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뉴스

이명박 대통령이 연초부터 ‘경제 비상’을 걸었다. 그 시작은 1월 2일 신년 국정연설에서 “2009년 이명박 정부는 ‘비상경제정부 체제’로 가겠으며 이에 걸맞은 국정쇄신도 계속 단행해 나가겠다”고 밝히면서부터다. 글로벌 경제위기 상황이 올해 상반기 최악으로 예상되는 만큼 결연히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라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연설에서 “지금은 대안 없이 비난만 하거나 방관자로 머물 때가 아니라 적극 힘을 모아야 할 때이고 경제위기 조기 극복을 위한 총력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국회만 도와주면 경제 살리기에 더욱 박차를 가할 수 있을 것”이라며 쟁점 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당부했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은 올해 국정운영 4대 기본방향으로 비상경제정부 체제 구축과 함께 민생을 살피는 따뜻한 국정, 선진일류국가를 향한 중단 없는 개혁, 녹색성장과 미래 준비 등을 제시했다.
‘비상경제정부 체제’의 일환으로 ‘비상경제대책회의’와 ‘비상경제상황실’이 신설됐다. 비상경제대책회의는 이 대통령이 의장을 맡고 기획재정부 장관과 한국은행 총재, 금융위원장, 경제특별보좌관, 청와대 경제수석 및 국정기획수석, 민간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이 참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직접 경제정책을 조율하고 챙겨 나가겠다는 의미다.

이후 ‘비상’에 걸맞은 후속 조치들이 잇따랐다. 청와대는 1월 5일 비상대책회의를 보좌할 비상경제상황실을 운영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른바 ‘워룸(War Room·전시작전상황실)’ 개념이다. ‘워룸’은 현재 상황을 전시와 맞먹는 국면으로 규정하고 실시간으로 상황을 파악, 범정부적 대책을 수립하는 기능을 한다. 비상경제상황실을 청와대 지하벙커에 마련한 것은 그만큼 경제위기가 전시와 다름없이 다급하다는 인식을 반영한 결과다. 지하벙커는 청와대 내 비서동 인근 지하에 있으며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다. 지하벙커에는 원래 국가 위기정보상황팀이 자리잡고 있다. 위기상황팀은 지진이나 해일, 대형 산불을 비롯한 자연재해는 물론이고 안보와 재난사고 등 국가적 위기상황에 종합적으로 대응하는 게 주요 업무다.
비상경제상황실은 상설기구로 1년간 한시적으로 운영된다. 기존 청와대 조직만으로는 숨가쁘게 돌아가는 경제·금융 상황을 점검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만들어졌으며 총괄·거시, 실물·중소기업, 금융·구조조정, 일자리·사회안전망 등 4개 팀으로 구성됐다. 각 부처에도 별도 상황실이 설치됐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전 부처가 참여하는 전방위 체제가 구축된 것이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비상경제상황실은 하루하루 긴박하게 움직이는 상황을 점검하는 실무적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비상경제대책회의에 올릴 안건을 협의하고 부처 간 이견을 조정하게 될 비상경제대책 실무회의도 만들어졌다. 박병원 경제수석이 주재하고 각 부처 차관급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로써 신년 연설 사흘 만에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사령탑으로 비상경제대책 실무회의와 비상경제상황실이 뒷받침하는 비상경제정부 체제를 갖추게 된 것이다.


1월 7일에는 비상경제상황실장과 산하 4개 팀장 인선이 확정됐다. ‘워룸’을 이끌 비상경제상황실장에는 이수원 기획재정부 재정업무관리관이 발탁됐다. 이 실장은 옛 재정경제원과 기획예산처, 기획재정부에서 주요 보직을 두루 역임한 재정·경제정책 분야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이 실장은 총괄·거시팀장을 겸임하고 있다. 실물·중소기업팀장에는 권평오 지식경제부 국장, 금융·구조조정팀장에 박영춘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과장, 일자리·사회안전망팀장에 임종규 보건복지가족부 보험정책과장 등이 선임됐다.
이 대통령은 비상경제상황실의 진용을 갖춘 지 하루만인 1월 8일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처음으로 주재했다. 모든 게 속전속결이었다. 특히 첫 비상경제대책회의도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열었다. 이 대통령이 지하벙커에서 회의를 소집한 것은 취임 이후 두 번째. 지난해 8월 을지훈련 기간 중 국무회의를 이곳에서 가진 바 있다. ‘워룸’인 비상경제상황실을 지하벙커에 마련한 데 이어 이곳에서 비상경제대책회의까지 연 것은 상징성이 있다. 경제위기 국면을 맞아 전 공직자에게 긴박감을 심어주고 마음가짐을 다잡으려는 뜻이 있다. 경제난 극복을 위해 정부가 비장한 각오로 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미도 함축하고 있다.
첫 회의는 이날 오전 7시 30분부터 약 2시간 동안 진행됐으며 경제상황의 심각성을 반영하듯 참석자들은 시종 비장한 표정으로 대책을 숙의했다. 회의장에는 ‘위기를 기회로’라는 슬로건이 적힌 플래카드가 걸렸다. 회의엔 고정 멤버인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 전광우 금융위원장, 사공일 경제특보, 박병원 경제수석, 박재완 국정기획수석뿐만 아니라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 임태희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중 김기환 서울파이낸스포럼 회장과 윤증현 전 금감위원장 등 20여 명이 참석했다. 당·정·청 핵심인사들이 집결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첫 회의에서 “지금부터 실물경기 침체가 본격화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더욱 치밀하고 선제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며 특단의 조치를 지시했다. 이 대변인은 회의 후 브리핑을 통해 미국의 해리 트루먼 전 대통령이 말한 ‘더 벅 스톱스 히어(The buck stops here·모든 건 여기서 결정된다)’라는 말을 언급하며 “비상경제대책회의는 경제난국을 극복하기 위한 정부정책을 최종적으로 조율하는 곳”이라고 성격을 규정했다.
비상경제대책회의는 앞으로 매주 목요일 정례적으로 열린다. 주요 국가적 경제 어젠다들이 매주 회의 테이블에 올라가는 셈이다. 명실상부한 경제 컨트롤 타워 기능을 한다는 뜻이다.
청와대 내에선 지난해 말부터 비상, 지하벙커, 워룸뿐만 아니라 진두지휘, 행군 대열 등 전시에나 있을 법한 단어들이 쏟아지고 있다. 일사불란하고 과감한 대처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야말로 올 한 해 공직자들은 ‘비상한 각오’를 다지게 됐다.
글·홍영식 한국경제신문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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