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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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작품에 대한 편견에 답하는 것이 이젠 지겹다.”
열두번째 영화 <활> 개봉을 앞두고 김기덕(45) 감독이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를 사양하며 한 말이다. 시사회도 열지 않았다. 철저하게 선입견 없는 관객과 직접 만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대신 그는 칸영화제 기간에 전 세계 기자들 앞에서 처음 <활>을 공개했다. <활>이 칸영화제의 ‘주목할 만한 시선’ 세션에 개막작으로 공식 초청됐던 것이다.
김 감독은 1996년 <악어>로 데뷔했다. 그 후 1997년의 <야생동물보호구역>부터 지난해의 <빈집>까지 그의 영화는 늘 화제를 몰고 다녔다. 그의 영화는 극단적 상황에 처한 인물들을 내세워 인간의 삶에 내재한 고통과 소외를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때문에 그의 영화는 거칠고 보기 힘들다는 평을 자주 듣는다. 한국영화계 ‘주류’에 서 있지 않은 탓에 평단의 비판에 계속 노출됐던 것이다.
그의 삶 역시 주류에서 빗겨서 있다. 그의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다. 가정형편 때문에 일반 중학교 아닌 농업전수학교에 진학했으나 그마저 졸업하지 못하고, 해병대에 입대하기 전까지 10여 군데 공장을 떠돌아다녔다. 1990년 그는 무작정 ‘그림공부’를 하러 프랑스로 떠났다. 그가 영화라는 매체를 처음 접한 것도 프랑스에서였다. 영화를 찍어야겠다고 마음먹고 귀국했지만 ‘도제식’이던 한국 영화판은 결코 녹록하지 않았다. ‘운’도 따르지 않았다. 어렵사리 제작에 참여한 영화 4편이 모두 개봉조차 못했던 것이다. 대신 그는 감독이 어떻게 한 컷 한 컷을 찍는지 치밀하게 관찰해 그것을 자신의 영화 소양으로 만들었다.
[B]“주류의 편견과 싸우며 영화 찍어”[/B]
“배고픈 사람은 100m 앞에 떨어진 빵조각도 보인다.”
이 말은 당시 그가 영화를 얼마나 절실하게 여겼는지 잘 말해 준다. 벽을 느낀 그는 ‘자기 방식’ 대로 영화를 찍기로 결심했다. 철저하게 ‘돈 안 드는’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었다.
국내와 달리 해외에서는 일찍부터 그를 알아봤다. 국내 페미니스트들에게 집중포화를 맞은 <파란 대문>이 베를린·모스크바 등 세계 20여 영화제에 초청되면서 그는 국제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2004년 2월 <사마리아>로 베를린영화제 감독상을, 같은 해 9월 <빈집>으로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다. 한 감독이 같은 해 두 번이나, 그것도 다른 영화로 세계 3대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거머쥔 것은 세계 영화사에서도 전무한 일이었다.
다작(多作)을 하는 ‘엄청난 에너지’의 근원을 묻는 질문에 그는 “내가 살아가는 방식일 뿐”이라고 답한다. 그는 이어 “한 번 생각이 떠올라 쉽게 잊혀지지 않으면 영화화한다”고 덧붙였다. 북한의 풍산개 이야기를 차기작으로 구상하고 있지만 또 다른 생각이 갑자기 떠오르면 그 작품이 제작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RIGHT]오효림 기자 [/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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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이 영문도 모른 채 낯선 곳에 감금된다면? 그리고 하루, 한 달, 1년….’박찬욱(42) 감독이 만든 영화 <올드보이>의 대사다. 박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지난해 세계 최고 권위의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다.
당시 박찬욱 감독은 “서양에서 자주 다뤄온 장르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는 뜻에서 상을 준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올드보이>에 대해 “칸에 출품할 정도의 전형적 예술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했다”면서 “그저 특이한 영화로 비칠 것으로만 짐작했다”며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
[B]“다양한 분야서 능력 실험해 볼 생각”[/B]
서강대 철학과 출신으로 영화광이었던 박 감독은 데뷔작 <달은 해가 꾸는 꿈>과 두번째 영화 <삼인조>를 포함해 다섯 편의 영화에서 삶과 죽음, 죄와 구원의 문제를 각각 다른 시각으로 섬세하게 조명했다. 모든 영화에 2남1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웠고, 서로에게 침투하는 이들의 생각이나 행동의 차이가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그것이 또 다른 낯선 사태를 낳는 과정을 통해 영화적 재미와 철학적 의미를 제시했다.
