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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호>세계를 움직이는 한국인골퍼4인

[SET_IMAGE]2,original,center[/SET_IMAGE] [SET_IMAGE]3,original,left[/SET_IMAGE]2005년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 대회의 최고 신데렐라. 지난 6월27일 US여자오픈에서 기적 같은 마지막 벙커샷을 선보이며 우승한 ‘버디 킴’ 김주연(24·KTF)을 일컫는 말이다. 그는 이 대회에서 4오버파로 모건 프리셀(미국)과 공동 선두를 달리던 마지막 18번 홀에서 벙커 버디 샷을 날려 감격의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LPGA 생애 첫 승을 LPGA 투어 중 최고 권위의 메이저 대회인 US여자오픈에서 거둔 것이다. 그가 LPGA 무대에 도전한 지 5년 만에 이룬 쾌거다. 한국인으로는 박세리·박지은에 이은 세 번째 메이저 대회 우승 기록도 세웠다. 이날의 벙커 버디 샷 한 방으로 김주연은 56만 달러(약 5억6,000만 원)의 우승 상금까지 받았다. US오픈에는 일반 대회의 세 배가 넘는 최고 상금이 걸려 있다. 앞으로 5년간 전 경기 출전권도 보장받았다. 뿐만 아니라 소속사인 KTF로부터 우승 상금의 30%인 16만8,000달러의 보너스도 받게 됐다. 박세리(28·CJ), 박지은(26·나이키골프), 김미현(28·KTF)이 LPGA 투어의 ‘코리안 돌풍 1세대’라면 김주연은 2세대에 해당한다. 김주연이 골프채를 처음 손에 잡은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인 1992년. 아버지(김용진)와 친분이 있던 프로야구 선수 김일권(당시 해태 타이거스) 씨가 “체격도 크고 운동신경도 좋으니 골프를 시켜보라”고 권한 것이 계기가 됐다. [B]7전8기 만에 ‘메이저 퀸’ 올라 [/B] 그의 골프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여고 2년생이던 1998년 국가대표에 뽑혔고, 그해 열린 방콕아시안게임 골프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따냈다. 이듬해에는 한국주니어골프선수권과 중·고골프연맹회장배에서 우승하면서 더 이상 국내용 선수가 아님을 입증했다. 이렇게 국내 아마추어 무대에서만 19승을 거둔 그가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 것은 2000년 1월. “더 큰 무대에서 뛰고 싶다”는 김 선수와 아버지의 뜻이 투합된 결정이었다. 미국에서의 그의 골프 인생 시작은 괜찮은 편이었다. 그해 11월 LPGA 투어 관문인 Q스쿨에서 8언더파 280타를 기록했다. 통과자 중 으뜸 성적이었다. 그러나 이듬해에는 LPGA 대회에 입문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퓨처스 투어에서 큰 좌절을 맛보았다. 줄곧 상금 순위 선두를 달리던 그는 마지막 라운딩에서 미국의 텃세 짙은 판정에 벌타를 받으면서 불과 200여 달러의 상금 차이로 시드 확보에 실패했다. 2003년 퓨처스 투어에 다시 도전한 김 선수는 상금 순위 4위에서 5위까지 주어지는 2004년 LPGA 투어 풀 시드를 손에 쥐었다. 그러나 어렵사리 진출한 LPGA 무대 또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지난해 무려 20개 대회에 출전했지만 최고 성적은 공동 42위에 그쳤다. 컷 통과도 단 3차례에 불과했다. 결국 김주연은 LPGA 투어 카드를 상실해 올해 재입성하는 우여곡절까지 겪었다. 김주연은 올 시즌 들어서도 13개 대회에 참가해 절반이 넘는 7개 대회에서 컷오프당했다. 이 때문에 김주연이 지난 US오픈에서 1타차 공동 4위로 마지막 라운드를 시작할 때만 해도 그의 우승을 점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김주연 자신도 “우승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할 정도다. 