언지 모를 안타까움과 새로운 희망, 패배에 굴하지 않고 다시 오뚝이처럼 일어서는 정신. 다음에는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홍진호에 대한 믿음을 버릴 수 없는 이유다. 해외에서 홍진호는 이 같은 ‘아쉬움의 이야기’로 가장 잘 알려진 선수다. 그에게 ‘무관의 제왕’이라는 또 다른 별명을 붙인 것은 바로 이 같은 그의 이야기를 잘 알기 때문이다. 그의 경기 스타일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편이다. 이런 그의 경기를 한 번이라도 본 게이머라면 “왜 이런 선수가 만년 2위”인지 의구심을 떨쳐내기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미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언론 채널 CNN은 한국 e스포츠를 대표하는 프로게이머로 홍진호를 선택하기도 했다. 정보기술(IT)산업에 관한 특별 기획 프로그램에서 CNN은 한국의 e스포츠를 조명하기 위해 홍진호를 섭외했던 것이다. CNN은 지난해 2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세중게임월드에서 홍진호를 1시간가량 인터뷰했다. 이날 CNN은 홍진호에게 “한국 프로게이머들의 위상은 어느 정도인가” “홍진호를 비롯한 프로게이머들의 연봉은 어느 정도인가” “팬클럽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등의 질문을 쏟아냈다. 또 CNN은 “프로게이머로서 중요한 부분인 손에 보험을 들었는가”라는 이색적인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준비되지 않은 인터뷰에도 홍진호는 “연봉은 1억 원” “개인 팬 클럽 회원은 17만 명가량”이라는 등 차분하게 대답하며 한국 e스포츠를 세계에 알렸다. 특히 “여성 회원이 많을 텐데 여자친구를 사귀는 데 제약을 받지는 않느냐”는 질문에 “시간이 없어 여자친구가 있어도 데이트하기 힘들다”며 프로 정신을 보여줘 CNN 특파원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줬다. 홍진호의 또 다른 장점은 스스로 e스포츠라는 신개념 스포츠분야를 개척해 나가는 선구자라는 자부심과 책임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홍진호는 “나를 비롯한 많은 프로게이머가 e스포츠의 미래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생각으로 훈련에 임한다”고 말한다. 폭풍과 노도처럼 몰아친다는 홍진호의 포부는 무엇일까? “나중에 등장할 프로게이머들에게 좋은 선배로 기억되고, e스포츠 역사에 이름을 남긴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것”이라고 그는 밝히고 있다. [SET_IMAGE]5,original,center[/SET_IMAGE] 해외 팬 사이에서 박정석에 대한 평가는 그의 이름처럼 ‘정석(Basic)’으로 통한다. 스타크래프트의 프로토스 종족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탄탄한 기본기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KTF 박정석 역시 e스포츠 무대에서 몇 손가락에 꼽히는 내로라 하는 스타다. 국내 무대에서 그에게 쏟아진 찬사는 ‘영웅’이었다. 하지만 그의 유명세는 해외에서 더 높다. 특히 스타크래프트 마니아라면 대부분 박정석의 이름을 기억한다. 박정석은 ‘[Oops]Reach’, ‘Reach’로 불린다. ‘웁스(Oops)’는 원래 그의 길드명이다. 그것이 놀랍다는 의미인 ‘웁스’로 바뀔 만큼 그는 독보적 위치에 올랐다. 박정석은 2002년 가을 프로게이머 무대에 혜성처럼 떠올랐다. 모든 e스포츠의 중심이 임요환에게 몰리고 있을 무렵 박정석은 임요환을 누르고 우승 트로피를 차지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때 붙은 별명이 바로 ‘프로토스의 희망’과 ‘영웅’이었다. 이후에도 박정석은 꾸준히 인기 스타의 반열에 서 있었다. 성실함과 근면함이 그가 가진 꾸준한 실력을 보여주는 힘의 근원이다. 프로리그 정규시즌에서 200여 명의 프로게이머 가운데 처음으로 통산 40승을 돌파한 기록의 주인공도 바로 그였다. 한국e스포츠협회의 자료에 따르면 박정석은 지난 시즌까지 ‘에버’ 프로리그 15승2패(개인전 5승1패/팀플레이 10승1패), ‘피망’ 프로리그 6승1패(개인전 1승/팀플레이 5승1패), ‘스카이’ 프로리그 2004 12승4패(개인전 8승/팀플레이 4승4패), ‘스카이’ 프로리그 2005 1라운드 8승2패(개인전 2승2패/팀플레이 6승) 등 통산 41승9패(개인전 16승3패/팀플레이 25승6패)를 기록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박정석은 임요환의 뒤를 이을 스타플레이어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했다. 