이에 대해 박 감독은 “내가 오랜 가톨릭 집안에서 성장하며 습득한 원죄론 등 종교적 영향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5편 모두 2남1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점에 대해서는 “남자 감독이 하기에 좋은 포맷”이라며 “영화적 재미를 위해 두 남자의 대결에 한 여자를 끼워넣은 영화적 요소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실험적 영화 작업 탓에 박 감독은 비평과 흥행에서 실패하며 순탄한 영화인의 길을 걷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신문·잡지에 해박한 영화 지식이 담긴 칼럼을 쓰며 대중과 영화인들로부터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렇듯 오랜 시간 절치부심하던 박 감독을 일으켜세운 영화는 2000년 개봉한 <공동경비구역 JSA>. 그 해 국내 최고 흥행기록을 세운 이 영화는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해 처음으로 그의 이름을 국제 무대에 알리기도 했다.
박 감독이 야심차게 준비한 네번째 영화 <복수는 나의 것>은 흥행에서는 참패를 면치 못했지만 평단의 지지를 얻었고, 그 작품으로 인해 그는 ‘영화 잘 만드는 감독’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 후 <올드보이>로 명성과 흥행을 함께 얻을 수 있는 ‘대박 감독’으로 거듭난 것이다.
즐거움보다 고통, 웃음보다 눈물이 있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여러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는 그는 “영화뿐만 아니라 연극·드라마·소설·음악 분야에도 흥미를 느끼죠. 앞으로 다양한 곳에서 활동하며 제 능력을 실험해 볼 생각입니다. 좀 더 많은 관객과 함께할 수 있는 영화를 통해 대중과 같이 호흡하고 싶습니다.”고 말했다. [RIGHT]백창훈 기자 [/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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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제 영화가 어렵다고 생각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순화된 재료를 통해 쉬운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 홍상수(44) 감독이 칸으로 떠나기 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영화관이다. 홍 감독은 세계 최고 권위의 칸 영화제와 인연이 깊다. 그가 만든 영화에 대한 프랑스 영화 평단과 관객들의 관심은 각별하다. 그래서인지 한국인 최초로 장편 경쟁부문 칸영화제 수상자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B]칸 영화제에 가장 많이 초청된 감독[/B]
지난해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 이어 올해 <극장전>이 칸영화제 장편 경쟁부문에 초청받았다. 이 부문에서 2년 연속 초청받은 한국인 감독은 그가 처음이다. 1998년과 2000년 각각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상영된 <강원도의 힘>과 <오! 수정>까지 합치면 이번이 네번째 초청이다. 국내 감독 가운데 최다 초청 기록이다.
홍 감독은 “2년 연속 칸에 초청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며 “이번 초청에 깜짝 놀랐고, 같이 일했던 사람들을 위한 하나의 보상이라는 생각에 정말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칸영화제 직전 장편 경쟁부문에 초청된 <극장전>은 지난 5월19일 총 21편의 황금종려상 후보작 중 마지막으로 관객에 공개됐다. 뒤늦게 칸에 합류했기 때문에 <극장전>은 일반 관객을 대상으로 단 1회만 상영됐다. 영화 <개입자>로 부산국제영화제 VIP로 초청됐던 프랑스의 명감독 클레르 드니는 “홍상수 감독은 내게는 없는 지성이 있다”고 격찬했다.
홍 감독은 1996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데뷔했다. 그 후 <강원도의 힘> <오! 수정> <생활의 발견> 등의 작품을 각각 2년 터울로 발표했다. 그리고 1년 만에 이번 칸에 초청받은 <극장전>을 내놓았다. 이 영화는 그가 영화사를 차려 직접 제작까지 맡은 첫 작품이다.