그러나 지난 5월 칙필A채러티챔피언십에서 공동 7위로 생애 첫 톱10에 입상하며 자신감을 찾은 그는 US오픈 제패라는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RIGHT]오효림 기자[/RIGHT] [SET_IMAGE]4,original,center[/SET_IMAGE] “세 상을 바꾼 선수, 사람들의 생각 자체를 바꿔놓은 선수로 기억되고 싶어요.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극한에 이를 때까지 나를 몰아붙일 거예요.” 이 당차고 야심만만한 주인공은 이제 15년3개월 된 소녀 위성미(미국이름 미셸 위). 지난 1월 미국프로골프협회(PGA) 투어 소니오픈 출전을 하루 앞두고 미국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통산 54승을 거둔 애니카 소렌스탐을 겨냥한 듯 “50승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엄청난 업적을 이룬 선수가 되고 싶다”며 세계 최고의 골퍼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자신의 PGA 투어 출전을 놓고 벌어진 논란에 대해서는 “세상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바꾸고 싶다”는 말로 쐐기를 박았다. 위성미는 1989년 10월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태어났다. 그는 다섯 살 때 동네 야구장에서 골프공을 치고 논 것이 계기가 돼 골프에 입문했다. 이후 그는 아버지 위병욱(하와이대 교통학 교수) 씨로부터 틈틈이 골프 레슨을 받았다. 위성미는 일곱 살 때 처음으로 18홀을 라운딩했는데 14오버파를 기록했다. 열 살 때는 9언더파 64타를 치는 괴력을 발휘한 적도 있다. 드라이브샷 최고거리는 성인 남자선수들을 뺨치는 359야드다. 많은 한국 여성 골퍼가 LPGA 우승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아직 LPGA 우승은커녕 채 프로 선수로 데뷔하지도 않은 위성미의 인기에 비하면 부족함이 적지 않다. 특히 그의 스타성은 올해 그랜드슬램 달성이 목표이자 현역 중 LPGA 최고 선수로 꼽히는 소렌스탐에 비견될 정도다. 위성미가 지난 7월 PGA 투어에 참가했을 때 미국의 지상파방송인 NBC는 다른 선수들은 제쳐놓고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카메라에 담았다. 특히 전반 9홀에서 3언더파를 치며 30위 권을 오르내리자 정규 방송을 1시간 이상 미루면서 TV 중계 시간을 늘렸다. 또 지난 6월 말 열린 US여자오픈에서 위성미는 비록 23위를 차지했지만, 그의 경기 모습을 지켜본 미국 시청자들이 사상 최다인 70만 명에 달했다. 뉴욕 언론들은 이를 ‘경이감’으로 전했다. [B]여자 골퍼 중 가장 인기 있는 선수[/B] 미국의 스포츠 전문 사이트 CNNSI.COM의 골프 칼럼니스트 세스 데이비스는 “최다 관중 기록을 세운 US여자오픈을 통해 미셸 위의 진가가 입증됐다. 여자골프 최고 스타는 애니카 소렌스탐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열정적인 골프팬들이고, 보통사람들은 미셸 위의 경기에 훨씬 더 주목한다. 미셸 위는 타이거 우즈의 프로 데뷔 때처럼 골프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을 끌어들일 힘이 있다”고 말한다. 그의 꿈은 단순히 여자들끼리 겨루는 LPGA 대회 우승이 아니다. 최고 권위 마스터스에서 남자들과 겨뤄 우승하는 것이다. 타이거 우즈는 그가 닮고 싶은 모델이자 넘어야 할 산인 셈이다. 위성미는 한 과목만 빼고는 모두 A학점을 받을 정도로 학업에도 뛰어나다. 뿐만 아니라 그는 대학교수인 아버지보다 더 뿌리 깊은 학문 숭상 의식이 있다. 그는 “영화를 보면 운동선수들이 멍청한 사람으로 나온다. 