어느 분야든 최고 스타란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정상급 실력은 필수다. ‘프로토스의 영웅’이라는 강한 이미지만큼이나 그는 최근 스타리그 정상에 잇달아 도전할 만큼 빼어난 실력을 자랑한다. 여기에 박정석은 잘생긴 외모와 깨끗한 이미지, 카리스마를 동반하고 있다. 그는 스타급 프로게이머 중에서 안티 세력이 없는 거의 유일한 인물로 꼽힌다. 그 점을 높이 사 대한적십자사는 그를 ‘헌혈 홍보대사’로 임명했다. 현재까지도 그는 그 활동을 왕성하게 펼치고 있다. 일부 관계자들은 박정석의 인기가 이미 임요환 급으로 올라섰다고 평가한다. 향후 정상급 한두 대회에서 박정석이 우승을 차지한다면 자연스러운 ‘권력이양’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박정석은 2004년 최고의 프로토스 플레이어에 올랐다. 2003년 3월25일 이후 프로리그 개인전에서 단 한 경기도 내주지 않으며 꾸준한 성적을 거뒀으며 ‘질레트’ 스타리그와 ‘에버’ 스타리그에서 각각 2위와 3위를 차지한 경력이 높게 평가됐다. 특히 맵 밸런스 논란으로 프로토스가 성적난에 허덕일 때 박정석은 그의 별명인 영웅처럼 프로토스의 한 줄기 희망으로 떠올랐다. [SET_IMAGE]6,original,center[/SET_IMAGE] 외국 게이머들에게 가장 큰 공포의 대상은 바로 ‘빨강(Red)’과 ‘노랑(Yellow)’이다. ‘빨강’은 바로 이윤열([ReD]NaDa)을 지칭한다. ‘노랑’은 앞서 언급한 홍진호(YellOw)다. e스포츠 무대에서 이윤열은 경외의 대상이다. 기계, 컴퓨터가 게임을 하는 것 같다고 해서 붙은 ‘머신’이라는 별명은 한국 e스포츠에 대한 새로운 경지를 만들어냈다. 임요환이 ‘e스포츠의 가능성’을 입증했다면 이윤열은 ‘e스포츠는 한국이 절대무적’이라는 공포감을 심어줬다. 이윤열은 한국e스포츠협회 공인 프로게이머 랭킹 1위를 무려 15개월이나 지켰다. ‘우승 머신’ 그 자체였다. 이윤열의 ‘절대무적’ 신화에는 메이저리그로 꼽히는 MBC 게임 스타리그(MSL)가 있었다. 이윤열은 2002년 KPGA 투어 2차 리그 우승을 시작으로 세 차례 대회에서 연속 우승하면서 임요환의 두터운 벽을 단숨에 뛰어넘었다. 이윤열은 MSL에 유난히 강했다. 무려 3년3개월 동안 MSL에 머물러 있었다. 최다경기, 최다승, 최다패, 최다 결승 진출, 3회 연속 우승 등의 타이틀을 모두 갖고 있다. 온게임넷 스타리그에 임요환이 있었다면 MBC 게임 스타리그에는 이윤열이 있었다. 그러나 이윤열은 현재 진행 중인 ‘싸이언 MSL’에 진출하는 데 실패해 커다란 아쉬움을 남겼다. 사실 이윤열의 발자취는 프로게이머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영예의 첫발을 내디뎠다는 데 가치가 있다. 이윤열은 프로게이머로는 처음으로 2004년 10월 TV CF 스타로 변신했다. 국내 최초의 게임폰인 팬택앤큐리텔의 ‘큐리어스 폰’으로 일반 대중에게도 이름을 알렸다. 이 밖에도 이윤열이 세운 기록은 국내 e스포츠의 위상 자체를 달리했다. 온게임넷 스타리그, MBC 게임 스타리그, ‘게임TV’ 스타리그에서 동시에 우승하면서 국내 최초로 ‘그랜드슬램’을 차지하는 영광을 누렸다. 역으로 이윤열이 우승하는 대회는 ‘메이저대회’로 자리매김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해외에서도 e스포츠에 진출해 성공하려면 국내 온게임넷 스타리그나 MBC 게임 스타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야 한다는 인식을 자리 잡게 만든 것도 그 덕분이다. 실제로 미국 출신 프로게이머 브라이언 프란시올리는 이윤열을 목표로 국내 e스포츠 무대에서 1년여 동안 연습에 매진하기도 했다. 결과는 ‘귀국’으로 결론지어졌지만 이윤열을 목표로 삼는 게이머는 외국에도 적지 않다는 방증이다. 최근 이윤열은 잦은 해외 출장으로 화제에 올랐다. 지난해 8월에는 한·중 국가대항전인 ‘CKCG’ 2005 대회 출전을 위해 중국 베이징(北京)을 찾았다. 이 대회에서 이윤열은 비록 준우승에 그쳤지만 중국 팬들로부터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10월에는 미국 블리자드가 개최하는 블리즈콘에 참가했다. 역시 준우승에 그쳤지만 소년과 같은 곱상한 외모로 외국 팬들의 사진 세례를 받기도 했다. 해외 팬들이 가장 기대하는 게이머로도 이윤열은 첫 손꼽힌다. 임요환을 넘어서는 프로게이머로 성공할 가능성을 스스로 입증해왔기 때문이다. 2004년 국내 최고액 연봉 2억 원을 기록하면서 이윤열은 지금도 스스로의 위상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황제’를 뛰어넘는 ‘천재’의 노력에 전 세계 게이머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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