이번 작품에 대해 홍 감독은 “다르면서 겹쳐지는 두 이야기의 남녀를 통해 영화와 관객, 사람과 사람, 사랑과 죽음의 관계를 조명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삶의 패턴 혹은 영화의 패턴을 ‘반복’하는 구조 속에 담긴 ‘진부한 일상의 표면’이 그 구조로 인해 새롭게 보이기를 기대한다”는 것이었다.
극중 인물들이 실제 감독·배우들과 닮아 보이는 점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겪은 경험이 투영됐기 때문에 극중 인물은 어떤 면에서 항상 나와 닮았다”며 “하지만 이제껏 한 사람의 모습이 영화에 그대로 옮겨진 적은 없고, 여러 조각이 모여 하나의 인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전형적인 그의 영화 만들기 스타일이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홍 감독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올 여름에 새 영화를 찍고 싶다”며 “5월 안에 시놉시스가 나오면 올 여름 촬영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RIGHT]백창훈 기자[/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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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세계 애니메이션의 절반 이상을 제작 해 온 애니메이션 강국이지만, 현실은 다른 나라의 하청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젊은 애니메이션 영화감독들이 해외 애니메이션 영화 페스티벌에서 잇달아 수상하면서 한국 애니메이션을 바라보는 세계의 시선이 바뀌고 있다.
그 선두에 선 사람이 박세종(39) 감독이다. 홍익대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한 박 감독은 호주국립영상학교 재학 시절 제작한 첫 작품인 단편 애니메이션 영화 <버스데이 보이 Birthday Boy>로 2004년 프랑스 앙시 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 신인감독상을 받았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컴퓨터 그래픽 분야 최고 권위의 미국 시그라프 대상, 시드니영화제 대상 등 세계 권위의 영화제에서 38개의 상을 휩쓸었다. 지난 1월에는 한국인 최초로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박 감독은 대학 시절 배낭여행길에서 만나 한눈에 반한 호주 여대생과 결혼하면서 호주로 이주했다. 그러나 낯선 나라에서 자리를 잡기란 쉽지 않았다. 그는 전화번호부를 모두 뒤져 애니메이션 관련 업체를 ‘무작정’ 찾아나섰다. 50군데쯤 방문한 끝에 한 시사 주간지의 일러스트 작가가 됐다.
“생계를 위해 시작했는데, 다행히 일감은 많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것이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인가 하는 회의가 들었어요.”
[B] “애니메이션에 대한 열정 살리려 귀국”[/B]
마침내 “내 아이에게 “아버지가 평생 꿈을 포기하지 않고 용기 있게 도전했다’는 교훈을 남기고 싶다”는 결론을 내린 그는 대학 시절 꿈이었던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하고 호주국립영상학교에 입학했다. 호주국립영상학교는 영화 관련 유일한 국립학교로, 1년에 딱 4명만 뽑아 1인당 항공기 조종사 1명을 교육하는 만큼의 엄청난 비용을 투자한다. 박 감독은 “이런 환경 덕분에 <버스데이 보이>를 만들 수 있었다”고 말한다.
박 감독에게 세계적 명성을 안겨준 <버스데이 보이>는 ‘축 생일(祝生日)’이라고 쓰인 배지를 단 일곱 살 가량의 어린 아이가 주인공이다. 아이는 집 앞에 놓인 커다란 상자가 생일선물인가 싶어 열어보지만, 그것은 전사한 아버지의 유품상자다. 이를 알 리 없는 아이는 군번과 철모 등 아버지의 유품을 장난감으로 삼는다.
“어린 아이의 순진한 일상을 통해 힘겨운 상황을 안고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할리우드 유명 제작사의 스카우트 제의를 뒤로 하고 지난 4월 강원정보영상진흥원에 둥지를 튼 박 감독. 그는 “강원영상진흥원의 애니메이션에 대한 높은 열정에 믿음이 가 한국행을 결정했다”며 앞으로 2년간 프리프로덕션 작업에 매달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RIGHT] 오효림 기자[/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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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