내가 학위가 있으면 무시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천재 골퍼 위성미가 앞으로 펼쳐 보일 골프의 세계는 곧바로 한국인들의 자부심으로 이어질 것이 틀림없다. [RIGHT]오효림 기자[/RIGHT] [SET_IMAGE]5,original,center[/SET_IMAGE] 세계 무대를 주름잡는 한국 여자골퍼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그야말로 ‘별들의 세계’다. 그중에서도 진폭이 크지 않은 꾸준한 성적으로 자신의 자리를 당당히 지키고 있는 선수가 있다. 바로 박지은(27)이다. 그는 한국이 ‘골프강국’임을 만방에 확인시키는 대표적 골퍼다. “저, 진짜 욕심 많아요. 누구한테도 지기 싫고요. 특히 미국 애들에게는 골프도, 공부도 지기 싫어 둘 다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지금 프로 골퍼를 하고 있지만, 공부도 정말 열심히 하고 싶어요. 골프·공부 둘 다 놓치고 싶지 않거든요. 2년 안에 소렌스탐을 제치고 골프의 여신이 되고야 말겠어요.” LPGA 투어에서 ‘한창 주가를 올릴 때’ 국내 한 신문과 했던 인터뷰에서 박지은 선수가 한 말이다. 곱상한 외모와 달리 그가 강한 승부근성과 열정으로 똘똘 뭉쳐 있는 선수임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이렇다 보니 박지은은 미국 골프계에서도 ‘알아주는 싸움닭’으로 통한다. 박지은이 홀별로 승부를 가리는 매치 플레이에서 더욱 강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강점을 살려 2002년 시스코월드매치플레이챔피언십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 [B]미국 아마추어 4대 메이저 석권 등 55승 달성[/B] 여덟 살 때부터 아버지의 권유로 골프채를 잡은 박지은은 미국으로 막 건너간 열두 살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992년부터 6년 연속 미국주니어골프협회(AJGA)를 대표하는 선수로 활약했고, 1994년과 1996년에는 AJGA 선정 ‘올해의 선수’로 뽑히기도 했다. 자신의 소망대로 애리조나주립대에 장학생으로 입학한 박지은은 대학과 미국 여자 아마추어 골프 무대도 가볍게 평정했다. 1998년 애리조나주립대 1학년 재학 당시 팀을 미국대학골프선수권(NCAA)대회 우승으로 이끌었던 박지은은 같은 해 미국 아마추어 4대 메이저 대회를 석권하며 <골프위크>가 선정한 올해의 대학선수가 됐다. 그가 1999년 퓨처스 투어를 거쳐 2000년 LPGA에 데뷔하기 전까지 주니어와 아마추어, 대학 무대에서 거둔 우승은 무려 55회. 기라성 같은 선수들이 즐비한 미국 골프계에서도 실로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것이다. 하지만 미국 프로골프 무대는 냉정했다. 아마추어 시절 세웠던 화려한 성적과 달리 그는 프로에 입문한 후 한 해 1승 정도를 올리는 데 그쳤다. 무슨 징크스인 양 여러 차례 준우승만 거듭할 뿐이었다. 그의 골프 실력이 세계 정상급이라는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여서 아쉬움을 더했다. 2003시즌까지 2년 연속 버디퀸에 올랐고, 2004년 한 시즌 평균타수가 가장 적은 선수에게 주어지는 베어트로피를 수상한 것 등이 그의 실력을 말해준다. 박지은은 2004년 LPGA 4대 메이저 대회 중 하나인 나비스코챔피언십대회 타이틀을 거머쥐며 그의 진가를 보여줬다. 그것은 그의 LPGA 대회 첫 우승 기록이기도 했다. 그해 한국에서 열린 LPGA 투어 CJ나인브릿지클래식에서도 우승, 시즌 2승을 기록하면서 세계 정상급 여자 골퍼임을 증명했다. 당시 그는 이 대회에서 생애 첫 홀인원도 기록해 두 배의 기쁨을 누렸다. 그는 최근 성적 부진에 대해서도 “기복이야 있을 수 있다”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 어느 정도 정상 컨디션을 되찾은 만큼 앞으로 남은 메이저대회에서 좋은 성적이 기대된다며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그가 앞으로 어떤 골프 실력을 뽐낼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RIGHT]백창훈 기자 [/RIGHT] [SET_IMAGE]6,original,right[/SET_IMAGE]골프장이 일터인 남자, PGA 골퍼 최경주(37). 그는 지난 5월 국내외 프로 골퍼와 세계 유명 골퍼들을 초청해 톱 랭커들이 결전을 펼친 2005 SK텔레콤오픈대회에서 우승했다. 국내외 골프대회를 통틀어 11승째였다. 그는 “향상된 실력으로 2∼3개월 내에 또 좋은 소식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며 자신감 넘치는 우승 소감을 밝혔다. 최경주 선수는 아침에 일어나 해가 뜬 것을 확인하면 아침을 먹자마자 다른 사람들이 출근하듯 바로 골프연습장으로 나간다. 거기서 해가 질 때까지 하루 8시간씩 ‘혼(魂)을 담아’ 땀을 흘리며 공을 친다. 그의 이런 치열함과 집념이 그를 프로 데뷔 10여 년 만에 PGA 대회 2승 등 국제대회 5승의 주인공으로 키워낸 원천이 되었다. 최경주 선수는 전남 완도의 작은 어촌에서 태어나 소년 시절을 보냈다. 완도중 1학년 때까지 역도를 하면서 힘을 쓰던 그가 골프를 시작한 것은 완도수산고 1학년 시절 선생님의 권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완도에서 단 하나뿐인 골프연습장은 공동묘지 옆에 있었다. 그는 그곳까지 아버지가 모는 경운기를 타고 쫓아 다녔다. 이렇게 열악한 골프연습장이었지만, 그런 곳에서 그는 악바리처럼 매일 2,000개씩 공을 쳐댔다. 그나마 그 골프연습장 운영을 둘러싸고 모종의 문제가 생겨 제대로 연습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그는 결국 서울 한서고로 옮겼다. 오직 골프 연습 때문이었다. 그런데 한서고에는 골프부가 없어 전담 코치도 없었다. 최경주는 대신 비디오에 출연한 유명 프로 선수를 스승 삼아 열심히 따라 하는 연습을 계속했다. 그는 스스로 늦게 시작했다고 생각한 만큼 남보다 몇 배 더 열심히 연습에 매달려 자기 스윙을 일궜다. [B]끈질긴 근성과 노력으로 무장한 ‘연습벌레’[/B] 그 결과 2002년 한국인 최초 PGA 컴팩클래식, 2003년 유럽투어 린데저먼마스터스, 1999년 일본투어 기린오픈 우승으로 세계 3대 투어(미국·유럽·일본 프로골프)를 제패한 한국인 최초의 주인공이 됐다. 최경주는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지독한 연습으로 기량을 쌓았다. 그가 미국에 첫발을 디딘 1999년 시합을 한 시간 이상 앞두고 연습장을 찾았는데, 피지 출신 골퍼 비제이 싱도 막 도착해 연습을 시작하려던 참이어서 서로 ‘연습벌레’임을 확인하고 놀랐다는 것은 골프계에서 유명한 일화가 되었다. 그는 경기 운영 방법도 남다르다. 경기 도중 자신의 생각대로 풀리지 않으면 과감하게 자세와 공을 치는 각도, 강도를 바꿔 도전한다. 잡초와 같은 끈질긴 근성으로 임해야 흔들리지 않고 라운딩을 마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경기할 때 두둑한 배짱과 뚝심으로도 유명하다. 시합 도중 표정의 변화가 거의 없고, 앞만 바라보고 나가는 스타일이다. 3년 전 미국 LA에서 경기할 때 한 갤러리가 이런 그를 보고 “최경주는 탱크 같아, 탱크!”라고 말한 후 ‘탱크’라는 별명이 붙었다. 지독한 연습 탓에 얼굴이 검게 그을린 그를 미국 언론은 ‘검은 탱크’라고 부른다. 그는 시합은 물론 연습할 때도 ‘공이 이쪽으로 갈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공을 친다. 자신의 구질을 알고 심리적으로 위축되지 않으면 바라는 쪽으로 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그의 우승 소감처럼 최경주 선수가 세계를 더욱 놀라게 할 날이 머지않았음을 기대하게 하는 대목이다. [RIGHT]백창훈 기자[/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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